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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나 Dec 07. 2023

나의 슬픈 사회학 이야기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내 몸뚱이만 한 집 한 조각 가격이 천 단위라는 것을 실감하면, 이고 지는 맥시멀리스트의 삶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표적인 게 책이다. 펴본 지 한참이 된 것 같은 책도, 왠지 내 집! 내 책장!에 꽂혀있어야 내 머릿속에 머물 것 같다는 이상한 집착 때문에 내다 버리지 못했다. 이런 게 꽤 된다. 유물론적 변태성이랄까. 여기에 독서를 장려하는 부모까지 자처하면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마침 휴가겠다, 여기저기 청소를 하다 책 정리까지 왔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요즘 산 책은 읽자마자 중고로 바로 내다 팔아서(책값을 매기는데 신간 최상품 판정?을 받는 순간이 매번 떨림) 나름 정리가 잘 돼 있는데(밑줄과 메모를 참지 못한 것만 남아있다), 집에 보관 중인 책은 상당 부분이 20대, 30대 초반 구입했던 것들이라 왜때문에 이 집에 남아있는지 이유도 제 멋대로, 산만하기 짝이 없다. 하나씩 뽑아보면 이게 나를 설레게 했던가, 그 시절의 내가 보이나... 아, 시간이 길어진다. 


어느 분야를 들어낼까 분류를 하다 보니 사회학 책이 대부분이다. 사회학. 내 대학시절 전공 학문. 사회과학부로 입학해서 뒤르켐의 자살론에서 감동을 받고(음?) 2학년 때 사회학을 선택했었지. 그래, 첫사랑이랑은 이별해야지. 내 기준에서 가장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한 두 권 빼고 들어내자. 책 속에 적은 메모들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아무도 볼 수 없게 화형 시켜 버리고 싶지만 기력이 없다. 자본론도 김수행 역 빼고 다른 감수 편들은 빼내고, 금융자본론 등 마르크스 어깨 위에서 쓰인 책들도 반은 없애자 분류한다. 한 때는 지구인 절반을 갈라 싸우게 했던 마르크스여, 이제는 편히 쉴 땝니다. 


사회학은 사회현상 등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들여다보는 학문이라,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학문이다. 자살론을 읽는 순간에도 해당 책이 사회학 서적이라는 걸 몰랐던 신입생 윤지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자살을 사회구조의 결과, 사회적 타살로 설명하는 뒤르켐의 설명에 눈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눈 뜬? 나를 포함 2002년에 20여 명의 사회과학부 입학 학생들이 선택했던 학문은 그다음 해에 열몇 명으로 그 수가 줄었다. 지금 상황은... 모르긴 해도 분명 극소수일 것 같다. 논리추론을 요구하는 로스쿨 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사회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것도 손가락으로 세고도 남을, 적은 숫자일 듯하다.  


아, 생각해 보면 내가 선택했던 그때는 이 시대가 사회학에 이별을 고하는 슬픈 소설의 본격적 첫 페이지였던 것 같다. 나라님과 일본 놈, 군인각하를 거치며 납작하기만 했던 사회에 대한 한국 평균 인식은 80-90년대에 사회를 알고 싶다! 는 욕망에 시달렸고 그 결과가 이 시기 사회학의 인기였던 듯하다. 하지만 시장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현시대에 사회학은 직업학자?가 될 게 아닌 이상 문과 폄훼의 대표 주자로 전락한 지 꽤 됐다. 나의 선택 이후 쭈욱 내리막길이니까 최소 20년... 새로운 천년은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와 관련된 기술습득자에게나 우호적이다. 엔지니어 혹은 개발자로 불리는 분들 부...부럽습니다. 이들이 쓰는 기술이 (무려)태초에 사회학 같은 '다르게 보기'나 '분석하기', '사고실험' 같은 데 근본을 두고 있다며 호소하는 목소리도 들리지만, 그냥 호소일 뿐이다. 닥치라고! 


사회학과 그 언저리의, 이른바 문사철 학문 전공자들은 그래봤자 학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배운 게 뭐가 있다고!) 문과생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박고 허덕이며 사회에 나와버렸다. 주위를 보면, 참 뛰어나고 훌륭한 분들이 극도로 낮은 글값으로 생계를 잇거나 마지막 지식 전달자라는 슬픈 목표를 가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절차탁마 중이다. 나처럼 어중간한 애들이 되레 적당히 회사원이 됐다. 대표적인 사회학류? 취업시장이 있다면 언론사다. 어찌나 다들 밥벌이 안 되는 학문들인지...


경제학을 했어야 했나. 자격증이 있는 직업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비트 찍는 법을 배우고 영상 편집을 하는 기술을 배우고 영상 감각을 길러야 하나. 이런 번민에 시달리는 한 물 간 사회학도는 신기술 탐색 중 자신의 엄청난 예술적 재능을 우연히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한다. 막스베버는 20년 만에 낡은 것이 돼버리는 학문의 운명(그는 심지어 이것이 학문의 운명이자 목표라고 했다)과 달리 예술품은 낡지도 않고 추월당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런 시발 지나야, 여기서도 막스베버 타령하면 어쩌니. 


+ 사진은... 이제는 키치 느낌까지 나는 마르크스 사진. 이 시대에 마르크스식 혁명을 하자는 사람들은 국보법으로 걸어 감방에 보내는 것보다 정신병원에 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함. 이런 시대에 한국의 윤석열 각하가 '공산전체주의 타도'를 외치고 있긴 한데, 촌스럽다 못해 초현실적이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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