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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동 품바 부부 - Part 2(완결)

by 김주영

'근께, 무안에서 품바공연을 열었는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당께'

광수는 품바공연을 한다며 북, 꽹과리, 장구를 구해오고 빈 깡통을 찌그리고, 넝마 의상을 만들며 분주를 떨었다.

'북구와 사상구 먼저 돌아야 쓰겠어. 그 다음엔 부산역으로!'

그는 각설이 타령을 배우려고 무안을 두어 번 다녀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판소리 조로 조금 느리게 불렀다.


'우리같이 얻어 먹는 거렁뱅이 놈들에겐 시상이 항상 춥제.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여름날도 춥고, 꽃피고 새 우는 춘삼월도 춥기는 매 한가지고, 어쨌든 옛날보다 시방이 더 추워버려'

종이쪼가리에 연필로 눌러 적은 사설을 읽은 다음 창을 했다.

'허어! 품바가 잘도 헌다.

허어! 품바가 잘도 논다.

천재 한님 신시열고 이나라를 세우실적

배달이라 이름하여 홍익인간을 세우니

에헤라 품바 잘도 헌다.

중국대륙 만주벌판 말달리던 한민족아'


'뭣이, 그리 어렵다요? 재미 하나도 없어야!' 한참을 듣고만 있던 영도가 입을 열었다.

부부는 밤 늦도록 좀 더 쉽게 청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재미나는 방법을 연구했고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여러 가지 가사 중에서 사람들이 쉽게 연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등장하는 장타령을 채택했고, 사설없이 창만 하기로 했다. 출출하던 부부는 라면을 끓이는 도중 TV에서 이박사라는 트로트 가수가 신디사이저와 드럼머신만을 반주로 해서 YMCA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을 보았다.

'워메, 저거구만!, 저거여!'

영도가 젓가락을 던지고 잘 보라구하며 뮤직박스를 틀어 정신없이 빠른 테크노 리듬으로 노래를 불렀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소.

어허 춤바가 잘도 한다.

품바 품바가 잘도 한다.

일자나 한장을 들고나 보니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수중 백로 백구 떼가 벌을 찾아서 날아든다'

'그려. 훨씬 낫구먼'


영도가 자신도 각설이공연에 끼워 달라고 했다.

광수는 보기에는 신날 지 모르지만 힘이 꽤나 들고 외울 것도 많고 온 사방으로 다녀야 해서 어렵다고 만류했지만 아내의 간절한 눈빛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주구장창 엉덩이 비비고 눌러 앉아 있는다고 뭐 특별한 수가 있겠으랴? 나다녀 봤자 그 눔이 그 눔이겠지만 혹시 안 다냐? 아무튼 이제부터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잡다.'


품바부부가 탄생했다.

영도는 미색 한복차림에 머리를 묶은 채로 장구를 쳤고, 광수는 노래를 하며 중간 중간 엿장수 가위를 쳤다.

첫 공연 이후 찾는 곳이 많았다.

관중들은 부부가 공연하는 동안 스테이지로 나와 막춤을 췄고, 때때로 두둑한 팁을 주기도 했다.

때때로 영도는 테크노풍으로 편곡한 트로트를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면 술취한 남자들의 기마이는 더 커졌고 , 가끔씩 아내의 손을 잡고 스킨십을 하러 다가오는 남자를 막기 위해 광수는 몸으로 막기도 했다. 광수에게는 그런 일들이 큰 스트레스였지만, 공연을 할수록 아내의 성격이 눈에 띨 만큼 밝아짐을 느꼈기 때문에 공연을 그만두게 할 수도 없었다.

1999년 9월 중순, 광수부부는 영주동 코모도 호텔 앞 단란주점에서 호출을 받았다.

커다란 홀에는 일본에서 온 단체 관광객 세 팀이 있었다.

공연에 앞서 광수가 영도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는 저의 아내, 송영도 양이고요, 아, 저 건너 편 영도가 아닙니다.' 통역사의 얘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우리는 다음 주에 고향에 가서 결혼식 올리고 행복하게 살 계획입니다. 축복해 주세요.'

사람들은 큰 박수와 함께 축하해 주었고, 품바 부부는 공연을 시작했다. 영도가 춤을 추며 '브루나이트 요코하마'를 노래했고, 광수가 테크노 반주에 장구를 신명나게 연주했다.


파란 저고리에 짧은 치마 차림의 영도는 곱고도 귀여운 자태로 몇 곡의 노래를 했고, 관중들은 흡족해했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되었고 일본 관광객들은 팁과 함께 광수에게 술을 권했다. 간만에 맥주와 양주를 연거푸 몇 잔 들이킨 광수는 영도의 손에 이끌려 무대 위로 돌아갔다.

그날은 유독 손님이 많이 몰렸다. 새로운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왔고 회식 후 2차로 온 듯한 한국인 직장인 남녀들. 그들도 광수에게 술을 권했고 광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중 어떤 직장인 여성이 광수의 공연을 품바하기 전부터 사상에서 몇 번 봤고, 그때부터 팬이라고 하며 각별히 친근감을 표시했고 연달아 몇 잔의 양주를 함께 했다.

가게를 마칠 즈음 광수는 많이 취했고 영도를 먼저 보냈다.

'나는 얘들을 조방앞에서 보기로 했다니까? 갸네들은 나이트라서 조금 더 늦게 마쳐. 알쟎아?'

그날 밤, 광수는 팬이라는 여성을 만나 부산역근처에서 술을 더 마셨고, 둘은 근처 모텔에서 잤다.

다음 날 10시쯤 눈을 뜬 광수는 홀랑 벗은 채 침대에 홀로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나 전날 밤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간 밤에 받았던 적지 않은 팁이 생각나서 윗주머니를 만져 보니 그대로 있었다.

11시가 좀 넘어 간 밤의 여성이 모텔로 찾아 왔다.

'자기, 어제 끝내주더라. 어제 약 좀 먹었다. 머리는 안 아프나?'

그녀는 쑥스러워하는 광수를 다시 안았다.

이틀이 지나자 집으로 가기가 두려웠다. 사흘이 되는 날 박박머리 드러머에게서 삐삐가 와서 공중전화로 통화했다.

'제수씨가 품바공연을 혼자서 하고 있든디, 빨리 들어가라. 잉? 무안에는 언제 갈거여? 가 봤자 하긴 아무도 없잖여? 난, 내일 모레쯤 갈 건디. 같이 갈거면 가자. 그나저나 빨리 들어 가. 잉?'


마음 여린 광수는 영도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이제 돈도 다 떨어져 어제부터 밥 사먹을 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버스탈 돈도 없어 부산역에서 사상집까지 걸어서 왔다. 집 나온지 엿새가 되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그 날 아침, 집 앞 입구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성거리다가 조심히 현관문을 열었다. 영도는 새벽까지 공연을 하고 자고 있었다. 광수는 조심히 부엌에서 식은 밥을 먹었다.

잠에서 깬 영도는 그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인간아, 와 그리 사는데! 고향엔 우째 안 갈낀 갑소'라고 하며 밥을 차려 주었다.


부부는 이후에도 부산에서 계속 살았다. 공연은 오래지 않아 오란 데가 없었고, 광수는 고향 선배의 도움으로 냉동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했다.

마흔 중반쯤에 광수가 남성 갱년기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다. 그간 살아온 모든 날들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덧없기 짝이 없었고 허송세월처럼 삶을 보낸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모진 세상을 살아가는 게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혈당도 갑자기 상승했고 광수는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어 버리고 매일 운동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영도가 아팠다. 갑상선암이었지만 특이하게 전이가 빨랐다. 광수는 몇 달을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다. 불편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았다. 영도는 머리를 모두 깎았다. 전신으로 암이 퍼진 어느 날 영도가 광수에게 말했다.

'광수야. 나 아프지 않고, 행복해. 재미 있었다. 그리고 오직 한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니 됐어. 만족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영도는 오래지 않아 광수 앞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


언젠가 자신에게 해 준 영도의 말이 맴돌았다.

'인간아, 와 그리 사는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향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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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해우소, 각설이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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