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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사랑, 그게 뭐라고(3)

<기적을 부탁해> 리얼리즘 난임극복소설

by 이소정

#7-1. 붉게 노을이 내려앉은 놀이터


은설 : (갑작스러운 현준의 고백에 토끼 눈이 되어서) 응?

현준 : (무언가 결심한 듯 허리를 곧게 펴고 두 눈에 힘을 주어 은설을 바라보며) 니가 좋은데 너에 비하면 나는 공부도 너만큼 잘 못하고, 키도 작고, 힘도 없고.

은설 : 현준아.

현준 : (은설의 말을 가로막고 일단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며) 나는 그냥 스스로한테 화가 난 거였어. 너한테 화났다거나 니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은설 : (한참 동안 현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지금 너 나한테 고백한 거니?

현준 : (그제야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깨닫고는 부끄러워하며) 아, 그게······.

은설 : (혼자 좋아라 깡충깡충 뛰며) 내 인생 첫 고백이야! (혼잣말에 가깝게) 첫 고백한 애가 이상한 애가 아니고 너여서 다행이야!

현준 : (예상 밖으로 몹시 흡족해하는 은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

은설 : 좋아! 첫 고백 기념으로. 우리 오늘부터 1일 하자!

현준 : (뜻밖의 제안에 몹시 놀란 듯) 뭐?

은설 : 왜, 싫어?(차갑고 단호한 표정으로)

현준 : (은설의 마음이 변할까 봐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

은설 : 애들이 놀릴 수도 있고, 선생님들이 알면 혼날 수도 있으니까 학교에선 비밀로 하자.

현준 : 그, 그래.

은설 : (흥분한 듯) 아, 신기한 기분이야. 나 남자친구 처음 사귀어 봐. 너는?

현준 : 나도. 나도 여자친구는 처음..

은설 : (신나서) 학교에선 사이 안 좋은 척할까? 암호를 정할까? 메롱하면 놀리는 거 아니고 좋다는 뜻인 거로. 이렇게 반대로 암호 정하면 애들도 다 눈치 못 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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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울었냐는 듯 몹시 즐겁고 재밌어하는 은설을 보며 그제야 현준도 방긋 웃는다.

시끄럽게 조잘대는 은설과 귀여운 것을 보니 흐뭇하다는 듯 남자답게 미소 짓는 현준.

몽타주. 은설과 현준의 학교 안 비밀 연애.

- 복도에서 무리들과 모여 떠들다가 괜히 지나가는 현준을 향해 메롱을 날리는 은설.

가던 길 계속 가며 답 메롱 날리는 현준.

지우개 주는 척 쪽지를 건네는 은설. 쪽지에 두 글자 ‘메롱’이 쓰여 있다.

체육시간 짝피구를 하며 필사적으로 은설을 지키는 현준.

체육시간이 끝난 뒤 자신의 얼음물을 한 입만 먹고 현준에게 다 주는 은설.

몽타주. 은설과 현준의 학교 밖 연애.

- 동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은설과 현준.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린 채로 잠깐 졸았다가 살며시 눈을 뜨는 현준.

옆에 앉아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은설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본다.

현준의 시선을 눈치챈 은설.

장난스럽게 웃으며 공책으로 현준의 얼굴을 덮는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에 가는 길.

현준의 자전거 뒷자리에 예쁘게 앉아 실려가는 은설.

무겁고 힘든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있는 힘껏 페달을 밟는 현준.

순간 비틀거리는 자전거.

본능적으로 현준의 허리춤을 잡아채 껴안는 은설.

갑작스러운 은설의 백허그에 얼굴이 빨개진 채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현준.


S#8 학교,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이지만 은설이 자리에 없다.


담임 : 혹시 은설이한테 무슨 연락받은 사람 없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담임 : 류현준. 너는 무슨 얘기 들은 거 없냐?

현준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니요. 없어요.


몽타주. 은설의 빈자리.

은설의 자리는 하루 종일 비어진 채이다.

혼자 쓸쓸히 수업을 듣는 현준.

쉬는 시간, 교탁 앞에 놓여있는 출석부에서 은설의 이름 옆에 매시간마다 결시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 쉬는 현준.


S#9 그날 밤. 현준의 집 앞


학원 수업을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는 현준.

골목 앞 가로등 밑에 서 있는 은설 발견한다.

놀라서 한달음에 은설 옆으로 달려오는 현준.

현준의 뜀박질 소리에 은설이 고개를 들고 현준이 온 것을 확인하지만 표정이 밝지 않다.

은설의 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다.


현준 :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 있었어? 학교에는 왜 안 왔어? 담임도 니가 왜 결석했는지 모르는 것 같던데..

은설 : (현준의 말을 끊으며) 할 말 있어서 왔어.

현준 : 응?

은설 : 우리 헤어지자.

현준 : 뭐?

은설 : 이 말하러 왔어. 이제 그만 사귀자고.

현준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은설 : 왜냐고는 묻지 마. 그냥 이제 우리는 안 사귀는 사이인 거야. 그리고 이 거.(들고 있던 자그마한 종이백을 내밀며) 이별선물이야.

현준 : (얼결에 받아 든다) ······왜?

은설 : 그리고 이제 나 찾지 마. 이제 나 같은 거. 그냥 잊고 살아.

현준 : 야, 왜 그래?

은설 : (무슨 말을 하려다 삼키며) 그런 건 묻지 마. 대답해 줄 수 없어. 나 간다.


S#10 다음 날. 학교 아침조회시간.


담임 : 은설이는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교과 선생님들이 물으시면 그렇게 말씀드려라.


현준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젯밤의 일을 회상한다.

O.L 어젯밤. 현준의 집 앞

매정하게 뒤도는 은설.

은설의 팔을 세차게 붙잡는 현준. 동공이 떨린다.

현준을 손아귀에서 팔을 빼내는 은설.

다시 뒤돌아 몇 걸음 뛰듯 걷다가 멈춰서 현준을 돌아본다.


은설 : 나 민국대학교 의대 갈 거야, 꼭. 나중에······. 거기서 만나자.


다시 뒤돌아 뛰는 은설. 홀연히 사라진다.

더는 은설을 붙잡지 못하고 그저 사라지는 은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인 현준.

O.L 호명소리에 정신을 차리는 현준. 다시 아침 조회시간.


담임 : 류현준. 혹시 책상 서랍 안에 은설이가 소지품 두고 간 거 있나?

현준 : 아니요. 은설이 원래 서랍에 물건 안 넣어두고 다녔어요.


조회를 마친 담임이 교실 밖으로 나간다.

현준이 엎드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다른 친구들이 볼 수 없게 책상 서랍 안에 숨겨 두었던 만년볼펜 케이스를 살짝 꺼낸다.

C.U 현준의 시야각으로 만년볼펜 케이스를 비춘다.

케이스를 여니 뚜껑 쪽에 ‘네가 태어나서 정말 기뻐. 생일 축하해. -은설-’이라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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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을 꺼내어 드는 현준. 볼펜을 야무지게 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O.L 볼펜을 쥔 어린 현준의 손에서 어른이 된 현준의 손으로

진료실 책상에 앉아 볼펜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현준.

볼펜을 하얀 가운 윗주머니에 야무지게 꽂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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