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 차인 우리 부부는 신혼시절부터 참 많이도 싸웠다.
우리의 첫 만남은 도쿄의 어느 야마노테센 전철역에서였다. 착해 보이는 얼굴, 수수한 옷차림의 남자가 역 계단을 내려오며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 남자 뭔가 첫인상부터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1년 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나고야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우리가 만난 횟수는 십여 차례 정도로 적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알고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서로는 각자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들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만나서 제대로 된 연애를 3개월만 했어도 결혼까지는 가지 못했을 거라고'
사소한 어느 한 가지도 의견의 일치를 본 적이 없는 우리가 이 부분에서는 강력하게 같은 의견이다.
남편은 IT 분야의 일을 하는 내향적/사고형/감각형(현실)/계획적인 남자다.
나는 예술계열의 외향적/감정형/직감형(상상)/즉흥적인 성격의 여자다.
성격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것이 상반된 커플이다.
남편은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하고 난 시끄러운 밴드음악을 좋아한다.
남편은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
남편의 모든 삶의 행위는 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삶의 목표를 설계할 때 돈과는 전혀 상관없이 설계한다.
막 결혼을 하고 피 터지는 싸움이 계속될 때마다 '날 속상하게 하는 이 사람이 참 나쁘다.'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이런 나쁜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인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이 남자는 나에게 돈도 애정도 관심도 아끼는 매정한 사람이다.
물론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이 감정적인 여자가 너무 부담스럽고 문제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성질 더러운 여자의 공격과 비난에 아무 잘못이 없는 자신은 억울하기만 하다.
우리 서로는 '섣부른 결혼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남자는 생각한다.
주변의 친구들은 본인을 성격 좋은 순둥이라 부른다. 부모님한테는 말 잘 듣는 착한 큰 아들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렇게 비난받아 본 적인 없다.(반면 부인은 항상 이 남자를 선한 얼굴로 독설을 내뱉는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이 여자는 생각한다.
나의 친구들은 나의 명랑함을 좋아한다. 주변에서 배려심 있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남편에게 정신이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할 뿐이다.(남편은 이 여자에게 항상 말한다.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가라고...)
이렇게 서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에게 있어 상대방은(좀 과격한 표현으로) '쓰레기'다.
내가 이렇게 쓰레기를 잘 못 만났으니, 이혼을 하는 게 답인가?라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나에게 쓰레기 수준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은 맞지만, 나와 연관시키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봤을 때 이 사람이 진정 쓰레기인 것인가?
결론은 '아니다'이다.
이 사람은 차분한 성격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다.
평소 성실한 성격으로 본인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모범 가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나쁜 여자인가.
아니다.
밖에서 열일하는 남편을 위해 모든 집안 일과 아이들 양육을 혼자 도맡아 하며 남편이 일절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불만 없이 살았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밥을 차리고 집 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 집안의 식모로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전업 주부의 삶을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니, 우리는 결혼에 적합한 훌륭한 남, 녀가 아닌가!!
그럼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그렇다. 우리 각자는 너무 좋은 남편이자 부인이다. 성실한 아빠이자, 자상한 엄마다.
우리 각자는 너무 '좋은 사람들'이다.
다만 서로 너무 '다른 것'이 나쁘다. 그것이 잘 못된 거다.
여기까지 결론이 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넌 좋은 사람이니까... 너한테 맞는 다른 인연을 만났다면... 내가 비난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오히려 너의 장점으로 인정받으며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다른 날 만나서 넌 최고의 나쁜 사람이 되었구나'
마음속으로 남편을 실컷 욕한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우리의 결혼 생활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티브이에서도 이혼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에는 이혼이라 하면 둘 중 한 명이 죽을죄를 졌구나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한쪽이 어마무시한 나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게 되기 쉽다.
요즘 우리 부부는 신혼 때만큼 자주 심각하게 싸우지는 않지만 역시 이 사람과의 '다름'이 나의 가슴 한 곳을 답답하게 만들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도 이혼에 대해 혼자 생각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서 문득 깨달는다.
'그래 이혼은 상대가 일방적으로 나빠서 하는 게 아니야.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름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결국 사랑으로 극복하지 못한 (우리 같이 평범한) 커플이 각자의 행복한 삶을 찾아서 이혼이라는 해결점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다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거의 이혼각이지만, 아직은 그 다름을 극복할 만큼의 서로에 대한 애정과 동지애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므로 당분간 이혼은 안 할 것 같다.
이혼은 최후의 최후까지 보류로 하겠지만, 그전에 서로의 다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다름을 인정할수록 상대방은 나쁜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점점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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