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뛴다
이제야 말하지만 호주에 오고 일 년쯤은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피했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컹했고, 가끔은 핸드폰 전화가 걸려온 척을 하고 나가기도 했다.
보스가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미간이 지푸려지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었다.
호주에 오기 전, 통역사를 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고급 영어까지는 아니지만 미팅 통역, 해외 동반 출장, 영문 이메일 작성할 정도까지는 됐으니까. 그런데 호주로 오니 이건 완전 다른 문제다. 한국은 미국식 영어를 쓰는데 호주는 영연방국이다 보니 영국식 영어를 쓰니 사소한 게 다 다르다.
나에게 감자튀김은 프렌츠 프라이인데 호주에서는 칩스이고, 케찹은 케찹이 아니라 토마토 소스다. 쇼핑센터에서 센터는 center 가 아니고 centre이고 flavor 아니라 flavour 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걸리기 시작하니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쭈구리가 되어갔다. 이게 맞나?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중요한 이메일을 써야 하는 경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랴 업무 적응하랴 거기다가 영어까지 안되니 긴장상태에서 받은 난이도 극상인 전화 내용이 들릴 리 만무하다. ‘어디서 전화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답을 세 번을 들어도 안 들릴 때의 그 좌절감이란....
보스에게 다다다다 받아치고 싶은데 내 마음 같지 않아 영어가 안 나와 말하고 싶은 게 100이라면 내가 말한 게 50밖에 안되어 복창 터질 거 같을 때 퇴근길에 얼마나 한숨을 쉬었고, 이불 킥을 했던가.
네이버 광고처럼 몇 개월 만에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면 참 좋았을 텐데 첫 일이년은 조금 괜찮아졌다가 다시 이불킥의 연속이었다. 언어가 막히는거지 생각이 없는게 아니고, 정확하게 전달이 안되는 것인데 언어 때문에 의사 100프로를 다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다. 자신감이 넘치게 왔는데 어느새 쭈구리와 개복치가 된 내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워홀과 직장생활은 다를 것이라 예상을 하고 왔지만, 그냥 알바를 하는 것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필요한 언어의 레벨도 다르거니와 위치도 달랐다. 알바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하지만, 직장 생활은 월급 인상을 요청 할 수 있을만큼 고용주에게 능력을 보여줘야 하니 말이다.
그때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힘든 시간도 지나갈 것이고, 그 뒤의 난 더 강해져 있을 거라는 믿음. 그것 하나였다. 쓸모없는 경험 없다고, 한국에서 굴렀던 그 경험들이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내가 그것도 겪었는데, 이쯤이야.'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 지금은 확실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는 일은 줄어들었다. 전화도 더이상 두렵지 않다. 여전히 아쉬운 것은 있지만 스트레스의 정도가 줄었고 무엇보다도 쭈구리에서 벗어나, 내 말을 못 들으면 '너는 왜 내 말을 못 알아듣니’라는 정도의 자신감이 생겼다. 또, 말레이시아 출신 매니저와 싱가포리안 동료들과 친해지려다 사용하기 시작한 싱글리시 악센트도 꽤나 자연스러워 이제는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영어도 찰떡 같이 말할 수 있고, 알아 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말하는 걸 듣고, 싱가폴 사람이 반가워서 싱가폴에서 왔냐고 물어봤는데 이걸 뿌듯해야 할지 웃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어, 영어, 싱글리쉬 3개국어 가능자라고 우겨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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