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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의 굴레

by Grace Jan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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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나 신년이 가까워지면 서둘러 다이어리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게 카페 회원들의 다이어리 구입 후기가 올라올 때쯤이다. 그걸 보면 나도 이제 신년 다이어리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력이 감퇴하니 다이어리는 삶에 뭔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을 막아주는 방비책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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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유저로써 다이어리 선택은 상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펜과 맞는 다이어리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다이어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펜 생활 만족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잉크를 주입한 펜이 다이어리 위에 글씨를 써나갈 때 마치 얼음 위 스케이트 타듯 매끈하고 윤기 있고 진하게 각인되는 걸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선 잉크 선택도 중요하다. 어떤 다이어리는 쓰자마자 잉크를 너무 흡수해버리거나 잉크가 흡수가 너무 안되어 진한 필체를 바라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


펜과 궁합이 맞는 노트가 있다고 한다. 명성이 있는 몰스킨은 비침이 심해 만년필유저들이 꺼려하는 추세다. 나 역시 그런 점을 느껴 몇 년 전부터는 로이텀에 정착 했다. 그러다 누가 뭘 샀다고 하면 혹 해서 구입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도저히 더 이상 써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방치하고 있는 노트가 한두 개가 아니다. 로디아노트. 클레르 퐁텐, 미도리부터 옥스퍼드 노트까지 전부 섭렵해 봤지만 역시 가성비갑은 로이텀이었다. 그 어떤 펜을 써도 매끄럽고 선명하게 써지며 종이색도 미색이라 눈 피로도도 적고 만져봤을 때도 느낌 또한 고급스럽다.


로이텀 하드보드 위클리로 매년 쓰다 보니 색깔별로 로이텀다이어리가 은근 쌓였다. 올해는 블랙. 다음 해는 카키, 그다음 해는 블루. 이렇게 매년 쌓이는 다이어리를 보며 사실 자칭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는 나에게 다이어리들은 처분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했다. 게다가 속지는 뜯어 버린다해도 하드보드 표지는 어떻게 버려야한단 말인가. 위클리뿐만 아니라 만년필을 계속 써줘야 하니 필사부터 영어까지 온갖 다이어리의 굴레에 빠진듯하다. 이미 발 들여놓은 만년필세계에서 빠져나가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다이어리를 구입하지 않고 만년필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 년 내내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유혹이다.


작년 하반기에는 다이어리를 줄이고자 구입하지 않았더니 만년필 잉크는 굳어가고 병잉크도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며 쓸쓸히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결국 만년필을 소유하고 있는 이상 다이어리는 평생 써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난 평생 다이어리로부터 도망갈 수 없게 되었다. 평생 다이어리를 쟁겨놓을 자신이 있으시다면 만년필을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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