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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31. 2024

비서실장의 전화로 전세가 역전되다 3

셋째날

이틀에 걸친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했지만  꿀리거나 주눅들거나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도 모르게 나의 내부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겠는가.


앞으로 면장과의 관계가 껄끄럽기는 하겠지만 3개월만 참으면 되니깐 최대한 안 부딪히게 조심할 수밖에 없다. 면장도 공로연수까지 1반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나의 이런 행보는 내 나이 20대에는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세상의 풍파를 겪은 탓인지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 뭐 그런 심리다. 본인 또한 뭔가 느끼는 것이 있으리라. 그렇게 이 사건이 끝일줄 알았다.

 

3일째 되는 날 부면장으로부터 놀라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갑자기 부면장이 급하게 나를 부른다. 뭔가 심상치 않은 얼굴이다. 심각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어제 비서실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면장님 하고 팀장님하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차 마시고 화해하고 마무리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이게 군수님 귀에 들어가면 서로 좋을 것 없으니 얼른 인사팀장님한테 전화해서 이야기하세요" 어제 비서실장이 부면장 찾는 전화가 왔을 때 나도 그 말을 들었기에 설마 혹시 했다.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인사팀장은 둘이 차 마시고 풀고 일단 3개월만 참으라고 했었다. 설마 인사팀장이 말했을 리는 없다. 다급하게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혹시 내가 그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화했는가, 나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아침에 갑자기 비서실장한테 끌려갔다가... 아니 불려 갔더니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


인사팀장도 말하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비서실장이 알게 되었을까. 일단 부면장은 급한 불은 껐다고 면장에게 보고를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면장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고 그때 면장이 오늘내일 중으로 가져오라던 방재회사의 직원이 연간계획서와 계약서를 들고 방문했다. 나와 업체직원 부면장 이렇게 면장실로 올라갔다. 살짝 면장의 얼굴을 살폈다. 나와의 일이 젤 윗선에 보고 직전 막아진 건에 대한 느낌이 궁금했다.


점심때 한잔했는지 붉으스레 한 얼굴에 고압적인 태도가 살짝 물러가고 한풀 꺾인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 이 미세한 느낌이 맞을 거라 생각했다. 뭔 특별한 말이 오갈 줄 알았다. 업체 직원에게 연간계획서를 보자는 말도 안 하고 소급해서 다시 약을 할 수는 없고 오늘자로 하라는 간단한 말 뿐이었고 추가적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부면장이 다른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렇게 바로 사무실 내려오자마자 2주간 미결로 걸려있던 문서도 바로 결재되었다.


사실 조금 허탈했다. 이렇게 결재할 것을. 그동안 잘 결재하던걸 갑자기 소방에 꽂혀서 그냥 계속 나한테 추궁하며 계약서가 왜 없냐고 난리 치기 전에 좋게 말해서 하면 될 것을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감정적으로 했는지. 나와 둘만 있었으니 얼마나 인격모독하듯 발언을 했는지는 나만 알 뿐이다. 대외적으로 자신은 업무를 제대로 하라는 차원이었다고 하겠지. 물론 나쁜 의도가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세상이 변해도 자신의 제왕적 위치에만 사로잡혀있다. 누군가 옆에서 중단해주지 않으면 그게 낭떠러지인 줄 모르고  나가니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면장이 단순한 한 개인의 일탈로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는 자로 나를 단정하고 이 건을 끝내려 했지만 누가 제보했는지도 모르는 비서실장의 전화로 면장에게 약간의 데미지를 입혔을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젤 윗선이 아닌가. 윗선이 하는 것에 촉각을 내세우고 엄청 노심초사하는데 높은 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건 본인도 원하지 않으리라. 나야 6급으로 조용히 사는거니 잃을게 없지만 상대는 보은 및 관리차원에서 잡음이 난다면 치명타이다. 근데 정말 이런 결과를 전혀 생각도 못했을까. 또 대질심문을 한다면 작년 업자 사업 주려고 안달이 났던 건부터 확 불어버리려고 했다. 팀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말이다.


일개 직원의 일탈로 치부하고 끝내면 소문이 안 날 줄 알았을까.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는 자로 몰고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위를 계속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을까. 세상은 다 바뀌는데 자신의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지시만 내리면 직원들이 굴종할 줄 알았을까.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야 물갈이가 되고 바뀌게 될지 모르겠다.


여전히 의문이다. 누가 비서실장에게 면장과 나 사이 있었던 충돌 이야기를 했는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제3의 인물이 주변에 있는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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