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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란?

에세이

by sleepingwisdom


삶의 의미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인생이 무료하거나 우울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이다.

요즘 나는 자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이다.

마치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기분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건강함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회복될 듯하다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를 반복한다.

이 과정은 마치 끝없는 파도와 같다.

높이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섭생 관리와 가벼운 운동, 스트레칭 같은 일상의 작은 실천들뿐이다.

거창한 치료법도, 특별한 해법도 없다.

그저 매일 조금씩, 규칙적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이 전부다.

분명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꾸준히 섭생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기복이 심한 일상 속에서


기운이 나는 날에는 집안일도 하고 다른 일도 해낼 것처럼 기분이 좋다.

마치 완전히 회복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럴 때는 세상이 밝아 보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솟아난다.

아, 이제 정말 괜찮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

족들에게도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예전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하루만에 다시 컨디션이 곤두박질치면 깊은 우울함이 찾아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왜 오늘은 이럴까?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고, 마음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이런 기복은 예측할 수 없어서 더욱 괴롭다.



분명히 이전보다는 나아졌다. 그것은 확실하다.

6개월 전, 1년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기복이 심한 일상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직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에 지쳐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또다시 실망스럽다.

밤새 뒤척이며 자는것도 아닌 안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있었다.

이런 날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머리로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바위처럼 무겁다.

이런 날이면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들도 나를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을 느낀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원망하게 된다.

사고 후유증이라지만 너무 오래 지속된다.

우울증이 빼곰히 고개를 든다.




사회적 기준에 대한 질문

요즘 내가 부쩍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이다.

우울함이 자주 찾아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구실이란 무엇일까?

매일 출근해서 일하는 것?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것?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것?

아니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

나는 이것 중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이런 기준을 누가 정의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아직도 휘둘리며 살고 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내 에너지 레벨은 하루에도 자주 바뀌고,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것이 지금의 내 현실이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상적인??' 혹은 일상화된 기준에 맞추려 하니 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다.



건강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 그렇게 간단한 일도 못하냐고,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억지로 버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의미를 찾는 것의 역설


이 기나긴 여정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답은 더욱 멀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더욱 우울함이 찾아온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현재의 상황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불충분하고, 더 나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는 늘 부족하고,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냥 여정을 이어나가는 것, 회복을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솔직한 답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삶의 이유를 돈이나 성공에서 찾고,

건강에서 찾고,

관계나 사랑에서 찾고, 권력이나

명예에서 찾기도 한다.

종교나 신념에서 찾는 사람도 있고,

예술이나 창작 활동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건강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되찾게 된다면 아마도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길 것이고,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것이 인생이라면,

언제까지 이 순환을 반복해야 할까?




새로운 관점: 그냥 살아가기



이제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도 찾지 말자.

그냥 살아가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때 오히려 우울함이나 권태로움이 찾아들 틈이 없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삶이 힘들어지는 듯하다.

기대가 있으면 실망도 따라온다. 목표가 있으면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도 생긴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것은 아닐까?

오늘을 받아들이고, 내일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



고래가 첫 숨을 쉴 때를 생각해본다. 어머니의 따뜻한 자궁에서 나와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는 그 순간, 고래는 삶의 의미를 묻지 않았을 것이다.

저 본능적으로 수면으로 올라가 숨을 쉬었을 뿐이다.

그 첫 숨이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그것은 생명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고, 그저 매순간을 견뎌내고 받아들이는 것.

좋은 날은 감사히 여기고, 힘든 날은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의 현재 상황도 다르게 보인다.

회복되지 않은 것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고,

기복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완전한 건강을 되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대신, 지금 여기에 있다는 안정감이 찾아온다.

그저 숨 쉬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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