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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09. 2024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신다면

서울이 고향이라고 하면 어떠하실런지요

시골공무원들은 자기 고향에서 근무하는 것만큼 큰 메리트는 없다. 일단 지역을 다 파악하고 있기에 업무 하는데 편리하고 지역 주민들도 다 아는 사람이라 어려운 민원 원만한 합의를 끌어낼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면단위 행정에서는 고향만큼 유리한 점이 없다. 하지만 지역색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안될 것 같은 민원부탁을 거절하여 두고두고 욕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 전 내가 고향에 근무할 때도 장단점이 있었다. 메리트들은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근무했었지만 서운한 건 역차별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유롭지 못했고 고향이라는 게 그냥 내게 불편하고 왠지 검열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할 때도 부적격자인데도 면장의 지시에 의해 선정해줘야 했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뒤따르는 후환으로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고 보니 그 모든 게  추억이 되었다. 그 당시의 복잡한 감정은 사라지고 그때의 일들만 남았다.


고향을 떠나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난 고향과 비슷한 시골 면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각종 행사 때 어떻게 해서 마을의 연로한 주민들과 가깝게 대화를 하다 보면 "자넨 고향이 어딘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막 이 지역으로 근무지 옮겼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사투리를 거리낌 없이 며 " 제 고향은... 블라블라"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보면 어느 순간 어르신의 관심은 내게서 멀어지는 듯싶었다.  눈동자는 나에 대한 관심의 빛이 사라지고 멍한 무관심의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게 한 번이면 뭐 나의 착각이겠지 하지만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루틴이 되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살던 고향이 지금 있는 곳보다 딱히 그렇게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곳의 지역색이 아주 강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면 다를 수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점차 자연스럽게 썼던 사투리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매번 사투리가 그들에게 내 정체를 드러내기에 충분했었.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읍지역 그곳을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굳이 내가 어디에서 왔고 하는 그런 말들이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자 이젠 나름의 재미가 생겼다. 누군가 내게 고향을 물어보면 그냥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라고 말하면 금세 내 앞에서 상대의 흥미가 떨어짐을 느끼게 되는데 이젠 그걸 즐겨보는 것이다. 혹시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오호 그래?" 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지 그 한 명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답해도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열의 열은 무조건 금세 관심을 거두고 저 멀리 줄행랑치며 사라지는 것이다. 이젠 순간의 관심을 거두고 시간낭비 하기 싫다는 듯 사라지는 어김없는 모습을 붙잡으며 "아니 어딜 가시나요.. 제 고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 고향 이야기 들어보세요" 하는 상상을 한다. 오히려 고향 이야기 꺼내며 동시에 어떤 포인트에서 관심이 사라지는 걸 즐기고 있다. 태어난 고향을 우리가 선택 못하지만  한국사회에선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고향이 어딘가" 할 때 "서울인데요" 했을 때는 어떤 반응일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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