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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31. 2024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 2

둘째날

공무원 하려면 심장이 단단해야 한다.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가야한다.


퇴근 무렵 조용한 사무실 공간에서 인사팀장을 만났다. 숨이 차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 우선 물부터 먹어 " 자리에 앉아 어떤 이야기부터 할지 모르던 찰나 " 일단 오늘 있었던 이야기부터 해봐" 세상에 비밀은 없는지 익히 인사팀장은 일련의 일들을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정수기에서 받은 종이컵의 물을 벌컥 들이 겼다. 들이켰어도 목이 계속 마름을 느꼈다. 당장 오늘에 발생했던 일부터 작년 하반기에 시작이 되었던 업자 사업 주려고  우리 팀 소관도 아닌 거 밀어붙이고 끝까지 방해한다는 표현까지 썼던  일까지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로 풀었다. 동성이고 나이도 비슷해서 고충 털어놓기엔 편했다.  


모든 게 시간이 지났어도 차곡차곡 쌓여 서로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큰 걸 바란 건 아니다. 다음 인사 때는 서로 안 만나게 내가 가던지 면장이 가던지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인사팀장이 이렇게 말한다.

" 이런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 어차피 아랫사람도 좋은 소리 못 들으니 일단 내일 아침에 맛있는 커피를 사가지고 가서 면장과 차분히 이야기를 해보게, 나는 면장과 잘 지내고 싶다. 그렇게 해도 안되면 나한테 전화를 줘. 그 커피 갖다주고 이야기한 결과도 말해주고"

사실 내 성격상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운명은 정말 면장과 내가 합이 전혀 맞지 않는 듯했다. 다음날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와서 면장과 대화를 해보려고 했더니 하필 그날 읍면장 회의가 있어서 면장은 사무실에 10시에 온다고 한다. 마침내 10시가 되어 면장은 사무실 도착했다. 사무실에 있는 전자동 머신에서 커피를 가지고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하필 그 타임에 커피머신이 고장이 나 있었다. 고장이라고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면장에게 다 갈 커피조차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냥 녹차 한잔을 들고 면장실로 올라갔다.


일회용 녹차티백을 우려낸 녹차 한잔을 들고 올라갔더니 기다렸다는 듯 책상에서 일어나 탁자로 옮겼다. 우선 어제 감정이 앞선거 죄송하다고 했다. 면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직을 관리하면서 자기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게 차를 가지고 올라와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다음엔 내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내 감정을 호소하려고 했지만 그 틈을 주지 않았다.
그 틈새를 이용해 잠깐 말을 꺼냈더니 다시 목소리가 바뀌며 반격을 한다. "아니 공문 올라온 거 그렇게 (오탈자) 올라오고 , 계약서 가지고 오라고 하니 엘리베이터 계약서를 가지고 오지 않나 내 속이 안 터지겠어요?" 할 말이 없었다. 당초 계획은 작년 일부터 시작해 풀어보려고 했지만 이 사람한테 그런 말이 통할 거 같지 않았다. 자기 말만 막 내뱉고 직원의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공감하려 하지 않는 자에게 말해서 뭐 하겠나. 그렇게 반격을 한 나만 잘못한 자가 될 뿐이다. 그냥 내려왔다. 남은 건 그동안 억눌린 분노를 분출해 버렸다는 개운함 뿐이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렇게 한 후 내 속에 어떤 응어리, 분노 같은 게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의외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목소리도 흥분으로 인해 떨리거나 울분 그런 것도 없이 큰 고함을 친 것이다. 그냥 그렇게 한 나에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내 속에 분노가 쌓였을까 했다. 면장과 소득 없는 화해였지만 그냥 내가 내뿜은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면장실을 내려왔는데 면장과 유난히 잘 맞는 여직원이 커피잔에 아이스커피를 가득 담아 면장실로 올라가는 것이다.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커피 뽑으려 했더니 고장이더니 저 여직원이 뽑을 땐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어긋나고 맞지 않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전이 지났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다.
오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팀장회의를 하게 되었다. 각 팀마다 일주일 해야 할 일에 대해 계획서를 보고 그냥 읊는 것이고 전달사항을 면장이 단순히 전달하는 것뿐이다. 말이 회의이지 일방적인 지시전달 그것이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하는 그런 회의는 아니다. 그리고 회의를 마무리 짓고 면장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제가 연초에 조직분위기를 강조했는데 어제 조직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침에 차를 가지고 올라와 이야기를 하면서 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 차를 마시며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잘할 수 있겠죠? 팀장님? " 이 말을 듣는 순간 면장이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했다.'헉'하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답을 하면 모든 걸 인정하는 꼴이 되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의 존엄을 위해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제의 일이 나 혼자 조직분위기를 해쳤고 어제 일은 자기가 함구해 줄 테니 앞으로 잘하라며 모든 것을 나 혼자의 일탈로 간주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다. 공감능력이 없는 건 확실했다. 소통이 잘 되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모든 걸 오로지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그 교활함에 더 이상 어떤 반론도 의미가 없었다. 직원들이 산 증인인데도 감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다.


직원들이 일을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닌 것은 갑질이다. 그렇게 괴롭힌다고 일이 잘 추진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의 목적은 일이 목적이 아니라 꼴 보기 싫은 직원을 괴롭히는 것이다. 직원들을 괴롭힐 목적으로 업무를 빙자해 괴롭히는 걸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누군가 물어보면 그들은 업무를 잘하라고 그러는 건데 뭐가 문제냐 변명할 것이다. 나중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업무 핑계를 대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막 모욕적으로 궁지에 몰면서 무능한 자로 내몰고 내가 오기 전의 일이라고 말해도 듣지도 않고 직원을 괴롭힐 목적으로 추궁하는 게 무슨 업무를 잘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이제 3개월 후 인사발령 시기가 오면 그자가 가던지 내가 가던지 해야 한다. 3개월만 버티면 된다. 그리고 이 일은 끝난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 일이 생긴 지 세 번째 날에 심장 벌렁거리는 일이 발생했다. (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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