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이 문을 닫았고, 레스토랑은 픽업 또는 배달만 가능하다. 외출은 장보기 및 운동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자제해야 하고 야외에서 2명 이상 모이거나 하우스 파티는 금지다.
코로나를 막기 위한 호주 정부의 조치였다.
많은 사람이 실직을 했고 6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으며 그동안 난 반백수가 되었다.
첫 2주는 유급휴가, 그다음 2주는 무급휴가로 바뀌어 백수가 되었다가 밀리는 일처리로 일주일에 이틀만 근무하다 삼일 근무로 바뀌어 반백수가 됐고 근무시간은 더 이상 9-6가 아닌 10-4로 6시간이었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데 돈 걱정 말고는 사실 반백수 생활이 적성인 것 같다.
그래서 적어본 코로나 발 반백수의 업 앤 다운
UP
1. 늘어난 운동량 : 집 안은 답답해
타고나기를 집순이가 아닌 나는 하루 이상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고 답답해진다. 밖에 나갈 수 있을 때는 장보기 아니면 운동이니 날이 좋으면 무조건 나가 걸었다. 해변가 근처에 살고 있는 복을 마음껏 누리고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팟게스트를 많이 들었다. 요즘의 최애는 미국 심리학자 Brene Brown 의 Unlokcin us. 영어공부도 되고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감을 줬다.
2. 잘 먹고 잘 살기의 어려움 : 엄마
시간 보내기에는 요리만큼 시간 잘 가는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평상시 같음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베이킹도 시도해보고 손 많이 가는 음식도 만들어 봤다. 잘 먹고 잘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며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자동으로 생긴다. 아무래도 먹는 게 더 적성에 맞는 듯하다.
3. 6시간 근무 : 나에게 완벽한 근무시간
9-6의 삶은 고되다. 한국에서는 야근을 밥 먹는 듯이 했는데 몸이 적응을 했는지 지금은 6시에 칼퇴를 해도 힘들다. 코로나 덕에 해본 대략 3주간의 6시간 근무는 (10시-4시)의 삶은 감히 완벽한 워라벨이었다.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8시간보다 훨씬 밀도 있게 시간을 쓰고 집중한다. 몸이 힘들 때쯤 집에 가기 때문에 당 보충을 위한 쓸 때 없는 칼로리 섭취를 안 한다. 4시에 퇴근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시간 운동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어도 7시밖에 안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4. 미니멀리즘 :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단순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모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했다. 단순하고 조용한 생활은 사실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말 외출용으로 큰 맘먹고 산 드레스나 거기에 맞춰 산 하이힐은 필요가 없다. 집에서 입는 홈웨어, 운동할 때 입는 운동복, 운동화 그리고 속옷이 내가 필요한 옷의 전부였다. 미니멀리즘을 자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5. 인생의 우선순위 : 무엇이 중요한가
큰 고비가 왔을 때, 인생의 우선순위가 보인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라는 고민을 상당히 오래 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해야겠는데 막상 가기는 아쉬움이 컸다) 장단점을 저울질하니 어느 날에는 호주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날에는 한국 기울어 고민이었는데, 만일 코로나에 걸려서 내가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더 간결해지고 결정이 쉬워졌다.
DOWN
1. 돈 걱정:
결국 직장은 돈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적게 일하니 받는 것도 적다.
다행히 집주인이 2달 동안 렌트비를 깎아줘서 그나마 걱정은 좀 덜었지만 수익이 없거나 줄어든다는 것은 생활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다. 줄어든 수입에 장 보는 거,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커피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언제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뉴스에서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 될 수도 있고, 코로나 같은 팬데믹 현상이 더 자주 올 거라는 미래예측에 나는 과연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유지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2. 코로나 블루- 알코올 의존과 그 경계
호주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에 평상시보다 20% 이상 더 많이 알코올을 섭취한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지루함으로 술을 더 자주 마신다고 하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달 반은 잘 버티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비가 오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기분도 처지고 나가기도 싫고 나도 모르게 혼술을 자주 했다. 거의 맨날 마셨으니 알콘 의존증 입구까지 다녀오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 자각하고 조절해서 심각한 단계까지 가진 않았지만 하우스 메이트 없이 혼자 살았더라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기간 호주에서는 자살률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봉쇄 완화 이후의 생활
6월부터 각 주별마다 상이하지만 봉쇄를 완화하고 드디어 레스토랑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레스토랑 내에서도 테이블 당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크기에 따라 수용 인원도 다르며, 입장 전에는 연락처 등을 작성해야 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변화는 더디다.
한 치 앞으로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라고 하지만, 코로나만큼 전 세계의 나라와 기업들이 혼란에 빠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 자신의 행동밖에 없음을 다시 느낀다.
지금은 주 4일제에 9-6의 생활로 돌아왔지만, 돌이켜 보면 반백수를 통해 내가 꿈꿔왔던 삶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고 적어보니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딸린 식구가 없고, 자산은 없지만 빚도 없었으며 반백수일 망정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 덕분이니 많지 않지만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시간 덕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준비할 일이 조금 명확해졌다.
앞으로 남은 것은 간혹 불안감이 몰아치더라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내 속도에 맞춰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일이리라.
https://www.google.com.au/amp/s/amp.abc.net.au/article/12247154
https://www.abc.net.au/news/2020-05-15/coronavirus-pandemic-mental-health-package-reaction/12253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