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남편의 인생이 부럽다.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나, 같은 직종인데도 그는 새로운 판에서 제 역할을 찾아냈다.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대의적인 뜻도 있는 듯하여 더 부럽다.
우리 남편은 정말이지 육아에 진심이다. 아이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질투가 날 지경이다. 아이는 나랑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데도 아빠랑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심통이 난다.
어쨌거나 그는 아빠다. 엄마는 엄마고, 그게 나다. 프레임에 갇히기 싫었는데, 이건 진짜 그런 거였다. 엄마는 엄마다!
아들로 낳아준 것이 한편으로는 크나큰 자유를 선물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두가 다 하는 일이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전혀 위로가 되질 않는다. 예전에는 둘셋도 낳아 키웠는데, 하나 키우면서 곡소리하는 건 부끄러운 일인가? 잘 모르겠다.
나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피곤하더라도 목표가 있고, 성취가 있는 삶이 필요한데, 뭔지 잘 모르겠다.
두 돌배기 아이를 최선을 다해 같이 키워나가며 아이가 잠든 후에 연구실로 다시 나가 논문을 쓰면서 남편은 박사학위를 땄다.
남편을 보고 나는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지해 있는데, 너만 학위 더 따냐고.
속으로 생각을 하고서 너무 웃겨서 기록해 둔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는 그동안 유아식 레시피를 찾아보고, 없는 재료를 주문하고, 빨래를 갰다. 뭔가 더 했어야 했는데, 이 정도가 다다.
살림 실력이 출중하지 못하여 객관적으로 안 힘든 일을 시간도 오래 걸려서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하다 보면 늘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제자리인 듯하다. 내일은 뭘 먹일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글을 다 쓰고 유아식 레시피를 또 찾아볼 나다.
오늘도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이는 아직 두 돌도 안된 아기 짐승인데,
이제 기저귀 좀 입으라고
이렇게 매달리면 엄마 손목이 너무 아프다고
어린이집 지각이라고
열심히 만든 건데 왜 안 먹냐고
그만 좀 흘리라고
속으로 잔뜩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내 바닥을 자주 만난다.
엄마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은 축복일까? 그렇게 믿고 싶다. 하루, 한 달, 한 해가 지나도 같은 자리에 있을 나에게 누가 학사모를 씌워주지 않더라도, 우리 남편이라도 잘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을 때 속상해진다. 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것도 크다.
나를 엄마라고 매일 마르고 닳도록 불러주는 우리 아이의 엄마여서 행복하다.
가끔은 아니다. 수고하고 짐 진 자, 다 어딘가에 내려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