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독립
사법권 독립의 핵심은 재판의 독립입니다. 그 외피가 법원의 독립이고, 그 내피가 법관의 독립입니다. 법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은 수단적 의미입니다.
법원은 국민의 여론이나 법의식이 헌법의 인간상이나 근본원리들에 배치되는 경우 헌법을 수호해야 하고 기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즉 국민 다수의 의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들이 존재합니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이 법관의 헌법상 책무이고, 재판에서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까닭이죠.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사법권 독립의 핵심입니다. 법관이 재판에서 내외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함을 의미합니다. 헌법은 법관의 직무상 독립 또는 재판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규정에 따를 때,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첫째, 내외부 작용으로부터의 독립을, 둘째, 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 따른 심판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법관은 재판에 관한 직무를 수행할 때 국회나 집행부의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음(외부 작용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 사법부 내에서도 상급법원이나 소속 법원장의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아니하며(외부 작용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소송당사자나 그 밖의 사회적·정치적 세력으로부터도 아무런 지휘나 명령을 받음이 없이(외부 작용으로부터의 독립),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만(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의 구속) 재판해야 합니다. 이것을 법관의 직무상 독립·재판상 독립 또는 실질적(물적) 독립이라 합니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먼저 재판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른 심판이어야 합니다. 법관이 재판하는 경우 헌법과 법률에 구속되는 것은 첫째,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법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재판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법률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것이므로, 법률에 근거한 재판은 곧 국민의 의사에 따른 재판으로서 민주적 정당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헌법에는 성문헌법은 물론 헌법적 관습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 법률의 경우에는 형사재판이냐 민사재판이냐 또는 행정재판이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릅니다. 형사재판인 경우는 죄형법정주의가 적용되므로 그 실체법은 원칙적으로 형식적 의미의 법률이어야 합니다. 이에 반해 민사재판과 행정재판에서 실체법은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모든 성문법과 이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관습법·조리와 같은 불문법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재판·민사재판·행정재판 등 모든 재판은 그 절차에 관한 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따라야 합니다. 대통령의 긴급명령과 긴급재정경제명령 및 소송절차에 관한 대법원규칙(헌법 제108조)은 이에 대한 예외입니다.
법관이 법규에 따라 재판하는 경우 그 법규가 ① 법률일 때에는 폐지 여부, 신법·구법의 여부, 위헌 여부 등을 심사하여야 하고, ② 법률 이외의 법규일 때에는 그 효력 여하, 다른 법규와의 효력의 위계 여하, 위헌·위법 여부를 심사하여야 하는데요.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그 위법 여부의 심사를 헌법재판소에 제청할 수 있고, 그 밖의 법규가 위헌 또는 위법이라고 인정할 때는 그 적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이나 기타 법규의 내용이 단순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것만으로는 그 적용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합니다. 어떤 법률이 자기 개인의 양심과 어긋난다고 하여 법관은 그 법률을 배척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법관의 양심 문제가 대두하는 것은 법률의 해석에서 복수의 해석이 가능할 때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직면하는 경우 혹은 직접 원용할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등입니다.
이때 양심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대하여 학설이 갈린다. 객관적 양심으로 해석하는 견해에서는 양심이 “법관이 적용하는 법 중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심의(心意)․정신, 즉 ‘법관으로서의 양심’”으로서 “법조인․객관적․논리적인 양심”이라고 봅니다. 인간으로서의 도덕적․윤리적 확신과 법관으로서의 법리적 확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법리적 확신인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거죠.
다음으로 ‘심판’에서 독립입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법관 스스로 정치적 활동이나 이권(利權) 문제에 개입하는 행위 등을 자제하여야 합니다. 법관이 재판할 때는 국회나 집행부·헌법재판소 그 밖의 국가기관의 지시나 명령에 따르지 아니하고, 그 밖의 국가기관도 재판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법원조직법은 다른 국가기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법관에 대해 ① 국회나 지방의회의 의원 또는 행정 부서의 공무원이 되는 것, ②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헌법 제49조).
법관은 재판에서 소송당사자로부터도 독립해야 합니다. 소송법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법관의 독립을 뒷받침하고자 법관의 제척·기피·회피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판은 정치적․사회적 단체나 매스컴 등으로부터 비판, 대중 시위, 법정투쟁, 여론 비판 등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사회적․정치적 세력으로부터의 심판의 독립과 관련하여 절대적 독립설과 상대적 독립설이 있는데요. 전자에 따르면, 재판의 독립은 “다른 국가기관에 의한 압력이나 간섭뿐만 아니라 국민에 의한 비판까지도 배제하는 절대적 독립을 의미”합니다. 후자에 따르면,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모든 국가기관의 모든 행위를 비판의 대상으로 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 독립설이 타당”합니다. 앞서 ‘사법권 독립’ 글에서 이론적인 맥락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사법권 독립에서 놓치기 쉬운 논점이 법원 내부로부터 심판의 독립입니다. 헌법상 대법원이 최고법원이고 그 밑에 고등법원·지방법원 등 각급 법원이 설치됨으로써 간접적인 의미에서 심급제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 하급법원을 감독할 수 있는 사법행정권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법관은 심급제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있어서는 상급심법원의 지휘․감독 또는 기타의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 재판이 합의제인 경우에도, 법관은 독립하여 직권을 행사하며 다른 법관의 지시나 명령에 따르도록 강제받지 않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법원조직법 제8조의 “상급법원의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下級審)을 기속한다.”라는 규정입니다. 그러나 이 규정도 하급심이 상급법원의 지시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상급심이 내린 파기․취소․환송의 판단이 하급심을 기속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급법원의 판단에 하급심법원이 기속 되는 것은 계층적인 상소 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이상 불가피합니다. 판례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요청되는 상급법원의 하급심법원의 기속은 어디까지나 당해 사건에만 인정될 뿐, 다른 사건인 경우는 하급심법원이 상급심법원과 다른 견해를 판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원조직법 제8조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규정한 헌법 제103조에 위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 내부에서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 사건입니다. 내란 사건에서도 재판의 독립이 보장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없지 않습니다. 내란 전담 재판부를 논의하는 까닭입니다. 일반적인 논의를 넘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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