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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02. 2024

Again, 고향으로 Return?

한차례의 광풍이 휩쓸고 간 후

얼마 전 아침에 갑자기 인사팀장으로부터 문자가 다.

" 안녕하세요. 인사팀장입니다. 지금 교육 중인데 팀장님과 같은 고향분인 *** 면장님이 안부 전하네요" 친절히 전화번호까지 쓰여있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 91년도에 나랑 같이 입사한 고향 동기인데 벌써 사무관을 달고 우리 군 인사팀장과 같이 사무관 교육을 가서 같은 분임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 동기가 우리 군 인사팀장에게 내 안부를 물은 것이다.


그렇다. 동기는 사무관 승진을 했던 것이다. 20년 만의 소식이다. 고향을 떠난 지도 진짜 20년이 되었다. 나의 고향과 지역색이 전혀 다른 곳으로 왔었다. 시골 공무원은 고향에서 근무하는 게 최고라는데 옮겨보니 실감났다. 정작 그곳에 있을 때  늘 곁에서 느끼던 공기처럼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여기선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보니 그게 홈그라운드, 토박이들의 실세 같은 것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곳에 와서 적응 못했던 몇 년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곳으로 리턴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 헉, 동기가 벌써 사무관 승진을 했다니 아침부터 암울한 소식을 전해주시네요"라고 우스개 문자를 보내고 동기에게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동기는 사무관 교육 중에 분임끼리 이곳에도 다녀가기도 했었다. 프사에는 권력을 얻은 여유가 느껴졌다. 우리 동기가 나 포함 여자 셋, 남자 9명이었는데 남자는 절반이상 퇴직하고 4명 중 2명이 사무관 승진을 했고, 여자 2명은 결혼 후 이 조직을 떠났다. 그렇다면 남은 여자는 나뿐이고 우리 동기중 6급으로 남은 사람은 2명이다.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5년이 남았는데 애들은 다 키웠고, 남편 퇴직은 4년 남고 2년 후부터 임금피크를 들어가고 나는 고향으로 가서 1년만 버티면 나도 도전해 볼만 하지 않겠냐는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자기는 그곳으로 주말마다 낚시를 가겠다고 한다. 딸도 갑자기 신나기 시작했다. "엄마 그러면 난 주말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 하며 남편과 딸 그리고 나는 거사를 앞둔 가족들처럼, 특히 딸이 이상하기 만큼 나보다 더 들뜨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말을 들은 결혼 해서 멀리 살고 있는 여동생은 무서운 가족이라며 놀렸다. 벌써 내 마음은 고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승부수를 던져서 50% 확률인데 만약 그곳에서 승진을 못하더라도 젊은 시절에 봤던 사람들이 어떻게 늙었는지를 보는 것도 재미이고, 이곳보다 사계절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차있으니 먹고 싶은 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방을 얻어야 하는데... 이곳 짐은 어떡하지..' 별별 상상을 하면서 그곳에 가면 누구부터 만나볼지 그리고 큰아버지가 아직 생존해 계시니 돌아가시기 전에 큰아버지 백도 좀 이용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고향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타진을 해보았다. 지인은 "뭣하러 오려고 하느냐, 이곳도 쟁쟁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힘들다.."는 비관적인 답을 들었다. 동기에게는 " 나 그곳으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하니 단번에 답이 "좋지 " 하고 나왔는데 그건 승자의 여유에서 나온 답이리라. 그렇게 하루를 설렘으로 방방 뛰었다. 다음날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만약 당신이 고향으로 간다면 지금 관사를 빼서 회사 근처로 갈 수밖에 없소 " 그렇게 되면 주소도 옮겨야 하고 아이가 이 지역에서 받고 있는 연 삼백만 원의 대학등록금 지원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갑자기 그런 혜택도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자 고향으로 간다면 진짜 행복하게 아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확실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고향을 가면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고 늘 내가 숨 쉬던 공기를 다시 마실 수 있겠지만 젊은 시절 나와 같이 대등한 관계였던 사람들이  이젠 그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 또 내가 지금 젊은 나이도 아닌데 또다시 그곳에 적응하려면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을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며 그 선택이 옳았던 적도 있었지만 아닌 것도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 할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다들 만류했다. 그중 한 명만 시도해 볼 만하다고 답을 했고 나머지는 " 아휴,, 뭣하러, 무슨 영화를 바라겠다고 갈라고 해, 그냥 여기서 명퇴해..." 이런 반응이었다. 사실 이루어지지 않을 일임을 알면서도 억지로 판을 벌리려고 했던 것이다. 고향에 가면 날 반겨줄것같은 감정도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일수 있다. 거기서 나를 기다릴거라는 착각으로 서둘러 그곳을 갔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고 과거에 느꼈던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옛말 틀린거 하나 없다. 행복은 멀리있는게 아니고 가까이있고 불행은 행복뒤에 숨어 있나니.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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