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예민하다.
고수는 까다롭다.
고수는 꼼꼼하다.
고수는 엄격하다.
고수는 결단력 있다.
고수는 자제력 있다.
고수는 단순하다.
고수는 자유롭다.
고수는 질서가 있다
고수는 사고와 행동이 빠르다.
(손웅정의 독서 노트 중에서)
둘레길을 걸으러 갈 때마다 항상 한 권의 책을 가지고 간다. 보통 하루에 15~20Km 정도를 걷는데 걷고 나면 머리 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 맥주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숙소에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 둘레길에서 접하게 된 책 속의 글귀가 이번에 쓰려고 한 PM의 소양과 너무 딱 들어맞아 글의 첫머리에 적어보았다. 자, 가슴에 손을 얹고 메타 인지적으로 생각해 보자. 나는 과연 고수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어떤 분야에서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고수’라 부른다. ‘장인’과도 일맥상통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고수’와 ‘장인’은 약간 다른 뉘앙스가 느껴진다. ‘장인’은 오랜 기간 끈질기게 한 우물을 넓고 깊게 파서 업의 경지에 이른 느낌이라면 ‘고수’는 시간과 노력의 싸움에 타고난 ‘기질’이 더해져 ‘열반’의 경지에 이른 느낌이다. (누가 누구의 우위에 서는 그런 개념은 아니니 오해는 없으셨으면 한다.) 즉,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타고난 ‘소양’이 뒷받침되어 ‘소양’과 ‘역량’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이를 수 있는 도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책에서 말하는 고수의 소양은 사생활이 아닌 프로페셔널의 관점에서 예민하고, 까다롭고, 꼼꼼하고, 엄격하고, 결단력 있고, 자제력 있고, 단순하고, 자유롭고, 질서가 있고, 사고와 행동이 빠름을 말한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데 있어서 까다롭고, 결단력 있고, 사고와 행동이 빠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PM이라는 역할에 대비해 생각해 보자. PM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하며, 나무와 숲을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PM은 전략가, 디렉터, 협상가, 조력자, 해결사, 통솔자의 역할을 하며,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는 배의 선장이자,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PM은 한정된 자원과 주어진 일정 내에 최대의 효율과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전체 프로젝트의 업무 범위와 인력에 대해 꼼꼼하고 까다롭게 확인하고 조정하고 계획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사전 감지하고 예방할 수 있어야 하고 다채로운 사람들과 함께 최고의 하모니를 만들어야 하므로 예민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상황에 맞는 대응 방안을 만드는 것은 PM의 일상이다. 초반에 꼼꼼하고 까다롭게 전반적인 사항을 체크하고 인력 세팅, 전략과 방향성 수립, 일정을 계획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잘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잘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헐리웃 영화처럼 곳곳에 반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대한 빠른 사고와 행동, 그리고 결단력을 요한다. 결단력이라 함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과감하게 전략을 수정하거나 인력을 변경해야 하는 결단을 요하기도 한다. 의사결정을 조율해야 하는 역할도 있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하므로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지혜롭고 슬기롭게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는 팀 단위로 운영되기 때문에 팀 내 질서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룰 세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본인부터 엄격하게 룰을 지켜야 한다. 팀의 수장이므로 팀의 질서를 저해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 필름이 끊긴다거나 상대방에게 무례한 취중행위를 절대 해서는 안되고, 아무리 늦은 귀가를 하더라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하여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건강 관리 소홀이 프로젝트 관리의 소홀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자기 절제와 관리를 해야 한다. 마이클 조던, 손홍민과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면 자기 절제와 관리가 상당히 엄격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정상의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민하고, 까다롭고, 꼼꼼하고, 질서 있고, 자제력 있고, 엄격하다고 복잡하거나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단순하고 자유로운 사고에서 기인한다. 사고와 행동이 빠르다는 것은 문제를 좀 더 단순하게 보고 융통성 있는 솔루션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냥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많이 어렵다. 그러하기 때문에 PM은 교육만으로는 될 수 없고, 잠재적으로 소양을 타고 난 사람이 할 수 있는 업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소양을 타고난 사람은 PM이란 역할에 조금 더 쉽게 적응할 수 있고, 조금 덜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으며, 본인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수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카멜레온처럼 각기 다른 프로젝트 상황에 맞게 적절한 옷을 갈아입고 프로젝트를 능수능란하게 지휘한다.
그럼 이러한 소양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하나? 너무나도 당연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타고난 소양이 부족하더라도 부단한 연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소양을 개발하여 선천적인 소양을 능가할 수 있다. 그리고, 소양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소양을 잘 개발하지 않으면 타고난 소양은 언제든 도퇴될 수 있다. 타고난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할 수 있지만 결국은 얼마나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나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보자. 아이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존재감을 가진 아이였는지 기억을 되새김질해 보자. (1) 친구 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였는지, (2)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다가 나를 찾는 아이들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나를 중심으로 친구 그룹이 형성되는 상황이 벌어졌는지, (3) 스스로 우루머리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의 그룹을 만드는 성향이었는지, 아니면 (4)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조용히 홀로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리더의 분위기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전적으로 맞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의 신빙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본인이 두번째 상황에 처한 적이 많다면 리더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3번인데 2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2번과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이유는 뭔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리더의 존재감과 분위기를 아이들조차 본능적으로 직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의 소양을 타고난 아이는 본인이 리더의 소양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왜냐면 리더라는 자리는 3번처럼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렵게 획득한 자리가 아니라, 아이들과 어울리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본인에게 주어진 자리이므로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구지 본인 스스로를 ‘리더’라 칭하지 않고, ‘리더’라 만천하에 떠벌이며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본인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남들이 ‘리더’로 칭송한 것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치 않는다.
그럼 세월을 다시 거슬러 올라와 메타 인지를 발동시켜 성인이 된 지금의 나를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 보자.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조직에 속하면서 그때의 아이는 지금 어떻게 성장했나? 그때의 아이와 지금의 내가 같은가, 아니면 달라졌나? A4용지의 반을 접어 왼쪽은 어린시절의 나, 오른쪽은 성인이 된 나에 대에 적어보고, 같다면 어떠한 측면에서 같은지, 다르면 어떠한 측면에서 달라졌는지 생각하고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내 강점을 잘 살리고 개발할 수 있는지. 부족한 부분을 개발해서 다른 역할에 도전해 볼 결심을 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것은 나를 잘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연말을 앞두고 실천하기도 힘든 거창한 2025년의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