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통증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왔다.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고 꿈속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변한 것이 없었다.
통증과 입의 모래와 주변 사람들의 소란이 이것이 현실임을 알려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Emergency, please hospital!"
이미 한국 중년 여성이 나를 위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하다 보니 지금 내가 바닷가에서 부상을 입고 막 나온 상황인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살려는 의지가 강했는지 깨어나자마자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 듯하다.
그들의 언어가 아니기에 최대한 짧고 명확하게 내 의사를 표현했다.
다행히 그중 한 명이 조금 영어를 알아듣는 듯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구급차가 5분 후에 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최초에 나를 발견한 한국 중년 여성은 계속해서 나를 걱정하며 큰 소리로 "어쩌면 좋냐?"며 연신 걱정과 탄식을 번갈아 하셨다.
약간 호들갑 떠는 스타일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도움을 주는 데 그만한 분도 없었다.
그녀는 주위를 계속 둘러보며 또 다른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과 정말 걱정해주시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녀는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걱정해주시며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었다.
"어쩌면 좋냐.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이 말이 계속되는 메아리처럼 계속 들렸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녀는 계속 혼잣말처럼 이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러한 외침이 내가 계속적으로 깨어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의 소란은 주변 사람들을 계속 모으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시끄러워져서 나는 기절과 깨어남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걱정 어린 눈빛, 다급한 목소리, 떨리는 손길까지도 나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파도가 나를 구해준 것이고, 두 번째는 나를 발견한 이 한국 아줌마가 나를 살려주신 것이다.
앞으로 한국 아줌마의 오지랖은 무조건 수용하고,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무조건 친절하게 응대해 줄 것이다.
남의 일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을 오지랖이라고 하지만, 이분의 관심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오지랖이 아니었다면, 나는 오늘 이 이야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대여섯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거나 베트남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다.
내가 부상당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좀 잘 들여다보면 큰 부상이라 해변가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아침부터 술 취한 사람처럼 이상한 자세로 파도가 발밑을 때리는 데서 엎어져있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를 살려준 것은 고맙게도 한국 아줌마의 오지랖과 같은 관심이었다.
내 몸이 파도에 가까워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산책로와 모래사장이랑은 조금의 거리가 있었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죽을 운명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한국 특유의 주변 사람을 챙기는 문화가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이 아줌마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분 덕에 두 번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남은 힘을 비축해야 했다.
내가 움직일 수 없음을 안 사람들이 내 앞에 원을 만들어 서 있었다.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곧 병원으로 갈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날 깨워주고 있었다.
몸이 살려달라고 보내는 소리 없는 신호였다.
통증이 없었다면 탈진으로 그대로 잠들어버렸을 것이다.
통증이 밀려올 때마다 정신이 명료해졌다.
짧은 순간이지만 본능적으로 궁리했다.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었다.
내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깊은 의지였다.
창자에서, 무의식에서 솟아나는 울림 같은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이나 잡념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통증과 고통은 다르다고 말한다.
통증이 있어도 심리적으로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직접 큰 통증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그렇게 말하기 쉽지 않다.
직접 겪어보면 안다.
통증이 심하면 고통이 따라온다.
몸과 밀착된 통증 앞에서 분리의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통증이 곧 고통이다.
문득 의식이 명료해지면서 현실을 자각했다.
하지만 신음이 새어나올 즈음 통증은 잦아들고 의식은 다시 흐려졌다.
시야가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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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키가 비정상적으로 커 보였다.
얼굴은 황금빛으로 빛났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표정인데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더 이상 인간의 얼굴이 아니었다.
머리에서 빛이 퍼져나가 하늘로 번져나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했다.
눈을 뜰 때마다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나를 둘러싼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렇게 키가 크지 않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가?
그들이 만든 원 안에서 나는 머리 위로 소용돌이치는 빛의 파동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놀라웠다.
이 세상의 색감이 아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살아있는 색감이었다.
천연색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밝은 빛의 오라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이다.
빛이 생명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빛이 숨 쉬고, 의사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여기서 이상한 데 에너지를 낭비하다가는 정말 죽는다.'
스스로 경고하며 눈을 감고 심호흡을 시작했다.
공기는 묵직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의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다.
단전호흡을 십여 년 했던 적이 있다.
천천히 길게 호흡하며 천천히 내뱉었다.
효과가 있는지 조금 진정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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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다.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더 이상 내가 해수욕한 그 바다가 아니었다.
바다는 푸른색이 아니었다.
새벽이 터질 때의 첫 빛 같은 색이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모호한 흑백TV의 하얀색 정도.
파도도 치지 않고 잔잔하게 정지해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다가온 빛의 전령들은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 이상한 존재들은 빛의 기둥이 되어 하늘과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그 빛에 흡수되면 바로 하늘로 순간이동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주변에 없었다.
이제 눈만 뜨면 환상이 보였다.
다시 눈을 감고 깊고 느린 호흡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