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이 지났다.
몸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어떤 날은 아프고, 어떤 날은 괜찮다. 트라우마도 가끔 찾아온다. 가만히 있으면 뇌가 제멋대로 그때의 기억을 재생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는다. 밤이 두렵지 않다.
대신 다른 꿈을 꾼다. 평범한 꿈들. 가족과 함께 있는 꿈, 건강했던 시절의 꿈, 미래에 대한 꿈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그 빛을 다시 꿈에서 만난다. 그럴 때마다 깨어나서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생명이 아니었다. 이 삶에 대한 애착도 맞지만, 그것만도 아니었다.
아마도 연결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연결, 이 세상과의 연결, 그리고 나 자신과의 연결.
사고 후에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보이지 않는 끈들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빛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생각한다. '이제 괜찮다.' 그 말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괜찮다. 아직 아픈 곳이 있지만, 괜찮다. 때로는 무서운 기억이 찾아오지만, 괜찮다.
그 빛이 여전히 내 안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아직 사랑할 수 있다. 아직 감사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발밑에서 스며오는 차가운 마취의 감촉.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리고... 무(無).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눈꺼풀을 간지럽혔다. 눈을 뜨려 했지만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몸 전체가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니, 연결되어 있었다.
숨을 쉬려 애썼지만, 목구멍에서는 거친 소리만 새어 나왔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간절히 외치고 싶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공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막혔다. 뭔가 얼굴에 붙어있는 게 느껴졌다. 산소마스크였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팔다리로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선들이 몸에 꽂혀 있었다. 수액병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조용히 생명을 공급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났나?'
시간의 감각이 없었다. 마치 눈을 한 번 깜빡했을 뿐인데,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깊은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였다가 다시 존재하게 된 기분이었다.
백의를 입은 누군가가 다가왔다. 간호사였다. 입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소리가 멀게 들렸다. 물 속에서 듣는 목소리 같았다. 간호사는 내 몸을 살피고 있었지만, 내 고통을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런 수술 후에 의식을 되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고통 속에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수술 전과 다를 바 없이 통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있는지 그 때는 몰랐다.
나는 깨어나고 기절을 반복한 것 같다. 깨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 누군가를 불렀지만 의료진은 꿈쩍도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단지 나의 머리 속에서만 나오는 소리 같았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꿈일까? 한국에 있어야 할 아내의 목소리가 여기 베트남 낫짱의 이 병원에서 들릴 리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서 있었다.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가 여기 올 정도면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였다.
"여보, 수술 잘 됐어. 8시간이나 걸렸는데, 의식도 빨리 깨어났고... 경과도 좋대."
아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차분히 설명했다.
"아침에 전화가 와서 부랴부랴 준비해 저녁 8시 비행기 타고 바로 왔어. 시차 때문에 새벽 2시에 도착해서 병원에 왔고..."
계산해보니 거의 20시간이 흘렀다. 내게는 눈 깜짝할 사이였는데.
아내는 계속 말을 이었다.
"피도 많이 흘려서 수혈도 엄청 받았대. 생존 가능성이 30%라고 했는데... 사실 그것도 우리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대."
30%?
아니, 그보다도 적은 확률?
‘내가 살아있다는 게 신기하네.’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왔다. 마치 지니가 아내를 순간이동시켜 베트남까지 데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
아내에게 이 고통을 알리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데도 숨쉬기가 이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급해서 위세척할 시간도 없었대."
그래서 속이 울렁거렸고, 모래 같은 걸 계속 토해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얕게 헐떡거리다가 의식을 잃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속삭였다.
"심호흡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내는 덧붙였다.
"여기 면회도 금지인데, 특별 배려로 들어온 거야. 외국인이라서, 그리고 지인 찬스로..."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서 미안하다는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내게 말하지 말라고, 힘을 아끼라고 했다.
“수술은 잘 됐어. 며칠이 고비니까 침착하게 잘 넘기자."
심호흡을 하려 했지만 호흡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