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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Jan 04. 2024

양식에서 "~주의"로

갈라진 세계와 예술에 도전하는 예술

위대한 작품이 위대한 작가와 위대한 시대를 만든다


미술사는 미술의 역사다. 미술을 역사의 지평에서 다룬다. 작품을 만든 작가, 작가가 살아온 시대, 작품이 만들어진 장소, 작가의 인생사까지 미술사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중 가장 친근한 접근은 화가의 인생과 시대를 통해 작품을 보는 방식이다.


인물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흥미롭다. 게다가 그 인물이 이름난 예술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교황과 싸운 미켈란젤로, 엄청난 성공으로 대저택을 구매하고 다양한 수집품을 모으며 사치를 부리다 순식간에 파산한 렘브란트, 가난과 광기로 고생하다 한쪽 귀를 자르고 끝내 자신의 배에 총을 쏜 반 고흐, 등등. 이렇게 다이내믹한 인물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 1.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물론 이런 기인들이 미술사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화가들의 인생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럴 때마다 그들이 남긴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교황과 싸워가며 제작한 <천지창조>, 희로애락을 담아낸 램브란트의 자화상, 색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반 고흐의 작품까지. 화가들은 자기 인생의 마디마디에 걸작들을 낳았다.


그림2. 렘브란트, <자화상> / 그림 3. 빈센트 반 고흐, <귀를 자를 자화상>


그런데 화가의 인생을 중심에 놓고 작품을 서술하다 보면 각각의 작품들이 화가의 개인사에 얽힌 일화의 단편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을 그의 가난, 고갱과의 불화, 광기로 설명하다 보면 반 고흐의 그림이 지닌 다양한 맥락들을 잃기 쉽다. 당연한 얘기지만 반 고흐가 귀를 잘라서 그의 작품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위대한 작품들 때문에 그가 귀를 잘랐음에도 그를 위대한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인생을 작품을 해석하는 도구로 써 버리면 작품의 의의는 잊히기 쉽다.  


다른 한편으로 미술사는 역사를 보는 창이 되기도 한다. 위대한 작품들은 대개 위대한 시대의 소산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젖다 보면 예술 작품을 그저 그 시대를 보는 창으로 환원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르네상스 문화 혁명의 결과'고, '베르미어의 회화는 광학기구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빛의 회화'라는 식의 서술이 그러하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달리 그 화가만이 지닌 특이성을 놓치기 쉽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둘 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화가들이지만 두 사람의 회화에는 공통점만큼이나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베르미어와 렘브란트도 비슷하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에 살았다. 모두 빛에 주목했고, 빛과 어둠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둘의 그림은 다르다. 광학기구가 빛의 회화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미술사를 기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작가의 인생에 주목하는 전기와 자서전, 예술이 탄생한 시대와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 맥락적 연구,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의 의미를 읽어내는 도상학, 도상학에서 얻어진 결과를 문화적 징후나 역사적 변화와 함께 살펴보는 도상 해석학, 철학의 변화와 예술을 연관 지어 바라보는 형이상학적 고찰까지. 미술사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품들을 분석해 왔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법을 익힌다면 '명작'에서 작가의 인생과 시대 그리고 그 시대의 철학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그림 1. MICHELANGELO Buonarroti, Creation of Adam, 1510, Fresco, 280 x 570 cm, Cappella Sistina, Vatican

그림 2.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Self-Portrait as the Apostle Paul, 1661, Oil on canvas, 91 x 77 cm, Rijksmuseum, Amsterdam

그림 3. GOGH, Vincent van,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January 1889, Arles, Oil on canvas, 60 x 49 cm, Courtauld Gallery, London




연표가 아니라 지도가 필요한 미술사


역사를 정리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연표를 만드는 것이다. 일이 일어난 순서를 일렬로 나열시켜 놓으면 한눈에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미술사도 그런 방식을 사용한다. 적어도 18세기초까지의 서양 미술사는 연표를 그릴 수 있다. [그림 1] 예술 양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었고 예술사가들은 다양한 양식을 시대 순서에 따라 한 줄로 나열하여 연표로 제시했다. 하나의 양식은 한 시대의 철학과 문화를 반영하는 지표이자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18세기에 등장한 로코코를 끝으로 그런 시대는 끝이 났다.


도표 1.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사 연표(부분)  http://semacoral.org/cabinet


18세기말, 미술은 다양한 사조가 공존하는 시기로 접어든다. 미술사에서는 동시대에 등장한 다양한 사조를 표현하기 위해 '~시대', '~양식(style)' 대신 '~주의(~ism)'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그 시작점에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 낭만주의가 있다. 이 책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시작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도표 2.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사 연표(부분) http://semacoral.org/cabinet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기에 탄생했다. 시민의 손으로 왕을 죽이고 민주주의가 시작되자 화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후원자를 찾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19세기에 이르면, 화가가 후원자가 아닌 고객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자 그림 판매상들이 예술의 전면에 등장한다. 화랑은 작품과 고객을 이어주는 중재자 이자 숨은 명작을 세상에 소개하는 매체가 된다. 예술이 상품이 된 시대가 되자 화가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신문에서 미술작품에 대한 평론이 실린다. 예술에도 유행이 생겼다. 이제 예술가들은 유행의 변화를 감지하고 기사를 쏟아내는 평론가들도 상대해야 했다.


그림 4. 마르셀 뒤샹, <샘>, 1917


20세기부터 미술사는 좀 더 복잡해진다. 이제 예술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다른 방식의 예술을 비난하기도 한다. 평론은 더욱더 중요해졌다. 이제 더 적절한 비평을 만난 작품이 타당성을 지닌다. 뒤샹이 전시회에 제출한 <샘>[그림 4]은 비평이 없었다면 그저 소변기일 뿐이다. 작품의 이미지는 매우 간단해졌다. 비평이 이미지의 빈약함을 의미로 채워준다. 그런데 그럴수록 비평 없이는 작품에 다가서기 어렵게 된다.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고 대중은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 깜짝 놀라기 위해 전지장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을 놀라게 한 작품의 의미를 알기 위해 평론을 찾는다. 이런 시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사는 필수적이다. 이 책이 그런 시대의 예술을 읽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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