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지막으로 설렘을 느낀 건 언제인가요?
너무 현실적이어서 슬프지만 복권을 살 때 설렘을 느껴요. 예전에는 맛있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약속, 몇 달 후 여행, 새로 개봉한 영화의 예매 등 사소하게 설레는 것들이 좀 있었는데 요즘엔 먹고 사는 일이 퍽퍽해서 그런지 설렘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야만 했어요. 그렇다고 뾰족한 기억이 나는 것도 아니어서 도대체 언제 조금이라도 희망차나, 기억을 더듬 더듬었더니 그나마 복권사는 날이 그러네요.
어차피 안될 걸 아는 일이라 이왕 꿈꿀 것 거대하게 꾸자, 생각해요. 동네 시장 안에 있는 가게에서 복권을 한장 사서 나오면 주머니에 고이 접어 넣고 개천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와요. 일주일에 유일하게 쉬는 하루이고 온전하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인데 산책 나온 사람들 사이로 개천 위 오리떼를 보면서 걸어오는 중에 상상의 풍선을 마구 불어대는 거에요. 집, 가게, 건물, 여행, 쇼핑, 차 등등 돈으로 꿈꿀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려보며 걷고 또 걸어요. 그 와중에 복권 당첨액이 이것들을 모두 할 수 있을 만큼 충분치 않으니 또 그 안에서 선택과 포기를 하죠. 개천을 지나면 조용한 아파트 사이길이 나와요.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충분히 설렌 후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누가바와 생귤탱귤 10개를 사서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와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부터 설렘이 현실로 그라데이션되듯 서서히 장면이 바뀌죠. 허황되고 과장된 꿈은 입안 가득 퍼져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사라져요. 설레였고 달콤했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