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꿈
반복되는 악몽속에서, 기적처럼 그 치유의 순간이 왔다.
이게 뭐지?
손끝에서 느껴지는 이 미세한 떨림. 처음엔 내가 떨고 있는 줄 알았다. 공포 때문에, 추위 때문에. 하지만 아니었다. 뭔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환각이야. 분명히.'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보는 마지막 환상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뇌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면서 만들어내는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이 따뜻함은 뭐지? 이 안정감은?
허공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기운이 보였다. 아니, 보인다는 표현이 맞나? 느낀다는 게 더 정확할까?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 기운이 내 손바닥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부터 손목까지, 그리고 팔 전체로.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가?'
의심하면서도 감사했다. 진짜든 가짜든, 이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나와 함께 있었다. 내 고통을 알고 있었고, 내 절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사고 이후 모든 사람들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줬지만, 정작 나는 아무에게도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전혀.
이 따뜻한 기운만이 나의 진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이젠 괜찮습니다."
누가 말하는 거지? 목소리가 들렸는데 귀로 들은 게 아니다. 가슴에서,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다.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하지만 더 이상 의심하고 싶지 않다. 이 순간이 환상이라면 환상대로, 꿈이라면 꿈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파동이 언어가 되어 내게 전해지고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통이다. 마치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 느꼈을 법한 그런 원초적인 대화.
눈물이 멈췄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어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까지 산산조각 났던 내 몸이 말끔히 회복되어 있다. 상처도, 아픔도 없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게 죽음인가?'
죽음이 이렇게 평화로운 건가? 이렇게 따뜻한 건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 건가?
아니면 이게 진짜 삶인가? 지금까지 내가 산 것은 그저 생존이었고, 이제야 진짜로 사는 건가?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젊었을 때보다 더 아름답다. 건강하다. 빛이 난다.
'이게 나야?'
거울에서 본 적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익숙하다.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의 일부를 되찾은 것 같다.
혹시 우리는 모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는 걸까? 그리고 살아가면서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걸까?
해변을 걸으며 느꼈다. 이 기운이 점점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니다. 이대로 끝나면 안 돼. 이 평화로움을, 이 완전함을 더 오래 느끼고 싶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꿈일 거야.'
그 생각과 함께 모든 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도, 따뜻함도, 평화로움도.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다친 몸, 아픈 곳들, 현실의 무게. 모든 게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꿈에서 경험한 그 모든 것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같은 꿈을 반복했다.
이런 증상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들었다. 뇌가 그 충격을 정리하지 못해서 반복적으로 재현한다고.
맞는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매번 꿈이 조금씩 달랐다. 고통의 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구원의 순간이 더 생생해지기도 했다. 마치 내 무의식이 그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려는 것 같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걸까?'
죽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아니면 그 둘 사이의 경계에 대해서?
어느 날 밤, 마지막 꿈을 꾸었다. 그때는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 그 아름다움에 완전히 잠겨있었다. 깨고 싶지 않았다.
'이제 괜찮다.'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더 확실했다.
눈을 떴을 때 알았다.
이제 반복되는 그 꿈을 꾸지 않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