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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 현안 문제로 다시 떠올랐습니다.
2025년 9월 18일부터 진행된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률안 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이 10월 21일 동의 마감 기한을 앞두고 17일,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청원인은 “초·중등 교원의 정치 활동을 전면 제한하는 현행 제도가 정치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 바, 근무 외 정치 활동을 허용하고 정당 가입·출마권 등을 보장하도록 관련 법률의 개정을 요청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프레시안, 2025. 10. 17.,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101714115305839?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검색일: 2025. 10. 18.(토)]
찬반 의견이 갈립니다.
교육부는 교원의 정치기본권에 대한 첫 의견 수렴에 나섰습니다. 2025년 10월 14일 각 시도교육청에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확대 관련 의견수렴 요청'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교원단체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숙원 정책이자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입니다.
[뉴시스, 2025. 10. 17.,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017_0003366492>, 검색일: 2025. 10. 18.(토)]
반면, 주간조선은 10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여론조사 전문업체 케이스탯에 의뢰해 서울과 부산의 유권자 각각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안 관련 여론조사에서 ‘교사의 정치참여 허용 찬반’에 대해 물은 결과, 반대한다는 의견이 찬성한다는 의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전합니다.
[주간조선, 2025. 10. 18.,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45315>, 검색일: 2025. 10. 18.(토)]
문제는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사안이 정책적 판단으로 여론조사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정당 참여와 정치 후원은 기본적 인권이므로 보장하되, 질서 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일정 부분 제한하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정치 후원은 질서 유지와 무관하고 정치 참여의 경우 학생 교육 관련해서 직무 행위와 연동하는 경우에 제한해야 합니다.
2010년에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제목으로 「민주법학」 제44호(민주주의법학연구회, 199-224쪽)에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이 글은 그 논문에서 발췌하여 다듬었습니다. 200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논란이 될 때였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의 민주노동당 후원회 가입 문제까지 불거졌습니다. 헌법적 관점에서 다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은 물론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의 인권 보장은 곧 교권의 약화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교권 개념이 논쟁거리였을 때입니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의 문제는 더 오래된 문제입니다. 1987년 현행 헌법으로 개정이 된 직후 교원단체가 정치활동의 자유를 요구하기도 하였고, 1998년에는 집권당이 교사의 정치적 활동 자유 보장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관련 법제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교사 또는 공무원은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직분 또는 직업이지 다른 시민과 달리 처우하는 ‘신분’이 아닙니다. 헌법은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합니다. 교사 또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내용 침해입니다. 정치적 기본권은 “국민이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국가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정치적 활동을 총칭”하는 기본권입니다(헌재 2004. 3. 25. 2001헌마710). 정치적 기본권 중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냐고 또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지 않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헌법 제8조가 보장하는 정당 활동권은 헌법 제24조가 보장하는 선거권과 별개의 기본권입니다. 정당 활동권 제한이 아니라 정당 활동권 박탈이니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의 금지에 해당하는 본질적 내용 침해입니다.
교사 또는 공무원은 이름만(명목적) 시민으로서 아직은 신민(臣民)인 지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헌법은 이름만(명목적) 헌법입니다. 이런 상황은 교사 또는 공무원이 공민이 되지 못한 채 ‘군림하는 자의 종복’으로서 공민의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사의 경우 시민이자 장차 공민이 될 청소년의 교육을 학교에서 책임지고 있는 주체라는 점에서 교사의 공민권 보장은 더욱 중요합니다.
헌법이 교사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제31조 제6항에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한 것인데요. 헌법의 방향은 법률이나 행정에 의해 교원의 지위를 보장하는 관점입니다. 교원의 지위에 대한 제약은 기본권 영역이 아닌 한 당연히 입법권으로 정할 수 있으니까요. 교사의 기본권 문제를 일반 국민의 기본권 문제와 다르게 취급할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입법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하여 광범위한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판례는 그것을 단지 추종합니다. 제 생각에 입법과 판례의 태도가 대한민국헌법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교사의 지위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1966)’ 제80조는 “교사는 시민이 일반적으로 향유하는 모든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자유를 가지며, 공직에 나갈 권리를 가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입법과 판례는 합리적 사유에 의한 논리적 근거를 세우지 못한 채 권위주의체제의 통치론과 그 관행에 순응하는 신민성이 빚어낸 부조리를 보여줍니다.
한국 사회에서 법학자들은 법리적으로 특별권력관계를 부정하지만, 입법과 판례와 현실에서 이른바 ‘특별권력관계’는 존재합니다. 특별권력관계론은 19세기 후반 독일의 권위주의적인 비스마르크헌법체제 공법이론에서 유래합니다. 그 본질은 기본권의 효력과 법치주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법률의 개별적․구체적 근거 없이 행정주체, 즉 왕이 특별권력관계의 대상자를 포괄적으로 지배하는 관계입니다.
군대․경찰․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 대한 법외적(法外的) 지배관계는 ‘전체 국민에 대한 봉사자’(헌법 제7조 제1항)로서 공무원의 지위를 위협합니다. 권력자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법적 보장 없이 그 신분을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권력관계론은 군주 또는 권위주의적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수단입니다. 특별권력관계에서 공무원은 시민 또는 공민이라기보다는 신민에 가까웠으며, 국민의 편이 아니라 국가의 편이 됩니다. 특별권력관계는 국가의 내부관계였고, 특별권력관계론은 그 내부관계에는 법이 침투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입헌민주주의국가에서는 기본권 또는 법치주의가 효력을 가지지 않는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가중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중제한이 어떠하냐에 따라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되찾는다 해도 공민으로서의 권리는 미수복 상태에 남아있기 십상입니다.
한국 사회가 준법 위주의 법치질서로부터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특별권력관계론의 법리적 쇠퇴와 달리 현실에서 특별권력관계는 민주공화국 헌법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교사와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단결권을 획득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학교는 교도소 또는 군대보다도 뒤늦게 인권을 회복해 가는 공간입니다.
법학에서는 특별권력관계를 법적으로 세탁하여 특별행정법관계 또는 특별신분관계로 논의하는데요. 교사 또는 공무원의 경우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에 기반한다고, 즉 ‘동의는 권리침해의 성립을 조각한다(volenti non fit injuria)’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공무원 임용에 대한 동의를 기본권 제한에 대한 동의로 의제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에 대한 기본권 제한 역시 헌법상 일반적인 기본권 제한의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헌법조문 상으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복리는 전시 아닌 평시에 교사 또는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정치세력으로부터 중립을 의미하는 정치적 중립성이 시민이자 공민으로서의 정치활동 그 자체를 부인하는 근거로 전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무원의 노동조합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은 정치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은 헌법적으로 용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권자인 인민이 대표에게 권력행사를 위임하고, 인민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인 동시에 선거권․피선거권의 기본권 주체로 개별화되는 것은 민주적인 의사결집 과정으로서 정치적 활동의 자유와 권리를 원초적으로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기본권은 기본권의 주체인 개별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주관적 공권으로서의 성질을 가지지만, 민주정치를 표방한 민주국가에 있어서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한 객관적 질서로서의 의미를 아울러 가진다”(헌재 2004. 3. 25. 2001헌마710)라고 본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교사 또는 공무원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정치적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민주적 객관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헌법이 금지하는 ‘사회적 영역에서 (시민권은 있지만 공민권은 없는) 특수계급의 창설’(제11조 제2항)입니다.
법률에 따른 교사 또는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제한이 헌법에 합치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구체적인 직무행위에서 중대한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꼭 제한해야 경우를 법률로써 최소화하여 어떤 경우에 제한되어야 하는지 상세히 규율해야 합니다. 독일에서 공무원이 국민에게 어떤 특정 정당에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으로 결정을 한다는 외관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것이 진공 상태는 아닙니다. 정치적 비판의 영역은 작동합니다. 그것이 입헌민주주의에 걸맞은 공무원 제도와 부합합니다. 지배권력이 아니라 전체 국민에 봉사하기 위해서 공무원은 국가의 편이 아니라 공민의 편에 서야 합니다. 공무원은 자신이 곧 시민인 동시에 주권자의 일원으로서 공민이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는 민주시민, 즉 공민을 양성함에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시민이기에 공민으로서 교육 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선거권 나이도 최대한 낮춰야 하고, 정당 활동의 자유는 더 낮춰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시민은 정치의 주체입니다. 정치는 야합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법외적 공간이 아닙니다. 헌법의 틀 안에서 법의 기초가 되면서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시민의 자유 영역입니다. 학생과 교사의 정치적 활동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을 공유하게 해야 정치세력으로부터 중립의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으로서 ‘교(사의) (인)권’ 보장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Male educator talking to his students in a classroom. Man teaching elementary school children, 제작자 Jacob Lund, 치수 8152x4283px, 파일 유형 JPEG, 범주 사람, 라이선스 유형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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