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인자의 발라드 - 1

닉 케이브 이야기

by 김주영

예민하고도 섬세한 가슴을 가진 몇 몇의 가수들이 이어받은 전통적인 살인자 발라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노래로서의 발라드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왕에게 유린당한 뒤 그의 아이를 가졌고 몰래 아이를 낳은 뒤 살해한 메리라는 궁녀, 사보타지 선동의 누명을 쓰고 공장주에게 억울하게 맞아 죽은 청년의 누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수 많은 가여운 여인들을 기억하려고 힘없는 사람들은 살인자 발라드를 끊임없이 지어내 불렀다.

글을 모르는 민중들은 폭력과 간계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기억하려고, 더 많은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퍼뜨리려고 수 많은 발라드를 만들어 불렀다. 대다수의 못 배웠고 가난했던 사람들은 언젠가는 응답이 있겠지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노래를 불렀다.

살인자 발라드는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질기디 질긴 저항의지를 표현해 왔고 그 정신은 민중가요로 계승되었다.


애팔래치아에서 사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부르는 '버드나무 정원 아래에서'를 듣고 닉 케이브는 '야생 장미가 피는 곳'을 썼다.

끔찍하고도 쓸쓸한 그 노래에는 다음과 같이 사랑, 배신, 폭력, 죽음, 후회가 모두 들어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같은 녀석과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버드나무 정원으로 그녀를 불렀어.

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약을 먹이고, 칼로 찌르고, 강물에 떠내려 보냈어.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잡혀 어디론가로 끌려가고 있어.

아버지, 아버지, 나를 도와 주세요'


가장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정신나간 악당을 노래하기도 했다.

본명은 리 셀톤,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는 스타일리시하고 터프하다는 의미에서 'Stag' Lee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말을 모는 껄렁한 갱스터였던 그는 1895년 어느 날 칼같이 차려입고 살롱으로 들어왔다.

쥐가 그려진 신발과 오래된 스테트슨 모자를 쓰고 있었고 '28포드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별 거 아닌 사소한 말다툼에 바텐더에게 총을 쐈다. 그리고 달려온 친구 빌리에게도 납으로 된 총알을 먹였다.

잔인함과 공포를 즐기는 스태그 리의 노래는 긴장감 도는 리듬에 어두운 재즈 분위기의 곡으로 은근히 사람들을 끄집어 당기는 마력이 있는 듯 하다.


살인자 발라드는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박히려고 강한 자극을 주려노래말을 쓰는 얄팍한 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억울한 약자들을 강변하려는 원래의 의도를 지키려는 경우도 많았다. 닉 케이브의 Henry Lee라는 노래도 그랬다.


친구의 죽음, 헤로인 중독 등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케이브는 브라질 사웅 파울로에서 절망감과 무력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중 1995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래된 미국 민요 Young Hunting을 편곡하여 멸시받는 여성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했고, Henry Lee라는 타이틀로 녹음했다. 같이 노래한 파트너는 작곡과 연주로 어느 정도 자신의 세계를 이미 구축하고 있었던, 롤링 스톤이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에 빛나는 싱어송라이터 PJ 하비였다.

녹음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비와 케이브는 서로의 예술적 감성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졌었다. 서로의 작품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었고, 강한 창의적 호기심으로 그들의 대화는 처음부터 깊고도 진솔하였다.

무엇보다도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던 닉 케이브에게 PJ 하비는 구원 그 자체였다.



(Part2 완결로 이어집니다)


닉 케이브의 주요 곡을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발라드


keyword
이전 21화관심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2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