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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왔다

수술실 광경

by sleepingwisdom

모든 것을 마음으로 정리했다. 직접적으로 작별인사는 못건넸지만 마음속으로 가족에게 미안함을 대신했고 위로해주었다. 친구들에게까지 하나하나 되뇌며 작별인사를 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그때 나는 머리 위에 있는 집도의의 얼굴을 위로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하얗고 빛나 보였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미소에 나는 편안함을 느꼈지만,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의 여유에 약간의 거부감도 느끼고 있었다. 불안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심각한 상태라고 들었고 침대를 전력 질주로 수술실로 끌고간 장본인 아니던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살아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저 표정은 무엇인가? 저렇게 평온하고 미소 띤 얼굴은 나의 정서상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에게는 수술이나 죽음이 일상이기에 전혀 긴장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나이는 육십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주름 하나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생기가 가득 차고 평온하고 조화로운 기운이 주변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내가 ‘장자’에서 읽은 ‘진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상상만 해보았지 그런 사람을 평생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박하향 비슷한 상쾌한 내음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러한 것들이 죽어가는 내 몸에 생기를 전해주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 의사는 외모도 특이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거의 키가 작은 편이다. 수술진도 보통 베트남 사람들 정도의 키다. 그런데 이 의사는 2미터가 넘는 듯했다. 그 정도로 키도 크고 몸매는 육중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의 미래를 확신하는 듯 계속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죽음과 이 사람의 모습은 극과 극으로 대비되고 있었다. 이 수술과장이 낫짱에서 수술을 제일 잘한다고 들었다. 수술 후에 그가 명의라고 들었지만 외모도 그에 걸맞게 특이했다. 모든 것이 현실에서 본 적이 없는 그런 외모와 생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매력적인 아이돌이나 영화배우의 매력은 이 의사 앞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어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마력에 가까운 매력을 지닌 모습이었다. 멋진 배우나 아이돌이 아무리 멋진 옷과 화장으로 치장해도 그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세상 마지막 가는 길에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힐 겨를도 없이 집도의가 "샷!"이라고 외쳤다. 그 짧은 음성과 함께 내 왼쪽 발 정맥 쪽에 마취를 하자마자 나는 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알 수 없는 것이 인연이라더니, 이보다 더 묘한 일이 있을까?

응급실에 누워 있을 땐 살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순식간에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신기할 정도다. 조금만 늦게 전화했어도 나는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그에게 전화할 생각을 했을지도 의문이다. 평상시에 그 분은 내 머릿속에 있던 분이 아니다. 관심도 없었고 굳이 만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병원 응급실에서 살 방법을 떠올렸을 때 그 분이 떠오른 것은 천운이다. 때마침 전화를 받고 바로 와주신 것도 기적이다. 누가 이렇게 드라마를 쓴다면 아마도 뻔한 전개라고 비판을 받고도 남을 일이다.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듯이 모든 순간이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하나만 어긋나도 살아남을 수 없는 기적에 기적이 더해진 이 일을 인간이 감히 계획할 수 있을까?



나는 단지 천운이라고 말 할 수 밖에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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