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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에서 벌어진 일들

by sleepingwisdom

해변가에서 벌어진 일들



죽음의 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줄 알았다.

해변가로 사력을 다해 나오고 나서 기진맥진했다.

나는 모래 위에 몸을 내던졌다.

사지가 뻣뻣했고, 온몸은 물에 젖어 축 늘어져 있었다.

파도가 살짝살짝 내 다리를 때렸다.


더 큰 파도가 몰려오기 전까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좀 더 해변가로 나아가야 했다.

왼팔만 움직일 수 있기에 사력을 다해 기어서 파도가 닿지 않을 만한 곳까지 도달한 것 같다.

그리고 기절했던 것 같다.

운 좋게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쇼크 상태를 깨워주었다.



"헬프 미! 헬프미!"

"헬~~~ㅍ~~~~~"

목소리가 끊겼다.

힘이 없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힘을 짜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힘을 쓰다가는 죽을 수도 있어서 곁에 사람이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평상시에 새벽부터 사람이 많은데 오늘따라 사람이 별로 없다.

인기척도 없다.

널브러진 시체 같은 사람을 발견할 법도 한데 너무나 고요하다.

나의 심장 맥박은 터질 듯 고동친다.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이렇게 발견되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구나!'

극심한 고통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몇몇이 지나갔는데 나를 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보아도 심각한 상황이라 받아들이지 않는지 그냥 지나쳤다.

분명 발소리를 들었다.



이것도 환청인가?

"헬~~~~프!"

왜 보고도 그냥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체념 상태로 있었다.

고통은 파도처럼 잦아들다가 또 극심하게 찾아왔다.

의식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외면한 것인지 못 들은 것인지 그냥 지나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왜 도와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발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지나치는 사람들이 무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누워 있는 동안, 시간이 점점 느려졌다.


마음 한편에선 이렇게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비축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나는 모래 위에 꼼짝없이 누운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

그리고 두 번째 쇼크 상태로 들어갔다.

누군가 주변에서 마중 나온 빛의 무리들이 보였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평온한 얼굴을 하고 바닷가 하늘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키가 5미터 정도의 아바타 형태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보지 못한 용모를 갖고 있었다.



"아!!!!"

"아~~~악!!"

또다시 극심한 통증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그동안 시간은 내가 느끼기에 수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서 계산해보면 약 5분이나 10분 정도인데, 거의 그 시간이 1시간 정도는 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큰 소리로 다시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해변가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것보다는 최대한 노력을 해봐야 했다.

하지만 너무 힘이 없었다.

내가 외치는 소리가 모기 소리만큼 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왔고, 내 곁을 지나치고 사라졌다.

완전 체념을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시간은 더 느리게 가는 법이다.

온몸의 신경이 깨어나면서, 그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점점 더 절망에 잠식되어 갔다.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을까?

기적처럼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아침 산책을 하던 한국 사람이었다.

중년 여성이었는데 그분이 보시기에도 상황이 심각했던 듯 보였나 보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깜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나보다 더 놀라서 얼어붙은 듯 보였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베트남 사람들을 펄쩍펄쩍 뛰시며 불러 모으셨다.

대여섯 명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당황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년 여성의 간절한 목소리와 행동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녀는 손을 떨며 펄쩍펄쩍 뛰며 다시 외쳤다.

"구급차! 빨리 불러 주세요!"

한 베트남 남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내 몸은 힘없이 모래 위로 쓰러졌다.

나는 그들의 손길 속에서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다.

이제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의식도 사라져갔다.

구급차를 기다리며

시간은 다시 느리게 흘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십여 분이 걸렸을 뿐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영원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흐릿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깨어있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

환상 속에서 키가 큰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른이었지만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었다.

성이 없었다.

코와 눈이 유난히 컸다.

그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편안함을 주었기에 겁이 나지도 않았다.

처음 보는 존재들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처음 보는 모습과 비현실적인 외모인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현실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서 내가 죽음의 경계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을 때 누군가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저승사자는 아니었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사도 아니었다.

돌아가신 가족도 아니었다.

일면식도 없는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아바타의 사람들과 닮았지만 피부색이 달랐다.

이들은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황금빛에 가까웠다.



대여섯 명이 서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위급한 상황을 모르는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에 나도 점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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