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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Dec 12. 2023

아내는 왜 남편의 성공을 순수하게 축하할 수 없는가?

결혼 후에 알게된 사실인데, 남편은 내가 다닌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과는 다르지만)


우리는 사귄지 1년도 채 되지않아 부부가 되었는데, 그때는 과거로 보나 현재로 보나 서로의 수준(?)이 비슷했다고... 아니 굳이 따지면 세 살 연하였던 남편은 사회 초년생으로 나보다 사회경험도 적고 직급도 낮았기 때문에 내가 좀 더 잘나갔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초 엘리트 정도는 아니였지만 나름 미래가 기대되었던 젊은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야속한 세월은 흘러 흘러 32살의 촉망받던(?) 디자이너이자 만화가(?)였던 난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었다.

난 전업으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도 내 일을 어떻게든 놓치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갓난 아기를 키우면서 밤을 꼴딱 새어가며 프리랜서 웹툰일을 했다. 둘째를 어린이 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중학교와 복지관에서 그림과 컴퓨터를 가르쳤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주변의 도움 하나 없이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독박으로 하면서 내 커리어까지 챙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잡'에 대해 아무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어느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했고 대단치도 않은 일하느라 살림과 육아를 소홀히하는 죄 많은 엄마였다. 

남편을 비롯한 시댁식구들의 못 마땅한 눈초리, 많이 미숙했던 강사일, 바쁜 수업준비와 관련 공부, 늘 미안하고 부족한 엄마와 아내의 역할에 대한 부담은 결국 나의 2년동안의 도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커리어와 엄마의 역할사이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자는 시간도 쪼개어 푼돈을 벌던 그 때에도 남편은 흔들림없는 의지로 본인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잘 쌓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출발선은 같았지만, 

10년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 조금씩 벌어졌던 남편과 나의 격차는 하늘과 땅차이 쯤 된다.

수수한 눈매가 매력적이었던 평범하고 소박하던 어린 청년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것이 재수없지만) 여러권의 책을 낸 작가이자, 잘나가는 강사이자, 유튜버가 되었다. 집도 본인 차도 (내가 모는 차도) 은행계좌도 모두 남편 것이다. (내껀 하나도 없다. 괜찮다 어차피 자기가 번돈이다)

물론 나쁠 건 하나도 없다. 알뜰하게 살림만 잘하면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된다.


그냥 단지, 거울속에 내 모습이 초라하게 비춰질 때가 있는데 조금 괴롭다. 아니 사실 많이 괴롭다.


현실에 만족하면 된다. 나만 날 포기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 할수 있다.

우리 가족이 잘 살기 위해 난 내 커리어를 포기했고

내 목숨을 받쳐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다.

그거면 됐다. 난 잘한 선택을 한 것이고, 결국 우리 가족이 따듯한 집에서 배불리 먹고 큰 돈걱정없이 잘 살게 되지 않았는가.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누가 나에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글쎄... 나는 확실히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남편은 나에게 신이나서 얘기한다.

오늘 갔던 세미나에서 본인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강의장에서 자신의 사인북을 받고 사진을 같이 찍고 싶어하는 젊은 여자들이 누가 있었는지.(실제로 잘만 찍어서 보여준다. 안 보고 싶은데)

자신의 책이 yes24에서 몇위에 랭크 되었고, 온라인 강의 수강평의 별점이 얼마나 높은지.

시댁식구들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남편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가끔 대단한 찬사들도 받는다.


나도 당연히 남편의 성공이 기쁘다. 기꺼이 축하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켠에 느껴지는 초라함과 부러움은 진정 욕먹을 감정인 것인가. 


남편의 기고만장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자기랑 똑같이 꿈많던 눈이 초롱초롱 했던 젊은 아가씨가 타임워프를 한 것처럼 한순간에 늙고 볼품없고 능력없고 본인 통장엔 돈 한푼 없이 생활비를 얻어내기 위해 남편 눈치를 보는 자존심도 없는 중년 아줌마가 된 것에 대한 애잔함 따위는 잊은 듯하다.

그점이 조금 서운하다. 그래도 내 청춘을 받친 나의 노고를 조금은 알아줬으면....


아! 이 글을 서둘러 마쳐야 할 것같다. 

지금 온라인 수업 중인 남편의 점심밥을 만들러 가야한다.

시간당 높은 페이를 받는 남편의 밥을 챙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당 '0원'(전기세가 나가니까 오히려 마이너스인 셈)인 내가 쓰는 이런 글 따위 보다 말이다.


신님!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게... 아니! 결혼할 남자를 못 만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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