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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pr 01. 2024

센스부족 상사 = 덕이 없는 상사

센스 없는 상사들은 걸리는 게 그것만 걸리는 게 아니다. 덕이 있는 상사는 센스도 있고 직원들에게도 잘해주는데 덕이 없는 상사는 센스도 없고 직원들에게 잘해주지도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읍면사무소에서 할 일이 있다. 바로 선거 공보물 작업이다. 일부 직원들은 하나같이 이런 일은 선관위에서 공보물을 보내는지 알았지 면사무소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니 옆에 있던 신규 직원도 "저도요" 한마디 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폭설이 오면 비상근무하고 제설을 해야 하고 태풍이 불면 비상근무를 하고 태풍 피해조사를 해야 하고 이런 선거업무 공보물 넣는 작업부터 사전투표 본투표 투표소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라테로 말하자면 전에는 선거벽보 붙이고 선거가 끝난 후 떼는 작업까지 힘든 시간이었는데 이젠 조금 수월해진 것 같지만 사전선거가 생겨서 샘샘이다.  


읍면사무소에 각 후보와 당의 공보물이 도착하는 시간대가 다른데 금요일 오후부터 순차적인 배송이라 한다. 어떤 면은 금요일에 전 직원이 달려들어 늦게까지라도 하고 주말을 온전히 쉬자는 분위기라고 한다. 우리 면은 토요일 오전에 작업하기로 했는데 하필 그날 여직원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많은 직원들이 결혼식 참석 못하고 남자 팀장과 면장 그리고 여직원 2명만 결혼식 참석하고 나머지는 아침 10시부터 공보물 작업을 하기로 했다. 후보자들 공보물을 사무실 탁자에 길게 깔아 두고 한 명은 쭉 공보물을 걷어오면 미리 인쇄된 주소용지와 함께 봉투에 집어넣는 작업이다. 시작할 때 도대체 언제 끝날까 해도 전 직원이 합심해서 하니 4시간이면 충분히 마무리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결과 점심시간 때쯤은 거의 70프로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는 점심으로 김밥, 어묵, 떡볶이, 튀김등을 분식집에 가서 가져와 2층 회의실로 가지고 올라가 먹기로 했다. 시골 면 소재지에 하나 있는 김밥집주인아주머니가 혼자 갑자기 많은 양의 주문을 받아 서둘렀는지 김밥의 거의 옆구리가 터진 채로 왔다. 어묵은 일회용 비닐봉지와 1회용 스티로폼 국그릇에 담겨와서 풀다가 국물도 흘렀다. 밥을 먹고 다시 작업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이야기가 나왔다. 면장을 모시고 결혼식 간 팀장이나 결혼식 참석한 여직원들은 끝나고 사무실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면장이 여기 안 들르고 바로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모두 한 마디씩 했다. 

"뭣하러 여기 들르려고 하나 "

그러다 내가 그 팀장한테 전화를 해서 면장님 꼴 보기 싫으니 여기 오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블루투스로 연결돼서 바로 옆 면장이 들으면 이건 완전 대 참사라고 했다. 그건 최악의 상상 시나리오다.


 선거담당자가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팀장님, 거의 다 끝냈고 3시 안에 끝낼 거 같으니 그냥 사무실 들르지 말고 집으로 가세요..." 바로 흔쾌히 전화가 끊어질 줄 알았는데 상대 쪽에서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여직원이 하는 말이 "옆에서 면장님이 왜 자꾸 오지마라고 하냐고..." 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일하는 거 도끼눈으로 보는 면장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냥 오지 말라고 한 것도 있다. 분명 이렇게 말해도 들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자 다른 여직원이 말한다.

" 그냥 올 때 뭐 먹을 거 사 오라고 했으면 안 왔을걸요?". 부면장은 "면장 하고 통화했어요. 직원들 끝내면 눈치 보지 말고 다 집으로 귀가하라고 했어요.." 그 말을 끝내자 다른 여직원은 " 그 말이 더 기분 나빠요. 끝나면 당연히 우리가 집에 가는 것이고 그게 무슨 배려라고 하는 말이래요??" 

  "우리는 면장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커피를 원한다고요"


면장과 단 둘이 1시간 반동안 운전해서 결혼식장에 가기를 최후까지 거부하고 안 가보려고 노력했던 팀장에게 카톡을 했다. " 올 때 직원들 격려차원에서 커피 좀 사 오세요.. 배고파요 " 그랬더니 그 팀장이 카톡이 왔다 " 그냥 밥 드셔.." 엥 이게 무슨 반응인가. "그러면 면장한테 말해서 커피 사달라고 하세요" 이런 문자에도 그 팀장은 그 말을 면장에게 할 정도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직원들 모두 한숨을 쉬며 " 왜 그렇게 남자들이 센스가 없는지 몰라.. 보통 이런 작업하면 커피도 돌리고 하는데.. 휴우... 바랄걸 바래야지.." 뒤이어 그 팀장의 카톡이 왔다. " 면장님이 상황파악 하러 가신데요." 뭐 상황파악을 왜 하는 건지......   


결국 면장이 도착하기 전 선거담당자는 결코 면장이 커피를 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울며 겨자 먹기로 없는 돈에서 어떤 구멍에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커피 주문을 받았다. 면 소재지에 하나 있는 카페 커피맛은 솔직히 별로다. 하두 커피를 많이 마셔서 이게 중후한 맛이 나는 질 좋은 커피인지, 단순 커피믹스맛이 나는 커피인지 여직원들은 입맛이 예민하다. 솔직히 그 집 커피맛은 별로다. 그래서 다른 여직원들은 마즙을 시키고, 어떤 여직원은 자몽주스를 시키는데 물 빼고 얼음 빼고를 주문했다. 그러면 순수 자몽만 남는 건데 아주 신박한 주문이다. 그 여직원은 항상 진액만 뽑아 먹는 스타일이라 그 여직원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해도 이득이 될 거 같았다. 김밥을 먹을 때도 몸에 안 좋은 햄을 쏙 빼고 먹었다. 4시간 가까운 작업으로는 커피가 제일 좋을 거 같아서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이건 뭐 저렴한 프랜차이즈 커피보다 더 못 먹을 쓴맛이다. 역시나 고소함이라고는 일도 없었고 커피 주문한 걸 후회했다. 그러는 차에 면장이 도착했다.


빈손으로 온 면장은 우리 작업하는 걸 둘러보며 흡족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공보물을 담은 봉투를 더 과격하게 옆 의자로 집어던지며 엄청 열중인 채 면장 따윈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몇 번 서성거리다가 면장은 그 팀장과 함께 퇴장했다. 몇 분 후 어떤 여직원이 면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낸다. 그러자 선거 담당자가 갑자기 뛰어와서 그 여직원을 입틀막 해서 화장실로 질질 끌고 갔다. 모두들 그 장면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면장이 안 가고 다 듣고 있는 줄 알았더니 부면장이 저쪽에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화장실서 나온 여직원은 더 자신만만하게 나오면서 "뭐 어때 ,, 신경 안 써"

그 소란으로 모두는 심쿵했다. 그러는 사이 공보작업이 다 마무리가 되었다. 마을별로 묶어진 공보물을 싣고 우체국에 갖다 주면 이제 다음 주부터 각 가정에 공보물이 배달된다. 면사무소에 요즘 남직원들이 귀한데 꼴랑 두 명 있는 남직원 중 팀장은 면장 기사로 귀가하고 나이 들어 들어온 남직원이 봉투를 마을별로 노끈을 이용해 묶고 트럭에 싣고 우체국에 갖다 주는 역할을 했다. 갈수록 남직원이 귀해서 이런 일을 주로 해야 하는 면사무소에는 정말 애로가 많다. 저녁에 직원단톡방에 면장의 공치사가 올라왔다. "직원님들 오늘 공보작업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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