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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윤숙 Mar 24. 2022

과잉과 무질서, 그리고 다른 것을 향한 열린 태도

중세 미술 (4) : 고딕 양식

고딕Gothic은 오해와 멸시가 담긴 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지식인들은 12세기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된 새로운 건축양식을 자신들이 야만인으로 여겼건 고트족이 만든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들에게 고딕은 장식이 많은 벽감을 “계속해서 위로 쌓아 올리는 저주스러운 방법”을 사용한 건축물이었고, “질서가 전혀 없어서 차라리 혼란이나 무질서”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과잉과 무질서가 고딕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고딕 성당의 엄청난 높이는 건축 공법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룬 성과였고, 다양한 조각들이 보여주는 혼종성은 토속신앙을 흡수한 기독교의 유연성을 보여준다.      



대지의 여신을 품은 대성당


12-13세기에 프랑스 북부에 세워진 고딕 성당들의 주인공은 성모 마리아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중의 하나인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그림 1]을 비롯해 스트라스부르, 샤르트르, 루앙, 랭스, 아미앵 등에 세워진 대성당들이 모두 같은 이름으로 축성되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런데 왜 하필 성모일까?


그림1  노트르담 대성당, 1163–1345, 파리, 프랑스


11세기 중반 이민족의 침략이 멈추고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자 농촌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했고 숲을 개간하여 농지가 늘어났다. 자못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런 변화들은 사실 농촌 사람들의 정서와 맞지 않았다.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숲에서 얻고 있었던 농부들의 마음속엔 지모신(地母神)을 섬기는 민간신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숲은 위험한 동물이 출몰하는 두려운 땅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신비롭고 풍요로운 땅이었다. 농부들에게 지모신은 겨울의 죽음과 봄의 부활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신이었고, 숲은 신비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숲을 태우고 개간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 기술의 발달은 생산량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으나 인구는 더 많이 늘어났고, 식량은 늘 부족했다. 게다가 발전된 농업기술 덕에 필요한 인력이 줄어 농촌의 노동력이 넘치게 되었다. 땅이 없는 이들은 숲을 개간하거나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 직업을 찾아야 했다.

도시에 새로 건축된 교회는 이주민들이 느끼는 깊은 상실감과 불안감을 해소해 줄 공생의 원리를 찾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민간 종교 위에 그대로 기독교 신앙을 겹쳐 놓는 것이었다. 교회는 켈트인들의 성소 위에 대성당을 세우고, 지모신의 이미지를 성모에게 덧씌웠다.

 

그림2  <성모의 죽음과 성모 대관>, 노트르담 대성당 서쪽 팀파늄, 파리, 프랑스


그리하여 한 번도 교회에서 공인된 적이 없었던 성모에 관한 신화가 만들어졌다. 성모가 죽은 뒤 그 영혼과 육체가 손상되지 않고 하늘에 올라 예수로부터 천상의 관을 수여받는다는 스토리가 부각되었다. 거기에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이 예루살렘 성문 앞에서 재회하는 입맞춤만으로 딸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많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전면 팀파늄에는 이 같은 이야기가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그림 2] 이는 숲이 파괴되고,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마음이 공허해진 이들을 흡수하기 위한 교회의 전략이자 배려였다.     




천국으로 상승하는 공간과 신비한 색유리


고딕 성당은 생드니 수도원장인 쉬제(Abbot Sugerm 1081~1151)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아주 사치스럽게 살았는데 그 때문에 그의 수도원은 세속적이고 수치스러운 곳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쉬제는 이런 불명예를 떨쳐내고 자신이 보좌하는 국왕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성당의 개축 공사에 온갖 자원을 쏟아부었다. 높이 솟은 고딕 스타일은 그의 허영심을 채워주었다.


그런데 각 도시를 관장하는 주교들 또한 쉬제 못지않은 허영심을 갖고 있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일반 시민들도 다른 도시보다 더 높은 대성당을 지으려는 열망에 가세했다. 도시 간의 경쟁심 때문에 대성당의 성당은 점점 높아졌다. 1144년에 쉬제가 세운 생드니 성당의 천정이 약 20m였는데, 1227년에 공사를 시작한 보베 대성당[그림 3]의 천정은 51m에 달했다.


그림3  보베 대성당(St. Peter of Cathedral of Beauvais), 보베, 프랑스


이런 높이를 가능하게 한 기술은 첨두아치(뽀족한 아치)[그림 4]였다. 활모양의 늑재를 교차시켜 만든 첨두아치(교차리브)는 원형아치보다 더 높은 천정을 가능하게 했다. 고딕 건축가들은 여기에 몇 가지 기술을 더했다. 건물 구조를 단단하게 지탱해 줄 부벽(扶壁, buttress)과 천정의 무게를 외부로 분산시킨 공중부벽이 그것이었다. 이 두 가지 구조물 덕분에 고딕 성당은 두꺼운 벽 없이도 높이를 유지할 수 있었고, 벽면을 대신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채워질 수 있었다.

 

그림 4 고딕 성당 구조와 교차리브


성직자들은 꼼꼼하게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질 도상을 선별했다. 수태고지[그림 5], 성모의 대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등이 유리에 그려졌다. 이는 문맹자들을 위해 성서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도상 이전에 보석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창이었다. 그것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했던 예수의 상징이었고, 지혜로운 신의 이미지였다.


그림5  <수태고지>, 생드니 대성당, 파리, 프랑스 : 예수의 잉태를 마리아에게 알리는 천사, 성모의 발밑에 엎드린 수도원장 쉬제의 모습이 보인다.


한편 자연을 떠나온 농민들에게 고딕 성당은 숲을 떠올리게 했다.[그림 6] 고딕 성당의 상승하는 이미지는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가는 나무의 생명력을 느끼게 했고, 찬연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신비한 빛을 연상시켰다.


그림6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파리, 프랑스




거의 모든 것의 종합


고딕 대성당은 중세 동안 기독교가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시도하며 다양한 것을 수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랭스 대성당의 전면 기둥에는 두 가지 주제의 석상이 놓여있다.[그림 7] 왼쪽 조각의 주제는 <수태고지는>로 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천사와 성모의 모습을 담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미소 천사’와 수줍은 시골처녀 마리아의 귀여운 입매가 인상적인 조각이다. 형태를 기괴하게 늘리고 단순화시킨 로마네스크 조각과 달리 인간의 모습이 한층 자연스러워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림7  <수태고지>와 <성모 방문>, 랭스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 1211~, 랭스, 프랑스


오른쪽 조각의 주제는 <성모의 방문>이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이미 아이를 나이가 지났으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갖게 된 엘리사벳에게 마리아가 찾아오자 엘리사벳의 뱃속의 아기가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다. 고딕 성당은 이렇듯 다른 시간에 벌어진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공간에 병치시킨다.


헌대 가만히 보면 두 주제는 표현 양식이 전혀 다르다. <수태고지>의 인물들은 유연하고 부드럽고 소박하다. 이에 비해 <성모의 방문>은 인물들의 몸짓과 옷 주름, 엘리사벳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 등 표현이 훨씬 풍부하다. 두 조각은 분명 다른 장인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림8 <가고일Gargoyles>,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프랑스


고딕 양식은 이처럼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은 사건을 한자리에 모으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만들어진 이질적인 조각을 병치시켜 놓았다. 스타일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고딕 성당은 동물들과 가고일과 같은 숲속 괴물들도 불러 모았다.[그림 8] 이처럼 전체적인 통일을 지향하지 않았다.


 고딕 대성당은 항상 다른 종류의 것들에게 자기 몸을 열어 주었다. 다른 것들에 대한 열린 태도, 그것이 바로 고딕이다.  - 사카이 다케시,  『고딕 불멸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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