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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에게 부치는 두 통의 편지 - 1

커트 코베인 이야기

by 김주영

LA 공항에서, 건즈 앤 로지스의 멤버 중 한 명과 마주쳤다.

평생 불편했던 얼굴들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친근했고 따뜻했다.

나는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한 인사를 건넸다. 적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나는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모자 깊숙이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3월 31일, 재활원을 빠져나온 다음 날이었다.

딸 프랜시스를 안고 있었던 체온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작고 따뜻하고, 무게 없는 그 품. 그 애는 웃었고, 나는 울고 싶었다.

그걸 마지막 기억으로 갖고 싶었다.


며칠 전, 아내 코트니 러브는 내가 집에서 자살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어쩌면 내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랐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지만, 책임감 없는 나의 행동은 그녀에게 의심의 고통을 주었다.

그녀가 불륜이라 믿은 밴드 'Hall'의 새로운 베이시스트 '크리스틴'과 나는 시집과 향수를 주고받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고, 조그마한 친절의 표시였을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 정도로 친절할 수 있다.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코트니 또한 질투에 눈이 멀어 맞바람을 피웠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그 잔해 위에 기대 잠들었다.


4월 2일, 나는 시애틀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차가운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총알을 샀다.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강도가 많아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눈을 보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 같았다.

며칠간 내 집에 머물렀다. 아무도 몰랐다.

방 안은 조용했고, 비가 왔고,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TV도, 음악도, 니르바나도 의미가 없었다.

잠이 들면 같은 꿈을 꿨다.

꿈속에서 은은한 광채의 붓다가 웃고 있었다.

나는 “왜 웃어요?” 하고 묻지만, 그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전부였다.

어쩌면 신이 마지막으로 내게 준 자비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첫 번째 편지를 썼다.


===


붓다에게,

나는 요즘 자꾸 당신을 생각해.

삶이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의 바다라는 말, 우리네 살림살이 또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말 모두 동감해.

죽는 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솔직히 죽고 싶지만, 떠날 곳도 없어.

며칠 전에 내 집 거실에 열 명쯤의 친한 얼굴이 모였어.

모두들 나를 '구하겠다'고 말했지.

코트니는 옆에서 말없이 담배를 피웠고, 그 담배 연기 속에서 그녀의 눈빛은 내게 “넌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들은 나를 모욕했어, 붓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위했지.

나는 말이 없었고, 그게 대답이었어.

그날 밤, 나는 항복했어.

재활원에 가겠다고 약속했지.

그게 내게 남은 마지막 연기였어.

죽는 것처럼 순종하는 거야. 웃기지?

재활원은 기묘한 곳이었어.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무표정했지.

기타는 없고, 벽은 하얗고, 말들은 상투적이고, 삶은 재활되는 중이었어.

나는 음악을 생각할 수 없었고, 그건 끔찍한 일이었어.

나에게 음악은 병이자 해독제였거든.

머리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3월 30일, 프랜시스가 왔어.

내 딸이.

그 애는 내게 와서 작은 팔로 내 목을 감싸안았어.

붓다, 나는 그 애의 체온을 느꼈어.

오랜만이었지.

사람의 체온이,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거의 잊고 있었거든.

나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딸을 흉악하고도 뻔뻔한 사람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재활원, 거기에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다음 날, 나는 사라졌어.

벽을 넘었고, 공항으로 향했고, 아무 말 없이 떠났어.

비행기 탑승 전에 건즈 앤 로지스의 멤버를 만났어.

예전엔 우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지.

그런데 그날 그는 나를 보고 웃었어.

나도 웃었고.

붓다, 웃긴 이야기야.

그 순간엔 세상이 다 용서된 것 같았어.

어쩌면 나도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친구, 결국 나는 코트니를 쏠 거야. 그녀가 좋은 엄마가 되리란 기대를 못 하겠어.

그녀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아. 단지 내가 선빵을 날리는 거뿐이야.

이 모든 걸 당신에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이라면 이해할 것 같아서야.

말없이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

고통을 가슴 깊이 껴안고, 그걸 사랑이라 부르려 애썼던 시간.

나는 이제 아무것도 쓰지 않아.

노래도 없고, 가사도 없고, 울부짖음도 메아리도 사라졌어.

나는 텅 비었고, 그래서 평온해.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기타 없이 태어나게 해줘.

그럼 덜 아플지도 몰라.

이건 유서가 아니야.

그냥 마지막으로, 말이 통할 것 같은 누군가에게 써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니 대답은 필요 없어.

그저 읽어줬다면, 그걸로 충분해.


4월 1일 당신의 오랜 친구, 커트 드림.



(Part2 완결로 이어집니다)

완결될 때까지 연재 요일을 화, 목요일로 변경합니다.


너바나의 주요 곡을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결국엔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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