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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May 26. 2024

직원 화합의 날의 복병

직원 간 화합은 퍼펙트하지만 상하관계는 늘 그렇다

1년에 한 번 각 부서가 아무 데나 정해서 당일치기 직원 화합을 위한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있다. 5월 중순에 가기로 한 달 전에 결정된 일인데 그것도 우리가 날짜는 정한 건 아니고 면장이 정해준 날짜였다. 사실 면장과의 관계가 좋으면 신이 나서 이것저것 계획에 대해 발언도 하기도 하겠지만 실제로도 별 기대가 없고 기대 있는 척하기도 싫었던 게 사실이다.


바로 그 화합의 날을 가기 1주일 전 부면장이 어디가 좋겠냐고 묻자 바로 근처 중소도시 말을 하자 바로 나에게 계획을 짜라고 했다. 순간 순진하게 먹잇감에 달려든 자신을 책망하며 꼬리를 내리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게 없다"라고 말하며 여행경험이 없어 어떤 플랜을 짤 역량이 없다고 어필했다. 솔직히 총무팀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관여하기도 싫었던 게 사실이다.


나와 면장과의 관계도 껄끄럽지만 다른 직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입장은 틀리지만 상사이니 면장을 편하게 생각하는 직원은 없을 것이다.  나와 서무는 확실히 면장이 탄 차를 피하고 싶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냥 고 가면 되니까 같이 타면 타고 말면 말고 그런 분위기였다.


직원 16명이 출발하는데 사무실에 봉고차를 가진 직원차 한 대와 노동조합에서 빌린 카니발 한대 이렇게 차량 두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해서 부면장은 전체 직원회의를 하면서 1호차(직원봉고)에는 누구누구 타고, 2호차(카니발)에는 누구누구 타고까지 다 의견반영해 정해주었다. 당연히 난 면장이 안타는 차에 탑승하는 건 확실히 정해졌다.


다음날 광장에 모여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에 갑자기 직원들은 놀랄만한 소리를 들었다. 전날 면장, 부면장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직원들이 면장이 탄 차를 꺼려하는 분위기인 데다 서로 누구는 1호차, 누구는 2호차 탑승하기로 했다는 말을 한듯했다. 그러자 아침에 면장이 제안을 했다. 아니 명령에 가깝다. 뽑기를 하자는 것이다. 총무팀 직원은 부랴부랴 포스트잇으로 1번과 2번이 써진 메모지를 섞어서 한 명씩 뽑으라고 했다. 정말 이거 잘못 걸리면 하루종일 악몽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변수를 잘 생각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면장은 뽑지 않고 1호차를 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호차는 차량상태가 더 좋고 안락한 카니발이고 2 호자는 검은색의 오래된 직원 봉고차였다. 그리고  뽑기 대상은 면장도 포함이었다. 두근거리며 어쩔 수 없이 뽑아서 보니 내가 1번이었다. 당연히 면장이 1호차라고 생각한 나는 반 미친 상태로 내가 2번이다라고 거짓말을 하며 2호차 검은 봉고차로 뛰어가 조수석에 앉아 문을 잠갔다. 그리고 총무팀 여직원이 2번이라며 봉고차에 오르려는 걸 끌어내리며 얼른 1번으로 가라고 했다. 그 여직원은 면장 비위를 잘 맞추니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내려간 여직원이 잠시 후에 창문을 두들겼다." 면장님이 2번이에요.." 그 순간 난 용수철처럼 문을 열고 1번이 적힌 메모지를 모두에게 펼쳐 보이며 "내가 1번이에요"하면서 미친 듯 1호차 카니발 조수석에 재빨리 올라탔다. 정말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안도감을 안고 부면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두 차가 휴게소에 들렀다. 그런데 당황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면장은 아침부터 직원들과 화합하기 위해 정신으로 못하니 술을 먹고자 어제부터 준비하라고 했는데 부면장은 휴게소에서 맥주를 사면 시원한 걸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휴게소에 들렀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면장은 많은 야유회를 다녔지만 이렇게 술도 없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리고 부면장은 중간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날의 모임을 순조롭게 이끌까 골똘한 나머지 생각한 게 "야자타임"인 듯싶었다. 그날의 계획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지만 야자타임에 대해 말하는 순간 다들 반응은 별로였다.


그렇게 우리는 경남 하동에 위치한 국내에서 최장이라는 집라인을 타게 되었다. 정말 처음에 집라인을 탄다고 부면장이 계획했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다. 처음에 함안으로 정했는데 그게 운행 안 한다고 하자 하동으로 변경했던 것이다. 무슨 집라인에 꽂혔나 생각할 정도로 솔직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과연 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실제로 여직원 2명은 거의 실신하다시피 얼굴색이 변했다. 나와 우리 팀 여직원이 선두 주자로 타게 되었다. 정말 첫 코스에서 속도감 있게 내려갔든 게 마치 놀이공원에서 처음 느끼던 스릴처럼 느껴졌다. 하늘을 나는 새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지금 나의 시선인가 생각했다. 두 번째를 지나 세 번째 코스에 도착해 장비를 다시 장착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우리 직원인듯한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자세히 보니 아뿔싸 면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고 경악하며 눈을 급하게 내렸다.

나중에 하강해서 면장의 표정이 안 좋은 게 도둑제발 저린 느낌과 같은 상황이었다.


친구가 그 근처 동장인데 처음에 전화해서 식당 추천해 달라고 하니 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팀원이 찾은 식당이름을 말하니 거기 괜찮다고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나중엔 식당에 예약할 때 자기 이름 말하면 잘해줄 것이라고 문자가 왔다. 식당에 내가 예약할 때 친구인 동장 이름을 말했지만 별 리액션이 없었다. 그때 후에 친구에게 그곳으로 예약했다고 해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날 저녁에 친구가 전화가 왔다. 깜짝쇼로 식당에 찾아가려고 일부러 답장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동에서 사건이 발생해서 못 찾아왔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식당에서부터 본격적인 주당들의 실력 뽐내기가 시작되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 많이 먹은 사람은 면장뿐인 거 같았다. 서무에게도 억지로 술이 권해졌다. 그 자리에서 서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면장, 부면장이 시켰더니 서무는 작심발언을 했다. "면장님 담주만 주간업무 안 하면 안 될까요" 모두들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면장은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와 근처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직원들은 본인이 원하는 커피와 차를 주문했다. 내가 카운터 앞쪽이라 유리잔에 담긴 걸 들고왔는데 아무도 발딱 일어나 자기것을 가져가지 않는다. 자신 앞에 대령해주기를 바라나. 은근 피곤하다. 면장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도 사정거리에서 핀잔거리만 찾고 있는걸까.


엄청 어둡고 큰 카페였는데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면장이 술에 취해 '무슨 이런 사진을 찍냐'라고 술이 취한 채 말했다. 자신이 보기에 별것도 아닌 카페 내부를 찍는 게 그랬나. 속으로 별 상관을 다 하시네 하면서 또 뱅쇼를 시킨 직원의 것을 한모금하고 오른손에는 빵을 들고 있었더니.."아니 팀장은 왜 양손에 그렇게 들고 있어?"했다. '진짜 별 간섭이네 생각했다'. 직원 들과 화합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인 건 확실하다.



부면장은 우리에게 어떻게든 면장에게 다 가라고 말했는데 그게 사실 상사라고 아랫사람들이 무조건 다가가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윗사람이 오픈마인드하면 어느 누가 다가가지 않겠냐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제 순창의 체계산 출렁다리로 가는 곳에서는 부면장이 술을 마셔서 내가 운전을 해야 했다.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어 면장이 우리 차에 탄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자 최근 들어온 막내 신입직원이 서둘러 면장이 안타는 2호차로 넘어갔다. 하지만 말뿐이지 부면장이 설득해도 면장은 우리 차로 오지 않았다. 우리 차에는 나이대가 나랑 비슷한 무서운 아줌마 직원 몇 명이 눈빛 포스가 장난이 아니어서 무서워서 못 오는 가 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갑자기 신입직원만 면장이 타는 차로 넘어갔는데 술 한잔 이상 들어간 면장이 그 신입에게 노래를 시킨다는 것이다. "살려주세요.. 악"하고 문자가 그 신입직원이 왔다고 한다. 그에 덩달아 신나서 부면장은 그쪽에 전화를 하고 누가 노래했냐고 엄청난 궁금증을 보였고 면장은 또 부면장한테 전화해서 1호차 2호차 상금을 걸러 노래를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20만 원을 준다는 제안을 했다. 그때 MZ직원들은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봉고차 안에서 노래라니..


그러는 도중 또 부면장은 2호차 신입 여직원에게 또 야자타임을 제안했다. 스피커폰으로 하고 있었기에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제가 하는 말은 별 악의가 없으니 그냥 듣고 넘기세요., "하며 신입은 예의 있게 말했다. 그리고"나 바쁘니까 전화 끊을게"하고 전화를 딱 끊었다. 지혜로운 신입이다.


드디어 체계산에 도착해서 출렁다리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앞에서 2호차에 탄 여직원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머리 아프다고 했다. 그 차에서 공교롭게도 면장 뒤에 앉았는데 계속 자기 이름을 부르며 노래하라고 하고 정말 피곤해 죽겠다고 했다. 서무와 나는 면장과 같이 나무계단을 오르기 싫어서 정말 귀신이 쫓아올까 두려워 도망가듯 산도 제대로 못 타는데 온갖 사력을 다해 헉헉거리며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면장 목소리가 저 밑에서 들리자 정말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도망치는 모습과도 같았다.  신입 여직원과 면장 뒷자리에 앉았던 여직원 둘은 또 면장과 보조를 맞추어 계단을 올라가면서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술이 많이 취한 사람을 맨 정신으로 대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그런 사람들은 술 먹으면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면장 뒷자리에 앉은 여직원은 면장 무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의 얼굴이 얼마나 찡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허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산업팀장이 우리 차로 넘어왔다. 지금껏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직원 화합의 날을 한건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정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군에서 최근 야시장 행사에 읍면 직원들도 가서 팔아주고 먹어주고 해야 한다고 해서 쳬계산 출렁다리에서 돌아와 그곳에 참석해야 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몇몇은 돌아갔지만 특별한 일 없는 사람은 그곳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장과 부녀회장 몇몇은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참석하고 있으니 군청 과장들도 몇몇 지나가며 우리를 봤을 것이니 면장 어깨도 조금 올라갔을 것이다. 그때가 이제 저녁 7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부면장한테 우리 지금 집에 가면 안 되냐고 하니 야시장 위에 저 불빛이 켜지만 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포함한 직원 몇몇이 야시장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면장이 기분이 좋았는지 나에게 소주를 한잔 따르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내가 운전하는 걸 모르나. 그래서 운전해야 한다고 하니 얼굴빛이 변한다. 옆에서 부면장은 "아.. 그냥 받아..." 왜 마시지도 않을 사람에게 그냥 주는지, 그리고 또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그게 우리나라 술 문화이긴 하지만. 결국 종이컵에 든 술을 바닥으로 버렸다.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까 여직원들 모두는 시간만 재고 있었다.



.


결국 단합대회 및 화합의 날은 끝났다. 집라인 타는 것에 대해 나도 첨엔 회의적이었지만 이런 기회 아니면 두 번 다시 내차를 끌고 자발적으로 가지 않을 체험이라 이번 기회가 좋은 것 같았다. 출렁다리 역시 마찬가지다.


면장은 엄청난 양의 술을 먹고도 직원들과 화합을 하기보다는 봉고차 안에서 쓸데없이 노래를 시킴으로써 더 멀어지게 되었고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면장 덕분에 안락한 카니발로 여행을 했기에 왠지 면장은 자신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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