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진 이야기 - 이기적인 인간을 만드는 상황이 문제

by 히읗
사람들은 부풀어난 자극적인 이야기 항아리에 돌을 던지다 못해 항아리를 깨뜨리고 폭파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진은 1년 전 지금의 출판사로 이직했다. 몸담았던 전 직장에서 유진이 소속된 팀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유진의 같은 팀 상사였던 김 부장이 협력 업체에 갑질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막을 들어보니 협력 업체인 인쇄소 중 한 곳이 매번 업체 선정에서 탈락되자 인쇄소 영업 부장이 10만 원 권 백화점 상품권을 책 속에 끼워 김 부장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펼쳐 보지도 않은 김 부장은 단순히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고, 늘 하던 대로 비교 견적서를 받아 공정하게 업체를 선정한 것이다. 상품권을 받고도 자기네 인쇄소를 써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난 인쇄소 영업 부장이 김 부장에게 대놓고 섭섭함을 토로했는데, 나름대로 '공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던 김 부장은 인쇄소 영업 부장 앞에서 10만 원 권 백화점 상품권이 담긴 그 책을 책상 위로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인쇄소 영업 부장이 책을 받으려다가 고꾸라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박고 피를 보게 되었고, 김 부장이 치료비를 물어주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경쟁 출판사의 대표가 김 부장에게 저평가를 받아 억울해하던 직원에게 일종의 비밀 거래를 제안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직원이 내부 고발자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정의를 외치며 교묘하게 편집한 사실을 언론에 던지면서 이 일은 거대한 사건이 되었다. 경쟁 출판사 대표의 의도대로 미끼를 문 언론은 경쟁하듯 너도나도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빠르게 실어 나르기 바빴다. 덕분에 이 사건은 일명 '갑질 사건'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갑’ 회사가 ‘을’ 회사의 직원에게 책을 던져 피를 보게 했고, 그 책 속에는 10만 원 권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은 가짜와 잘 버무려져 각종 언론과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기사 속 김 부장은 ‘돈 좋아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 OO 출판사의 갑질 부장’으로 묘사되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김 부장뿐만 아니라 아무 잘못도 없는 다른 직원들까지도 함께 갑질을 일삼고, 갑질 행태를 모른 척한 비겁한 인간들로 낙인찍혔다는 것이다.


온라인 속에서 형성된 여론은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출판사의 매출은 급감했고 출판사 입구인 유리문에 책을 던지고 가는 사람들지 나타났다. 책 제목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한 순간에 유진의 회사는 폭력범들의 소굴이 된 것이다.


유진은 자신의 일에 대해 깨나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다소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자부심과 믿음이 고단한 일상을 버티며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었었다.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던 사람들마저 모두 공범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유진은 언론과 여론이 얼마나 무섭고 무책임한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김 부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일했던 팀원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유진은 처음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울면서 글을 썼다.

‘우리 회사 김 모 부장이 협력 업체 직원 이 모씨에게 '책을 던진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 부분은 명백히 잘못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 움큼의 사실이 다른 가짜 내용과 엮인 것은 억울합니다. 심지어 그 한 움큼의 사실마저도 인과 관계가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구구절절)...’

유진이 알고 있는 사건의 내막을 그야말로 구구절절 모두 글로 남겼다. 한 페이지 짜리 글을 작성하고 다듬는데만 꼬박 루가 걸렸다. 유명 커뮤니티에 글이 업로드된 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댓글에는 치졸한 변명이라며 90%가 욕설로 도배되었다. 간간히 안됐다는 내용도 달렸으나 대부분은 비난이었다. 이번에는 유진이 먹잇감이 된 것이다.


인터넷 쇼핑 후에 50원을 더 받기 위해 작성한 상품 후기 외에는 인터넷에 댓글이라는 것을 잘 달지 않았던 유진이었다.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나름대로는 평탄한 삶을 살아왔던 유진이었기에 자신을 향한 댓글 공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손까지 벌벌 떨렸다. 결국 30분 만에 유진은 글을 내렸다.

그 후에도 편집된 사실과 가짜가 뒤섞인 뉴스는 가속도가 붙어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부풀어난 자극적인 이야기 항아리에 돌을 던지다 못해 항아리를 깨뜨리고 폭파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순간에 모든 게 망가질 수 있구나.'


유진은 실감했다.

오히려 지켜보자며 판단을 중지해 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때부터 유진은 어떤 ‘판단’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사건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조용해졌다.

그러나 회사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했다. 그게 하필 유진의 팀 해체였다.

억울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지 않으면 당하는 건 한 순간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유진은 힘이 없었고, 그게 또 서러웠고, 세상의 여러 소리들에 지쳐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비난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그때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유진은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는데, 그녀가 당한 억울함은 들이대지도 못하는 사건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았다. 그때마다 유진은 멍해졌다. 내면은 복잡한 감정으로 어지러웠으나 아무 말 없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냥 혼자 울었다.


일명 '갑질 사건' 이후 팀이 해체되기 전까지 약 2개월 동안 유진은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욕을 먹으며 생계를 잃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유진의 팀원들은 처음에는 함께 분노했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행여나 자신만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 괜히 다른 사람들을 헐뜯거나, 과거의 일들까지 끄집어와 잘잘못을 따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유진 역시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별 수 없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그 씁쓸함과 실망감으로 인한 괴로움은 유진의 시간을 더디게 가도록 만들었다. 고통의 시간은 더럽게도 가지 않았다.


유진은 이러한 상황을 만든 근본적인 사람들이 원망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근본적인 책임자 대신 눈에 보이는 가까운 사람들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신과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인간 본연의 이기적 속성을 몸소 체험한 유진은 마치 자신이 무슨 윤동주나 된 것처럼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결국 유진의 팀은 해체되었고, 김 부장만 회사에 남은 채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김 부장만 회사에 남은 것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한 유진과 팀원들은 사실 원망할 여유조차 없었다.


#유진과 은수의 통화 기록

"그 '갑질 사건' 있고 나서 벌써 일 년이 지났잖아.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진부하긴 하지만 언제나 진리인 것 같아."

"잊자, 유진아. AI보다 유일하게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게 망각이라고 하더라."

"푸하하, 그래, 난 또 그거 하난 잘하니까! 그냥 가끔 생각나는 거지. 그리고 나는 그 사건으로 내가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했거든. 더 강해졌다고. 그런데 착각이었더라."

"왜 또? 무슨 일 있었어?"

"어제 정우 오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주장을 얘기했을 뿐인데, 나 스스로가 이상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 예민함은 아마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그 일의 기억 때문인 것 같더라고. 그냥 할 수 있는 비판마저도 공격으로 받아들이 거지."

"아... 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 인간의 망각 능력 한번 믿어 보자!"


#오늘의 출제 포인트 feat. 유진

김동인의 '태형'

3.1 운동 직후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김동인이 자신의 체험을 서 쓴 현대 소설이야. 지독한 더위와 다섯 평도 채 되지 않는 감방에서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는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정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작품이.

태형은 볼기, 그러니까 엉덩이를 때리는 형벌이야. 70세가 넘은 영감이 태형 90대를 판결받고는 살기 위해 공소를 제기하려고 하자 같은 방에 있던 수감자들이 단지 조금 더 해지려고 영감을 타박해서 태형장으로 내아.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40도 가까이 올라가는 한 여름이고, 당연히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어. 그런데 그 공간이 다섯 평 구치소야. 거기에 마흔 명이 넘게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 봐. 그러니까 한 명이라도 나가라는 거지. 태형 90대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지.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태형장에서 들려오는 영감의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괴로움을 느껴.

내가 태형 맞기를 권유한 장본인이었기에 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이 작품의 주제는 극한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에 대한 비판야.

그런데 실제로 내가 이런 상황 속에 놓인다면 나는 과연 그들과 다를 수 있었을까? 정말로 말이야. 그리고 그런 내가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제대로 손가락질을 하려면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극한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에게 돌을 던져야 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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