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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r 30. 2024

갑의 횡포 종결을 위해 1

첫째날

요즘 MZ세대 공무원들의 퇴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악성민원도 민원이지만 여전히 경직되고 수직적인 분위기에 55세인 나도 힘든데 그들은 어련할까 싶었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는 연일 내리고 가로수 벚꽃은 비를 맞아 만개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젠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그리 감성적이지 않다. 그러든가 말든가 내 마음이 크게 동요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먹은 거 같다. 나이 들어감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극복할 수 없는 건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갑의 행태를 직면하면 분노가 치민다. 수작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업무를 빙자하며 교묘히 괴롭히는 것이다. 그 나이에도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그동안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 일 것이고 하루아침에 실행한 행위는 아닐 것이니 얼마나 많은 노하우와 스킬이 쌓였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오후 공포의 인터폰이 울렸다. 늘 그들은 그렇게 인터폰으로 테러를 시작한다.

" 센터 소방계약서 가지고 올라오세요"

" 아 연간계획서 4월 4일 날 가져오신다고 해서요.."

"아니 그건 그거고 계약서를 가져와보세요.."

난생처음 들은 계약서라니. 어느 어리석고 맘 좋은 전임 복지팀장이 총무팀 인원이 부족할 시기 센터일을 도와주다가 완전 복지팀 업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 온 복지팀장들은 계속 그걸 다시 총무팀에 돌려주려 애썼지만 실패했다. 조직의 특성상 한번 업무를 다른 곳으로 퍼버리면 절대 받으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게 왜 복지팀일이냐고 넘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또 소방은 내가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부면장이 선임이라 계약서나 연간계획이나 부면장이 해야 할 일이었다.


난 멘털이 나갔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려 그동안 참아왔지만 순간 두렵고 당황스러워서 막 문서를 미친 듯 찾아서 가지고 올라간 게 엘리베이터 계약서였다. 면장은 화를 내며 연필로 그 제목을 쫙 그으며

" 이게 소방계약서입니까? 제대로 하세요"

" 아 네 죄송합니다..." 헉헉 거리며 부랴부랴 내려가려는데 면장이 "이것 좀 보세요" 하며 자신 책상 컴퓨터로 온나라 문서를 열어 진행 중인 내가 올린 문서를 보여준다. 2024년 3월분 용역비인데 본문에 2023년 6월분이라고 되어있다. 매월 지급하는 거라 전에 다운로드한 양식을 불러오다가 미처 확인 못하고 올린 것이다. 쯧쯧거리며 이런 식으로 일을 하냐고 질책한다. 아주 기회를 잡은듯싶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제야 면장이 왜 결재를 그동안 안 했는지 알게 되었다. 보통 오탈자가 나오면 인터폰 해서 고치던지 반송하면 되는데 면장은 일주일 이상을 미결인 상태로 놔두었다가 내가 반응이 없자 발동이 걸린 것이다. 기회를 잡은 것이다. 맘에 안 들면 결재를 안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젠 그것에 대해 묻는 것도 포기한 상태다.


내가 7월에 와서 내가 오기 전 6월에 계약을 했을 것이라 공문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아 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 작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계약인데 전 담당자가 6월에 그냥 계약 연장하자고 하고 계약서를 따로 안보 내줬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래도 챙겼어야 했는데 "라며 업체 직원은 계속 죄송하다고 했다.

종이로 출력해 둔 문서를 찾아보니 방재회사 직인만 있는 용역계약서만 있었다. 일단 그것을 가지고 올라가 업체에서 말한 대로 그 당시 담당자가 계약서를 안보내줘서 면장직인이 들어간 계약서는 없고 이것만 있다고 설명했다.


면장은 사하는 태도로 우리면 직인이 없는 용역계약서를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아니 계약서가 뭔 뜻인지 모른가요?"

"계약서가 뭔 뜻인지 모르면 공부를 해서 알아오세요.. 뭔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합니까?"

내가 오기 전 계약서를 내가 무슨 수로 만들어 낸단 말인가. 내가 오기 전에 그런 일이 있어서 계약서가 없다는 말을 해도 그 말을 안 들은 건지 듣고도 억지를 부리는 건지 없는 계약서 가지고 그따위로 일을 하냐고 나를 무능하게 계속 밀고 가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가스라이팅이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내가 아닌 귀신이나 제삼자가 나타나 내 몸속에 빙의를 한 듯

" 제발 그만 좀 하세요. 그만 좀 괴롭히라고요. 뭐 복지 하면 다 복지팀 업무인 줄 아나요? (순간 복지부동 말까지 할 뻔), 내가 왜 이 소방업무를 봐야 하나요? " 하며 면장한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면장의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고 면장의 목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아니 내가 업무를 제대로 해보자는 거지 뭘 그리 괴롭혔다고 그럽니까?"라고 면장도 큰소리를 쳤다.

 "이게 업무를 빙자한 괴롭힘 아닌가요?" 정말 이렇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과연 내가 한 고함이 맞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어떻게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그 소리를 버럭 질렀는지 그동안 내 가슴속에 쌓인 분노가 한꺼번에 밖으로 배출된 느낌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걸 이해하고 지금부터라도 만드라고 하면 되는데 이미 지나간 것도 전임자가 한 것까지 몰아붙이며 질책하는 건 나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명백한 일이었다.


정말 내가 면장에게 샤우팅 한 건 계획에도 없던 일이고 그렇게 버럭 한 것도 처음일이었다. 지금 그 당시를 회고해 보면 면장의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고 마치 내 뒤에서 고함을 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고 어떻게 내가 면장실에서 내려왔는지 뒤의 일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난 8개월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 같았다.


나의 무엇이 그를 그렇게 자극했을까. 뭐가 불만인가. 굴복시키고 싶은 건가. 그전에도 묘지건으로 인터폰으로 20년간 지역방송국 국장이 묘지 쓰는 것에 대해 전화가 왔다며 나한테 돌려주면 되지 악성민원으로 빙의하여 말 꼬투리 잡아 같아요 하면 정확하게 말하라 같아요가 아니라고 하는 게 마치 검찰취조받는 느낌이었다.


사무실에 내려와 2층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김질하며 분노로 휩싸인 채 이제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사팀장을 만나러 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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