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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May 14. 2021

나는 세상에서 가장 Crazy한 펫시터

[작은 친구들 3호] 양단우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님. 죄송하지만 아이 산책을 한 주만 미룰 수 있을까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디디가 이제 떠나려고 해서... 아이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주려고 해요.”


이렇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지 몇 시간 후, 디디가 세상을 떠났다. 우주의 모든 절망이 가슴 속에 들어왔다. 보호자님들은 왜 시간을 조정해야 하냐고 얘기하는 대신, 위로와 깊은 마음을 보냈다. 새로 예약을 요청하시는 보호자님들께도 정중히 말씀드리고 거절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몇 달쯤. 회사에는 아마 새 예약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회복되는 속도에 맞추어 조금씩 펫시팅을 시작하겠다고.


디디 이외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온종일 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지만 생계는 해결해야 겠으니, 어쩔 수 없이 일을 가야 했다. 펫시팅 대신 다른 일. 거울을 보니 얼굴에 물기가 어렸다. 느릿느릿 외투를 걸쳤다. 디디의 유골함을 두고 밖을 나왔다. 안녕, 디디야.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도착한 일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말티즈 2마리가 멍멍 짖으며 달려왔다. 아이들은 내 볼을 핥았다. 볼과 마스크, 마스크와 볼, 손, 팔뚝. 밖으로 드러난 모든 곳을 핥아재꼈다. 아이들의 환대에 죽음과 상관없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아이들의 머리와 등허리를 쓰다듬고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은 웃음으로, 잔뜩 흔드는 꼬리로 대답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잔뜩 웃고 있었다. 아, 나 펫시터하러 온 거 아니었는데.


이후, 또다른 곳에서는 앵무새를 만났다. 앵무와 함께 “안녕!”하고 인사하며 눈을 마주치고 미소지었다. 아이는 내 음성을 곧잘 따라하고 고개짓을 했다. 아, 이번에도 펫시터 하러 온 거 아니었는데.


이쯤되니 내 웃음이 진심인지, 가식인지 혼동됐다. 나는 슬픈데, 동물 친구들을 만나니 기뻤다. 슬픈 건 맞는데, 기쁘고 행복했다. 작은 존재들의 위로, 사랑, 다정함. 그들에게서 디디의 숨결을 느낀 것이었을까?


디디가 떠나고 일주일 뒤, 나는 펫시팅을 재개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고, 그를 쓰다듬는 내 손을 정답게 핥아주었다. 이런 다정함, 이런 행복. 아이와 산책로를 걷는 동안에는 생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슬픔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잠깐 울었다. 아이는 몸을 빼려고 하지 않고 잠시 그 품을 지켜주었다. 몸을 일으켰을 때, 이제 미소에서 슬픈 기색을 지울 수 있었다. 이제는 디디에게 받은 사랑을 충분히 흘려보낼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가 죽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어요?”

“안 슬퍼요? 왜 안울어요?”


반려동물과의 이별 이후에 쉽게 받는 질문들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야 비난처럼 들리고 화가 날 수 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순전히 궁금해서, 호기심때문에 질문을 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슬픔이 결코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디의 마지막은, 그 슬픔의 무게는, 유려한 문장으로 다 표현되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잔뜩 흘리는 행위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지독한 펫로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보호자님들은 대인기피증이 생기기도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아이의 온기, 은은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이부자리에 남아있는 털들.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하나하나 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길에서 강아지들을 보면 돌아버릴 것 같아.” 하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인들은 내가 심각한 펫로스 때문에 어떻게 될 줄 알고 전전긍긍하기도 했다.그런데도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해맑게 웃고, 활기차게 산책하는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신기해 한다. 디디가 죽었는데 하나도 안 슬픈건지 뭔지,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심히 산다. 정말 펫시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일까.


오늘 아침에도 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다. 넉넉한 사랑이 담긴 눈길을 보내주었다. 비록 동생을 잃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보내주는 무한한 위로가 내 안에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동물 친구들의 사랑에 푹 빠져버린, 세상에서 가장 Crazy한 펫시터다. 디디야 사랑해, 얘들아 사랑해. 우주만큼 사랑해!











글쓴이. 양단우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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