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신청할 때 열린 마음으로 2인실 숙소를 택했다. 주간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첫 번째 룸메이트가 떠나고 2주일 뒤, 두 번째 룸메이트가 왔다.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괜히 그 친구보다 나이 많은걸 티 내기 라도 하는 듯 모든 것을 안다는 듯 행동하지 말기로, 친언니 아니니까 쓸데없는 책임감을 느끼지 말자며, 불편하지 않게 서로 배려하는 사이가 되기로 다짐했다.
서로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존대를 하는 사이였고 이곳의 분위기상 나이에 무감각했는데 우리가 띠동갑이라는 걸 확실하게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나, 룸메이트, 러닝메이트 이렇게 세 명이 아침 운동을 마치고 걸어오는 길이었다. 룸메이트가 별안간 우리들의 띠를 물었다. 러닝메이트의 띠는 호랑이띠, 그다음은 나의 띠를 맞출 차례였다. 몇 가지 동물을 말했지만 맞추지 못했기에 결국 나는 원숭이 띠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룸메이트가 신이 난 목소리와 놀라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 나돈데." 2초의 침묵이 흐르고 우리 셋은 빵 터졌다. 짧았던 침묵과 그 후의 웃음소리가 우리의 분위기를 대변해주었다.
나이상으로는 내가 조금 더 어른이었기에 많이 챙겨주려고 하면서도 과한 관심은 표하지 않으려 했다. 또 강요하는 사람이 되기 싫으니 나의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잔소리꾼이 될 테고 그런 식의 관계는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울했던 어느 밤에는 내 마음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굿모닝 안부를 묻고 굿나잇 인사를 하는 짝이 있어서, 나에게도 참 의지가 되었던 3주였다.
나이 차이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디 가서 띠동갑인 사람과 친구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 중요한 건 아니지. 또 친구가 될 수도 있지'라며 조금 더 유연해진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함께 간 광주의 어느 카페 겸 칵테일바에서 그녀는 미성년자라 알코올음료를 마실 수 없었다. 우리는 그곳에 다음 만남의 씨앗을 하나 심고 왔다.
"2년 뒤, 광주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