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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함

by sleepingwisdom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모두 했다. 살기 위해서 파도를 애써 기어 나온 일이며, 정신을 챙겨가며 고통 속에서도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환각 속에서도 정신을 차려가며 에너지를 아꼈다. 응급실에 실려 와서는 마지막 끈을 잡듯이 살 방도를 떠올리며 짧은 순간에 지인을 떠올리며 전화를 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더 이상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했다. 그래도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승이나 사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러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체험해본 적이 없기에 내가 겪지 않고 믿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가 죽어서 차원을 옮겨간다고 해도 어떠할지 가늠할 수도 없기에 나는 온전히 지금의 그리고 이 후의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한 편으로 너무 편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한 일일 줄이야!



이제 수술하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했다. 그리고 운명 혹은 하늘에 맡겨야 했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죽는 것도 두렵지도 않았다. 죽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누구는 빨리 가고 누구는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살고자 했지만 죽을 수도 있고, 죽고자 했지만 사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혹은 질병으로, 혹은 운 좋게 자연사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짧은 순간에 그러한 생각도 했다. 내가 더 살아간다고 더 잘 살라는 법도 없었다. 잘못된 결정도 했지만 그것이 나중에야 잘못된 것인 줄 알지, 그 순간에는 그 지력으로 최선의 답을 삶에 내놓았을 뿐이다. 그것이 때로는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범인의 삶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어떠한 인생을 살던 후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실수를 했다면 교훈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있고 배워서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희귀하다. 보통 사람들은 실수하면서 배우고, 하수들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내 허둥지둥 되다가 이럴 줄 알았지." 나야말로 허둥지둥 가게 될 운명이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다. 대부분은 끝까지 살려고 발버둥친다. 가망이 있고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연명을 위해서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죽음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준비되지 않았다면 회한이나 후회는 남을 수 있다. 나도 특별하게 죽음을 준비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당장 닥친 나의 일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을 뿐이다.


바람직한 죽음이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자연사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죽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최대한 노력하되 마음의 준비는 할 시간이 있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 나을 수도 있다. 사고로 인한 죽음은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삶을 정리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아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자연재해로 죽어가건만, 각종 교통사고와 작업 현장 사고는 얼마나 많던가? 나는 왜 그들의 죽음을 그저 통계로만 받아들였던가? 갑작스레 죽음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만큼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뼈아프게 와닿았다. 침대 위에 누운 나는 주변의 긴박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알았다.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도 외면해왔고, 그렇게 현실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내 일이라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운명이란 것이 태어나게 하고 살게 해주었으니, 또한 그 운명이라는 것이 거두어간다고 불평할 것도 아니었다. 숨이 가빠지고 의사들의 목소리가 멀리 들리며, 나는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때 또한 내가 정했으면 좋겠으나 지금이 그 때라면 나는 받아들여야 했다. 죽음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였고, 삶의 한 부분이었다.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사이, 모든 미련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나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모든 순간과 주위가 일시에 정지 상태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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