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의 도쿄를 여행했습니다. 일정을 정한 가장 큰 계기는 도쿄예술극장의 공연 <Planet: Wanderer>(Damien Jalet & Kohei Nawa)이었습니다. 마감이 다가온 원고가 있어 다소 일정이 촉박해졌습니다. 공연 관람 후 일본 국립신미술관(國立新美術館) 전시 관람이 빠듯해졌습니다. 관람이 오후 6시까지인데, 5시에 도착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망설이는데 배우자가 후회하지 말고 가자고 말해줘서 전시를 보기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백남준 공연 사진 작품이 있었거든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16년 하반기에 도슨트 양성 교육을 받고, 2017년부터 자원봉사자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어 백남준 작가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컬렉션을 보유하지 않은 일본 유일의 국립 미술관이라고 하네요. 건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1934-2007, 대표작 ‘중앙은행 캡슐 타워 빌딩’, ‘반고흐미술관 신관(네덜란드)’, ‘쿠알라룸푸르 신국제공항(말레이시아)’ 등)가 ‘숲 속의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설계했습니다.
전시 주제는 <<Prism of the Real: Making Art in Japan 1989-2010>>입니다. 일본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전시하는데요. 일본의 쇼와 시대(1926~1989)가 끝나고 헤이세이 시대(1989~2019)가 시작된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 문화가 세계에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가 기획 의도입니다. 도쿄 국립신미술관과 홍콩 M+가 공동 큐레이팅을 했습니다.
전시는 1980년대 국제화의 초기 움직임을 탐구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곧바로 1984년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공연 사진이 나옵니다. 백남준의 평생 예술적 동지였던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이 듀엣으로 펼친 공연 <코요테 Ⅲ> 사진입니다.
2018년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10주년 전시 <<예술공유지 백남준>>에서는 이 공연 영상을 전시했는데요.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인연은 1958년 독일에서 보이스가 백남준을 찾아와 공연을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번의 공동 작업을 했습니다. 사진의 공연은 두 예술가의 마지막 협업 작품입니다. 1984년 도쿄 쇼게츠(草月) 홀에서 열린 콘서트입니다. 요셉 보이스는 빨간 피아노를 치다가 원시적 역사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 코요테의 소리를 흉내 냈고요, 백남준은 피아노로 즉흥연주를 하기도 하고 생명을 갈구하는 듯한 보이스의 울부짖는 소리에 사전 시나리오 없이 보조를 맞추기도 합니다. 코요테와 예술가의 정체성을 오가는 강렬한 에너지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펼친 두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더욱 크게 확장됩니다. 이들의 예술적 교감이 절정을 이룬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요셉 보이스에게 코요테는 아메리카를 상징합니다. 코요테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던 동물이었는데요.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며 코요테를 비천하고 교활한 동물로 낙인찍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코요테는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보이스에게 코요테는 잃어버린 아메리카의 참모습, 아메리카 땅이 겪은 정신적 충격을 상징합니다.
오늘은 요셉 보이스(1921-1986) 얘기를 좀 더 하려고 합니다. 백남준 작가는 앞으로 기회가 더 있을 듯해서요.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요셉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 개념입니다. 그는 예술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극대화합니다. 1961년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된 후 직접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운동에 적극 개입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확대 개념인 조국, 독일의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현대사를 반추하며, 자신의 체험과 고통을 신화화했습니다. 예술을 통한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의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샤먼, 영매(靈媒)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요.
자신의 신화화는 2차 세계대전 참전 때 얘기인데요.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 징집돼 전투기 기총 사수로 배치됐습니다. 1944년 3월 16일 크리미아 전선에서 전투 중 격추당했다는 회고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을 신화화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부상병을 유목민족인 타타르인이 눈썰매로 구조해 지방(脂肪, Fett)과 펠트(Filz)로 치료했고, 그 신비한 경험이 병사를 ‘치유의 예술’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훗날 이런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그가 전쟁의 상흔을 미술로 치유하고자 부단히 애썼다는 점만은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외에도 요셉 보이스의 <흑판>이 전시되었는데요. 사진 촬영 불가였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이 강단에서 강의한 내용을 담은 칠판을 그대로 떼어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건데요. 대표적인 것은 <함부르크 흑판>입니다. <함부르크 흑판>은 그가 객원교수로 있던 함부르크 미술 아카데미 수업 시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인간의 삶과 생명력,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보이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인체, 사슴, 지방 덩어리, 망치 형태 등 상징적 드로잉과 결합하여 그의 사고 체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이스의 흑판은 강연의 기록물을 넘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사회적 조형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공부하는 헌법학을 확장해서 문자 세계와 다른 표현 매체의 세계 그리고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의 화해와 조화를 추구하는 샤먼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고 있어서 요셉 보이스에게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쿄 여행은 헌법방랑(憲法放浪)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 첫 사진은 제 배우자 MR. K가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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