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이 일깨워주는 나도 몰랐던 습관의 비밀
# 주현석! 뛰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우리나라 3대 마라톤 중 으뜸으로 치는 2019년 동아마라톤 (2019 서울마라톤). 광화문에서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까지 총 42.195km를 달리는 코스 위에는 수많은 도전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었다. 완주를 목표로 하는 사람, 순간의 느낌을 목표로 하는 사람, 그리고 그저 뛴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 사람까지.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기록’ 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다. 나의 목표는 아마추어 레벨의 러너에게는 꿈의 기록이라 불리는 서브-3, 즉 3시간 이내 완주였다.
시작은 좋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넉넉한 체력과 함께 거침없이 코스를 누볐다. 5km, 10km, 15km 팻말이 지났다. 21km 팻말이 지날 때도 컨디션은 좋았다. 소위 말하는 ‘러너들의 가장 큰 벽’ 이라 불리는 30~40km 지점도 무사통과했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잠실대교를 건너 마지막 종합운동장까지 가는 2km 지점,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근육을 붙잡으며 발걸음을 옮겼지만, 이 속도로는 절대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번에는 안되겠구나’ 하는 절망감에 터덜터덜 걸으려 할 때 즈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지금부터 뛰면 가능해! 뛰어 주현석! 뛰라고 이 XX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표가 바로 앞인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근육을 억지로 쥐어짜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10km 같은 1km였지만 이윽고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합운동장 입구를 통과하고 트랙을 한 바퀴 돌았다.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그렇게 내 발이 피니쉬 라인을 넘어갔을 때, 머리 위에 전광판에 2:59:42라는 숫자가 찍혔다. 달리기는 커녕 조깅도 하지 못했던 120kg의 거구가, 1년만에 최연소 서브3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속에서 작은 습관을 통해 엄청난 성취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나의 과거가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그들로부터 나의 과거가 보였고, 작은 습관을 실천하기 위해 최고의 시스템을 만드는 모습에게서 나의 현재가 보였고, 결국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내는 모습에서 나의 미래가 보였다. 목표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환경을 설정하고 조금씩 시작해 결국 그 습관을 재미로까지 승화시킨 그들의 방법. 과연 내가 이룬 성취는 이 책의 방법을 충실히 따랐는가 반성하고 있다가, 예전에 달리기에 대해 썼던 투박한 글이 생각나 공유해보고자 한다.
# 내 인생의 게임 체인저
오늘 정규 세션이 있고서 각자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러너스 토크' 시간이 있었다.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고 응원하고 뛰고 걷는 수많은 러너들이 달리기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고 짧은 시간임에도 만감이 교차했던 오묘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마이크가 주어졌지만, 조리있게 말하지 못해 못내 아쉬운 부분이 있어 이렇게 팔자에도 없던 긴 글을 적어보려 한다.
게임 체인저라는 말이 있다. 기존의 흐름과 판도를 한 방에 뒤바꾸는 사람이나 사건, 제품을 가리키는 경영 언어인데, 내 인생에서 달리기를 이보다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고 자부한다. 기껏해야 러닝을 제대로 시작한지는 1년 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1년은 나의 겉과 속을 180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체중 과다로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시작한 러닝은 사실 제일 싫어하는 운동 중 하나였다. (자극) 먼지나는 흙바닥을 달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100m 달리기와 오래 달리기에서는 늘상 꼴찌를 도맡아했던 사람이기에 도저히 좋아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전까지 살을 빼보겠다고 한강을 몇번 깔짝대다 실패한 적이 너무 많아 이번에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거라 생각했다.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내 옆을 쌩하고 지나쳤었다. 그 날 뿐만이 아니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 할아버지는 같은 시간 같은 거리에서 항상 마주쳤다. 헉헉대는 나를 비웃듯 지나치면서.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항상 검은 모자에 푸른 싱글렛을 입었던 그 할아버지의 앞모습을 보고 싶었다. (지극히 사소한 계기) 그렇게 흐지부지될 것 같았던 러닝은 어느새 1주일, 그리고 1달이 되었다. (기간보다는 빈도)
세 자리 수 몸무게가 어느새 두 자리 수가 되고 그 분을 쫓아 한강 끝까지 왕복하는 게 일상이 될 즈음, 그 분이 나를 불러세웠다. 계속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를 잡는 내가 어지간히 신경쓰였을 것이리라. 의자에 걸터앉아 듣게 된 그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50살부터 지방간으로 고생하시던 그는 우연히 달리기를 접해서 이번에 30번째 풀 마라톤을 준비하신다고 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일단 달리기에 재미를 느끼시는 건 둘째 치고, 이 힘든 훈련을 매일 하신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힘들지 않을까? 시간이 없진 않으셨을까?
그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달리기는 뛰는게 아니야. 일상이야.
그 때부터일까, 달리기가 나의 일상이 된게. (정체성: 나는 러너다)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나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했더니, 그 분은 나를 쓱 훑어보시고는 더 연습하면 10키로 정도는 가능할거라 하셨다. 그렇게 훈련은 시작되었다. 당시에 직장도 다녔지만, 달리기만은 빼먹지 않았고 그 때부터 제대로 달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더욱이 이 시기에 미국의 유명 유튜버 "케이시 나이스탯" 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달리기에 대한 무한한 열정은 나에게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직까지 그가 자신의 비디오에서 말한 한 문장이 생각난다.
뛰어야 하기 때문에 뛰지 말고, 뛸 수 있으니까 뛰어라.
(코멘트: 나는 이에 더해서 한 가지 작은 습관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에 이불을 개기 전 케이시 나이스텟의 러닝 비디오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 그 결과, 러닝복을 챙기는 등 그 날 달리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랜 훈련 후 맨 처음 참가한 서울고등학교 10km는 사실 그렇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더위와 오한을 한 번에 느끼기도 했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km 표지판에 정신이 팔려 제 페이스를 잊기도 했다. 가까스로 결승점을 찍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이 힘든 걸 왜 하나 싶었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훈련의 성과고 뭐고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그런데 숨을 가다듬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으니 왠지 모를 고양감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헉헉거리며 5키로도 제대로 못 뛰었던 내가 어느새 10키로를 완주했다는 것을. 러닝은 정직했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때 가졌던 고양감은 사실 지금까지 나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가끔씩 우울할 때는 걸려있는 완주메달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래도 뛰기 싫을 때는 케이시 나이스텟의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스스로의 달리기를 지속하다보니 10km를 넘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었던 하프 마라토너들과 같은 주로에 서게 되었다. 러닝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러닝은 혼자만의 수련이라 생각했다. 우연히 알게된 "러닝크루" 라는 문화를 알기 전까지는.
2018년 여름 처음 참가한 88서울이라는 곳에서 다시금 러닝에 대한 생각의 판도가 바뀌었다. 훈련과 인내로 쌓아올려야 하는 줄 알았던 러닝을 모두가 함께 하는 순간, 축제가 되었고 문화가 되었다. (환경의 중요성: 같은 습관을 실천하는 커뮤니티 / 주위 사람, 정체성의 변화: 나는 ‘함께’ 뛰는 러너다.) 같은 주로를 같이 달리는 크루원들이 곁에 있을 때, 이제껏 넘을 수 없었을 거라 믿었던 한계가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도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풀마라톤인 JTBC 마라톤은 어느새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그렇게 달리기라는 깔끔하지만 투박한 단어에 "크루" 라는 세련되고 정감있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이번에 동아마라톤에서 달성한 서브3로 최연소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다 (95년생) 하지만 이를 기록이자 업적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운좋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순수한 내 실력으로는 사실 나올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청계천에서 끌어주고 다리가 풀려 터벅터벅 걸으려 했던 성수와 잠실에서 밀어주었던 소중한 러너들과 치어 스쿼드. 그 분들이 없이 혼자 뛰었다면 아마 20km 구석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봉사자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다시금 너무나 감사드리고,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이상 이야기 끝!
책에서 강조하는 덕목 중 하나는 바로 ‘정체성’ 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설정하고 아는 것이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가르는 기준이 되며 그 습관을 지속하거나 끊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의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달리는 러너이며, 나아가 나 혼자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달리는 파트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