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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Oct 19. 2023

초현실주의 : 광인의 착란은 우리의 현실보다 순수하다

꿈과 현실이 중첩된 절대적 현실

초현실주의에 참여한 예술가들 중엔 다다이즘에 동참했던 이들이 많았다. 다다는 1차 세계대전 중에 탄생한 예술운동이었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던 시대에 권위 있는 모든 것을 비웃고 조롱하는 다다이즘은 정치적 행위이자 예술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부정하는 다다에는 허무주의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결과 예술마저 부정하고 말았다.


예컨대 색종이를 던져서 떨어지는 대로 붙이는 아르프의 방식은 작품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부정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사물에 서명을 해서 전시하는 뒤샹의 레디메이드 기법은 예술가의 제작하는 기능을 부정했다. 기획하지도 제작하지도 않는 미술은 불가능하다. 다다이즘은 그 자체로 반(反)예술이자 예술의 종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침표가 찍힌 예술에 탈출구를 마련한 것이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보다 더 진실된 것을 추구한다. 이들은 다다의 허무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다다처럼 예술을 넘어선 운동이 되고자 했다. 이에 많은 다다이스트들이 초현실주의에 동참했다. 이들은 꿈,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말, 비논리적인 환상등에서 자유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동기술법 - 무의식을 보여주는 통로


초현실주의 : 남성명사. 마음의 순수한 자연 현상으로서,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입으로 말하든 붓으로 쓰든 또는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간에 사고의 참된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 이것은 또 이성에 의한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심미적인, 또는 윤리적인 관심을 완전히 떠나서 행해지는 사고의 구술.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1차 선언> 중에서, 1924년


초현실주의의 ‘교황’이라 불리었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자동기술법'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글쓰기를 이성, 미학, 윤리의 간섭 없이 행한다는 것 자체에 모순이 존재했다. 언어란 본디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메뉴를 생각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신경 쓰고 다시 어제 본 축구를 떠올리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산만하기 그지없다. 만약 의식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마음의 소리를 적는다면 일관성 없는 단어 모음이 될 것이다. 브르통은 오히려 그런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치밀한 묘사와 잘 짜맞춰진 소설은 상상력을 가로막는 질 낮은 작품이었다.


이런 생각은 그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의사였던 브르통은 1차 세계대전 중에 환각을 보는 정신병 환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환자들의 중얼거림 속에서 의식에 억압되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들을 보았다. 그것은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의 생각의 이론적 배경이 되어 주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으로 가는 문이라 여겼던 꿈은 그에게도 매우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미는 비현실적인 것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이었다. 그렇다면 예술이 어떻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할 만한 낯선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초현실주의가 선택한 방법은 익숙한 것들의 낯설게 조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로트레아몽은 자신의 시에 “해부용 테이블 위에 놓인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을 노래했다.


그림 1. 호안 미로 <세계의 탄생>, 1925. 2.51m x 2m


반면 호안 미로(Joan Miró, 1893~1983)는 어린아이 그림처럼 단순한 형태를 흥겹고 경쾌하게 그려나갔다. 그의 신들린 듯 자유로운 붓놀림은 브르통이 제시한 자동기술법의 회화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의 탄생>[그림 3]의 바탕은 캔버스에 물감을 붓고 솔로 문지르고 다시 물감을 뿌려서 만들었는데,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꿈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한편 그 위에 그려진 단순한 도형들은 친숙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맥락을 알 수 없기에 심오한 의미를 지닌 듯하다.




적막하고 불길한 꿈과 환상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초현실주의가 등장하기 전에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그는 근본적으로 회화의 내용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입체주의와 추상처럼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일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 1. 데 키리코, <사랑의 노래>, 1914, oil on canvas, 73 × 59.1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사랑의 노래>[그림 1]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이 있다. 석고상, 장갑, 공. 매우 익숙한 사물들이지만 그것들이 왜 나란히 놓여있는지 알 수 없다. 사물의 크기도 왜곡되어 기이한 분위기를 만든다. 연속된 아치가 있는 건물은 원근법에 따라 그려졌는데, 소실점을 따라 급격히 작아지는 형태 때문에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더해져 불길한 적막감을 자아낸다.


그림 2. 막스 에른스트, <숲 – The Forest>, 1927–28, Oil on canvas, 96.3 x 129.5 cm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는 다다 전시회에 참여했지만 다다의 정치성이나 웃음과 충격을 주는 방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그림과 데 키리코의 작품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무의식에 감춰진 이미지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중 가장 신선한 것은 프로타주(frottage-문지르기) 기법이다. 거친 요철이 있는 사물 위에 종이를 얹고 연필이나 목탄 등으로 문질러 질감을 드러내는 프로타주는 의식적으로 만들 수 없는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무의식의 일부가 꿈을 통해 의식으로 떠오르듯 사물의 숨겨진 문양을 종이 위에 떠오르게 했다. <숲>[그림 2]이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은 얼핏 보면 어둡고 신비한 숲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괴기스럽고 무시무시한 세계를 보여준다.




꿈과 무의식의 환상을 보여주고 낯선 것들을 병치시켜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던 초현실주의는 글자 그대로 현실보다 다 현실적인 ‘초현실’을 보여주려고 했다. 만약 이들이 보여주는 것이 진짜 초현실이라면 우리의 현실은 자연스럽게 그 진정성이 떨어지게 된다. 초현실주의는 그런 식으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들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가 실제라고 믿기로 동의한 모든 것들을 겨냥하고 있는 일종의 대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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