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연민조차 조심스러워서.
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국어 영역(B형)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 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백석, <팔원(八院)-서행시초(西行詩抄) 3> -
*내임: 냄. ‘배웅’의 평안 방언.
(수능 국어 속 한 문장을 소개하기 전에 문제 하나 풀고 갈까요?)
다음 문장을 읽고 O X를 고르시오.
Q. ‘유리창 밖’은 안과 대비되어 육친과 이별하는 계집아이의 슬픔을 강조한다. O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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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X
내가 만드는 책의 독자는 수험생이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수능 시험을 대비하는 고3 혹은 재수생이다. 수능 국어 문제집을 만드는 편집자는 선지의 정오 판단에 있어 근거가 명확하여 합리적인 설득이 가능한 수준에서 군더더기 없이 해설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위 질문에 대한 해설을 작성할 때 핵심은 ‘유리창 밖’에서 ‘계집아이’를 배웅하는 사람들은 육친이라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답은 X라는 설명이 들어가야 한다. 혹여 유리창 밖에서 계집아이를 배웅하는 사람은 화자가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이라고 추측한 것일 뿐이니 실은 육친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주장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계집아이의 육친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없으므로 정답은 역시 X이다. 평가원은 정확한 정답이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 이 때문에 수험생의 문학 공부는 작품을 깊게 파고들어 해석하려 들면 안 된다. 어떤 작품이 나와도 우선은 지문에 나온 내용의 사실 관계부터 확인한 후 주어진 선택지를 보고 해당하는 근거를 찾아 판단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수능 국어에서 제2의 인생을 찾고 싶어 글을 쓰는 중이다. 그래서 나만의 글쓰기 공간 안에서 만큼은 천천히 곱씹으며 생각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산만하게 떠올려본 생각 조각들을 기록하려 한다.
오늘 나를 멈춰 세운 한 문장이다. 백석은 시에 서사를 담는다. 이 작품에서는 묘행산행 승합자동차에 나이 어린 계집아이가 타는 모습을 본 화자가 계집아이의 스토리를 담아낸다.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진 아이, ‘삼백오십 리’나 되는 먼 길을 혼자서 떠나는 계집아이, 그 아이에게 시선이 안 갈 수 없다. 유리창 밖에는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그의 자녀들로 예상되는 어린아이 둘이 배웅을 한다. 여기서 내지인은 일제강점기 일본 본토 사람 즉, 일본인이다. 그리고 주재소장은 쉽게 말해 경찰 서장이나 어떤 행정 책임자를 뜻한다. 아마도 일본인 경찰 서장 집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자기도 어리면서 다른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던 계집아이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제 그 집을 떠나 삼촌이 있는 묘향산행 자동차에 홀로 태워진 것이다. 아마도 부모가 없으니 삼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아닐까. 그나마 일본인 경찰 서장과 그 아이들이 배웅을 한다. 그 장면이 어딘지 모르게 더 슬프다. 차디찬 아침 계집아이가 자기가 모시던 주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밀리듯 올라탄 텅 빈 자동차 안에서 느꼈을 감정은 어떨까? 그걸 어찌 흰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백석도 계집아이가 우는 모습을 거창한 수식을 붙여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타인에 대한 연민조차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눈을 씻으며 울고 있는 계집아이를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고 나니 아이들이 더 애틋하게 보인다. 아이들은 너무나 작고 여리고, 그리고 벅차게 소중하다. 내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렇다. 조용히 홀로 앉아 느끼며 우는 그 어린아이를 조심스럽더라도 꼭 안아주고 싶다.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진 그 손등을 살포시 잡아주고 싶다. 그리고 계집아이가 꼭 삼촌을 만났기를, 부디 계집아이의 삼촌이 따뜻하고 넓은 어른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