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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 Part 2 (완결)

로이 오빈슨 이야기

by 김주영

1966년 6월,


6일 아내가 사망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 뒤를 쫓던 그녀의 오토바이가 힐튼언덕 교차로에서 잠깐 섰을 때 뒤 따라오던 트럭이 부딪혔다.

잡담중이었던 트럭 운전사의 망할 부주의 탓이다.

내가 문득 뒤돌아봤을 때 나는 트럭이 그녀와 바이크를 덮치는 것을 봤다. 일초보다 짧은 순간이었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 클로데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What Can I Do!


가여운 클로데트,

마지막 순간, 우린 아무 말도 주고 받지 못했다.



1968년,


봄에, 내가 밖에서 노래부르고 있을 때 집에 불이 났었다. 늙은 아버지가 막내를 안고 지하실에 있던 두 아이를 꺼내려 했지만 지하실에 있던 기름통이 폭발해 버렸다.



1968년,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며칠이 지났는 지 관심 없다

하늘은 스모그처럼 온 종일 온통 희뿌옇다

클로데트와 아들들을 만나기 위해 난 침대에 눕거나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꿈 속에서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공원을 걷는다

오직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낮인데도 내 방은 어둡다

친한 친구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틴 신이 며칠 전에 잠깐 들러 나 보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들도 한번씩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1978년 7월 15일,


나는 언제부터였던가 하루에 70에서 80개피 정도의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긴장을 풀고 걱정을 허공으로 내뱉어 발산하는 것은 나를 지금껏 살아오게끔 해 주었다. 그리고 이젠 너무 오래된 습관이 되어 버렸다.

목소리도 나빠지는 거 같지만, 다행히 트레이닝 덕분인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엘비스의 말마따나 내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는 풍만하고 깊은 저음, 점진적으로 조절하는 솔직한 감정적인 완급과 강약 그리고 두음과 가슴소리를 잘 섞은 부드러운 고음은 계속 유지되는 거 같아.

하지만, 가끔씩 가슴을 쥐어 짜는 듯 아플 때가 있다. 몇 분에 걸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 그럴 때면 나는 가슴을 안고 쪼그려 앉아 심호흡을 하려고 했다

결국 최근에 삼중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을 받았다. 관상동맥이 세 군데 이상 막히거나 좁아져 심장에 혈액공급이 잘 안된다고 했다. 흉부를 절개하여 심장을 열었고, 막힌 혈관을 우회할 수 있도록 다른 혈관과 연결해주는 수술을 했다.

의사는 살고 싶으면 당장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 끊어야 된다.



1980년 10월 24일,


돈 맥클린이 내 노래 Crying을 커버했다. 서정적인 그의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American Pie에서 그가 이야기했듯이, 세상의 변화는 끝없이 지속되고 있고, 그런 낯선 흐름속에서 우린 때때로 소중한 것들을 상실한 채 울고 있을 때가 있는 거 같아.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음악이 죽었던 날! 이라,

어쨌든 그 덕택에 내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야.

저 아지랑이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짙고 치명적인 흰색의 연기에 담긴 기억들.



1986년 3월 20일,


어떤 젊은 영화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데이비드 어쩌구 했는데 자기 말로는 엘리펀트 맨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1981년에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이번에 만드는 새 영화에 내 노래 In Dreams가 꼭 들어갈 장면이 있다고 했다.

나는 주저했다

'이 노래는 개인적인 감정과 얽혀 있는 곡이라 영화에 쓰여진다는 게 꺼려지는 군요'

그 데이비드라는 자는 이 영화를 살릴 결정적인 음악이니 자기를 한번 살려주는 셈치고,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날라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마하고 허락했다.

대체 어떤 스토리길래 이 애절한 곡이 간절히 필요할까?

몹시 궁금하다. 대여섯달 뒤쯤 개봉된다고 하니 꼭 보러 가야 겠다.



1986년 9월 20일,


영화를 본 직후, 나는 그 작자가 그 곡을 그 영화에 이딴 식으로 쓰다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몹시 화가 났다.

그런데 우리 집 사상 가장 많은 전화가 여러 언론사와 영화사로부터 걸려 왔다.

'변태성욕자의 불안한 심리와 상태를 너무 잘 표현한 곡입니다. 어쩌면 음악이 이렇게 영화와 잘 부합될 수가 있어요? 조만간, 우리 방송국에 나오셔서 꼭 한번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내가 그 곡의 원작자이긴 합니다. 부른 사람이기도 하지요.'

어찌 보면, 너무 샤이한 폭력배의 이중성을 잘 표현한 거 같기도 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정서는 제각각이니.



1988년,


조지 해리슨의 권유로 Traveling Wilburys라는 밴드를 만들어 앨범을 냈다. 거기에 수록된 Handle With Care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만들어진 곡이다. 바빠지려고 한다.



1988년 11월 18일,


다이아몬드 어워드에서 공연함.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1988년 12월 4일,


89년 예정인 나의 새로운 솔로 앨범 Mystery Girl 작업이 막바지다. TV 출연도 줄달아 잡혀 있다.

요즘에도 한번씩 아내와 아이들을 꿈 속에서 만난다.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아내는 내게 아직도 담배를 그렇게 피워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아이들은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최근 25년 전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된 듯 하다.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도와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1987년 9월 30일에 녹음된 시네맥스 TV 스페셜 공연 타이틀은 이렇다.

'Roy Orbison and Friends: A Black and White Night'


내가 사랑했었던 나를 사랑했었던 모든 이들에게 행복이 함께 하기를 온 마음으로 빈다.



이틀 뒤, 로이 오빈슨은 갑자기 가슴을 움켜 쥐고 쓰러졌다. 핸더슨빌에 있는 어머니집으로 급히 이송했으나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52세의 이르다면 꽤 이른 나이였다.




아래 링크에서 로이 오빈슨의 노래와 'In Dreams', '꿈에'의 여러 버전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In Dreams & 꿈에


깊은 울림과 치유의 보이스, 로이 오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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