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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이론의 빛과 그림자

by 한량돈오

1789년 프랑스혁명 직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는 신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시민의 구별은 국적으로서 시민권 없는 사람들 또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주체에서 배제된, 시민 아닌 사람들의 권리를 부정할 수 있는 배제의 논리였습니다. 오랫동안 노동자, 무산자, 여성, 외국인 등은 정치적 권리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요. 권리의 근거로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의사(意思) 능력은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또는 성인 아닌 아동들을 권리 주체에서 제외하는 논리였습니다. 권리 근거로 이익을 보완하는 법리가 전개되고 있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익 또는 이익을 보유하지 않는 주체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법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권리가 수용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준영은 기존 법학의 관점에서 지구법학의 권리 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우호적으로 접근하는데요.* 비판적 측면에서는 인간 법체계의 근본적인 이분법인 행위/권리 주체로서의 인격(person)과 행위/권리 객체로서의 사물(thing) 사이에 놓인 장벽이 무너진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자연물이 권리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논거는 의사 이론과 이익 이론이고요.


만약 인간인 자연의 대리인이 자연의 이익에 기초한 권리에 근거해 소송을 제기하면 발생할 문제에 관한 그의 구체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회 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다. 둘째,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의 측면에서 법의 지배 원리를 훼손할 것이다. 셋째, 대리인 인간의 주장이 정치적 선호로 평가될 수 있다. 넷째, 이론적으로 큰 논증 부담을 진다. 다섯째, 자연을 객체로 삼는 인간의 사유재산권을 강력하게 제한하거나 폐기하게 되어 소유권은 ‘지구권으로서의 인권’에서는 제외될 것이다.


저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권리, 특히 소수자 또는 약자의 인권은 합의의 토대가 약하다. 인권은 오히려 합의하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인정해야 할 권리다. 권리를 인간 외의 존재에게 인정해야 하는 배경도 소수자 또는 약자의 인권 사안과 유사하다.


법치주의는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지향하지만, 명확성은 문자 또는 언어 차원에서 자명하지 않으므로 입법만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구체화함으로써 담보된다. 예측 가능성은 법치주의 핵심 요소라면 기후 위기가 불러올 위험을 예측하여 대응해야 하는 일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의미를 실현하는 일이다. 법치주의는 사회 현실의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법적 논의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헌법적 사안은 특히 정치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헌법 체제가 정치의 산물인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법치는 정치적 사안을 법적 결정으로 명확하게 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면이 있지만, 모든 규범적 요청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성찰이 뒤따라야 합니다. 입헌주의는 법치주의보다 우선하죠. 입헌주의에서 인권 또는 권리의 정립은 정치적인 선호에서 법적인 인정으로 진화합니다. 법적 인정의 유권적 판단 주체가 법원이지만, 법원은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므로 입법 또는 헌법에 변화가 있다면, 법원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법원이 존재하는 의미는 법질서의 유지 못지않게 입법에 앞서 소수자 또는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기후 위기 상황에서 권리의 주체 문제에 대한 논증 책임은 전환되어야 합니다. 권리 주체를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권리가 획일화하지 않습니다. 헌법의 평등원칙도 상대적이어서 합리적 차별을 용인합니다. 인간 아닌 존재를 권리 주체로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의 권리와 인간 아닌 존재의 권리는 같을 수는 없습니다. 법의 작용, 즉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 차원에서 국가 작용은 권리의 효력 이론이나 제한의 이론을 통해 권리를 적정하게 조정합니다. 권리 주체 인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국가 편의주의적 원천 봉쇄’로서 오늘날 요청되는 국가 또는 법의 역할을 외면하는 일입니다.


근대 입헌주의는 자유권 중심적이다 보니 과잉금지 원칙 중심이어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해서는 과소 보호 금지 원칙에 따라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돌봄은 국가의 적극적 인권 보장(fulfill, 充塡) 의무의 다른 표현인데요. 지구법학은 인간의 권리가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국가의 결정에 맡겨둘 수 없기에 인간 아닌 존재의 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준영은 자연의 권리 테제를 대신하여 현행 법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법원리로 온건하게 할 것을 제안하는데요. 즉, 인간은 지구 생태계를 구성하는 자연물의 고유한 가치를 보호할 책무를 지며, 인간의 행위는 인간 생존의 필연적 조건인 지구 생태계에 그러한 행위가 끼치는 영향에 비례하여 조정되어야 한다는 법원리입니다. 그는 이러한 법원리가 기존의 공익 개념에 비하여 얼마나 실질적으로 자연물의 고유한 가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결정을 이끌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진단합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통 가치에 관한 합의에 기초하여 그것을 확고한 법원리로 승인할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요.


정준영이 말하는 온건함은 이론적 또는 제도적인 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초래할 어려움에 근거합니다. 그 어려움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관성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그러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 지구 생태의 위기가 치닫는 상황에서 현상 유지는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절박함보다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통상 헌법에서 말하는 국가비상사태로서 입헌주의의 예외는 기후 위기의 비상사태에서 근대 입헌주의 체제 자체의 변경을 요청합니다. 권리의 선언만으로 지구 생태 위기를 넘어설 수 없어서 인간 아닌 존재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법체제 또는 국가 체제로서 바이오크라시를 주장합니다.


기존의 법학이 의존하는 도그마 또는 사법 작용이 근대 입헌주의의 틀인 점에서 오늘날 요청되는 지구법학은 근대 입헌주의의 장점은 수용하되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합니다. 서구에서 근대 입헌주의 역시 서구의 전근대 사회에서 태동하여 새로운 체제로 탄생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법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권리 개념은 기존 권리 이론과 부드럽게 조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권리 이론의 배경이 되고 실현되고 있는 시간적 또는 공간적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존의 권리론 또는 서구 입헌주의 체제론의 비판적 수용이 필요할 뿐입니다.


정준영이 말하듯, 지구법학이 채택하고 있는 전제들은 가치다원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 공동체의 여건에서는 근원적 의견 불일치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근원적인 의견의 불일치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하는 점에서 불가피합니다. 가치다원주의는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가치 시간과 서구와 비서구의 구별을 넘어 지구 차원의 가치 공간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법학이야말로 가치다원주의에 가장 잘 부합합니다. 상호 의존하면서 동시에 서로 갈등하면서 유지되는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서구 문명의 무분별한 산업 권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도록 회복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가치다원주의의 체제일 것입니다.


* 정준영, “지구법학과 사유재산권”, 김왕배 엮음, 『지구법학』, 문학과지성사, 2023, 151-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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