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리다.
날이 풀려서 프리다이빙 연습을 재개했다.
숨을 참는 건 채 2분도 안되는데 푸른빛이 일렁이는 물속에서는 2광년쯤 떨어진 먼 행성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5미터 남짓한 풀장에서 우주를 느끼며 짧고도 긴 상념에 잠긴다. 이런 내 모습 마음에 드는데?라고 오랜만에 생각하며 샤워장으로 나온다. 양서류처럼 수륙양용이군? 생각하며 거울을 마주하니 진짜 개구리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려나? 수모가 새겨놓은 이마의 주름부터 보인다.
매번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지만 언젠가 에어랩으로 고상하게 말겠다며 포기하지 못하는 긴 머리. 쪼그라든 자신감만큼 내려앉은 내 머리. 젖은 미역, 근데 반곱슬! 잘라버려야겠다.
타고난 s라인이나, 길쭉한 다리는 애초부터 없었다. 출산을 하며 몸이 아주 많이 바뀐 것도 아닌데, 팔뚝은 왜 이리 두껍고 배는 왜 아직도 이티 같은 건지, 제왕절개의 흔적 또한 접힌 뱃살을 도드라지게 한다. 탄력 없는 엉덩이를 지나 실눈으로 발뒤꿈치를 쳐다본다. 어렸을 때 목욕탕에서 돌로 뒤꿈치를 갈던 아줌마들 모습이 겹쳐져 아찔하다. 시선을 거둔다.
아이만 오색찬란하게 꾸미고 모자아래로 쏙 숨어버리는 나다. 상상 속 모자 속에는 수십만 원짜리 신부화장과 과한 보정이 만들어 낸 과거의 찬란한 내 얼굴이 들어있는데, 수영복을 입고 멀뚱히 서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니 노인 어플을 쓴 것 마냥 낯설다.
그리하여 갑자기 이런 생각이 번뜩 든 것이다.
'섹시하게 살고 싶다!'
섹시하게 생기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
요리도 섹시하고 뇌도 섹시하다고도 표현하는 세상이니 내 멋대로 해석해도 괜찮지 않은가?
애엄마가 된 시점에서 생각하는 섹시함이란 '건강'에서 시작한다.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는 게 아니다. 우선은 아프지 않아야 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축 처진 어깨, 골골대는 걸음걸이, 앞으로 말린 거북목부터 탈출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적극적이고 당당한 태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고 목소리도 힘이 있어야 하겠다. 체형에 어울리는 착장으로 스타일리시하다면 더 좋겠다. 타고난 외모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체격이 왜소하더라도 에너지가 넘치고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막론하고 눈에서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에 읽었던 매력자본이라는 책이 생각나서 다시 들춰본다.
과거에는 신체적인 매력은 대체로 타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풍요로워진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 단련이나 혹독한 노력, 기술적인 보조물을 통해 높은 수준의 매력 자본을 성취할 수 있다.
평균 수명은 나날이 길어지지만 생리적 노화의 시점을 달라지지 않았다. 스물다섯부터 노화가 시작되고 서른네 살인가부터는 노화단백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니 내부의 엔진은 꾸준한 근력운동과 유산소로 다스릴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미 처진 피부나 주름, 기타 아쉬운 부분들은 기술의 힘에 기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책에 따르면 매력적인 21세는 대개 매력적인 41세와 81세로 바뀌고 대체로 매력의 이득은 대체로 평생 동안 지속된다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또 다른 내용을 찾아보겠다. 책의 제목이 말하듯 '매력'이라는 것을 자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매력 또한 '섹시'처럼 이 단어가 내포하는 무수히 많은 요인들 중 외적인 면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이 책 역시 그 부분을 강조한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고 목놓아 외치고 싶지만,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력적인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많이 이루어질 경우, 사회적, 지적 발달이 촉진되고 그 결과 순조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확실히 훌륭한 외모로 태어나면 더 좋다.
호감형의 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어 내는 사회 과정은 젊은 시절에 집중되지만, 20년이 넘는 황금빛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는 성인으로 살아가는 내내 성격과 사교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사람은 타고나는 것도 필요한데, 살아가는 방식도 그랬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잠수'라는 책에 '성적보다도 취향과 취미, 익숙한 스포츠의 종류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가를 보여주곤 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비슷한 이야기인 듯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니 앞을 내다본다.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성 있는 생각을 해본다.
크로스핏은 섹시하다
수영도 섹시하다.
대부분의 땀 흘리는 신체적 활동은 섹시하다.
변화하는 사람은 섹시하다.
꾸준한 도전은 섹시하다.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은 섹시하다.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섹시하다.
오늘 퇴근길에 들은 라디오에서 왜 송골매가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나오지 않는지 문의하는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존경하는 배철수 씨께서는 본인은 이제 냉방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노래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대답은 최고로 섹시했다.
정답은 없다. 뙤약볕에서 불사르는 젊음만 섹시한 건 아니다. 나도 배철수 씨의 편에 서야겠다. 동경하는 섹시는 저 멀리에 있으니 나는 내 무대를 찾아야 하겠다.
그간 나는 육아를 핑계로 내 속의 게으름을 싹싹 긁어모아 나 스스로를 방치하였다. 그간의 나의 행보가 얼굴과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려본다. 이번 생을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을까? 그러길 간절히 바라는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구리다. 다시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오늘 하루동안 내 표정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크게 웃었는지, 생기 있었는지 돌아본다. 나의 활력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운동화 브랜드로 유명한 ASICS는 라틴어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Anima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식스를 목표로 올여름은 바다를 내 놀이터로 만들 것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동경하는 세상이 생겨났다. 전 세계 예쁜 바다에서 맨 눈으로 해양생물을 마주한다니? 바닷속 프리패스가 생겨나면 이건 우주여행만큼이나 혁신적인 일이다. 뛰는 가슴과는 별개로 프리다이빙의 기본은 힘을 빼는 것이다.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운동이라 하니, 많은 욕심은 내려놓고 적당히 큰 조개를 잡아야겠다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가 되어 '너 내 동료가 돼라'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 눈에 힘을 주고, 뜨거워지자. 아직 한창때이다!
p.s
잘 쓰인 글은 섹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