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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리핵주먹 Apr 26. 2024

헐렁한 아줌마의 시골살이

누가 나의 넋두리를 읽어주나


소유란 그런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거듭 새겨 두기 바란다.

법정, 산에는 꽃이 피네


서울에 살 때는 욕심이 많았다.

보이는 게 많으니 자연히 나도 그리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바라는 상은 높았는데, 뱁새는 타고나길 다리가 짧았다.​

열심히 일해 열심히 벌어도, 가져야 할 것이 늘어나는 속도가 가진 것에 대한 만족을 빠르게 능가했다.​

알고리즘은 더 팬시한 삶을 강요하고, 여행은 다닐수록 못 가본 곳에 대한 미련을 남겼으며, 다시 태어나야 가능할 것 같은 타인의 삶을 욕망하며 메모장에 투두 리스트를 빼곡히 채웠다. 뭐든지 많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자랑할 것들이 끊기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칭찬에 목마른 88년생 애어른의 좌표는 그러했다. ​

아이를 낳기 전부터 세네 살부터 준비해야 하는 영어유치원 입학 과정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놨다.

처녀 때야 극성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극성을 떨어서 아이를 예쁘고 똑똑하게 잘 키우고 있는 주변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성장과정에서 여건이 안되어 성취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서울생활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오랜 시간 주말부부로 살았고, 출산을 앞두고서야 남편의 직장이 있는 강릉으로 떠밀리 듯 내려왔다. 공기 좋은 데서 한두해 지내고 나서 다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왜? 시골살이도 특별하니까!​

나는 강릉에서도 시내가 아닌 아주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왔다. 먼저 와서 살고 있던 남편의 선택이다. 강릉은 소나무가 많아 봄이면 송홧가루가 많이 날리는데 이 동네가 소나무가 그나마 적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나는 선택권도 없이 남편이 살던 동네로 순간이동 당했다.​​

높은 건물 없이 검소한 스카이라인,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 그 하늘빛을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한 바다. ​

가끔 놀러 와야 ‘와 바다다’ 하는 거지 막상 살아보니 ​아름다운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야속하게도 너무 아름답단말이지.​

관광지를 제외하고서는 일찍 문을 닫는 식당들을 보며 사람들이 어째 이리 무욕하고 게으른가 싶었다.​ 쉬는 날도 많고, 그냥 닫는 날도 많아 어딘가를 방문하기 전에 꼭 전화를 해보고 방문해야 했다. ​그래도 어차피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하는 신생아 독박육아 신세라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어 첫해는 큰 불편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


벌써 강원도민 2년 차이다. 금방 돌아가서 서울에서. 청약 노릴 거라며 전입신고도 안 하고 지내다가 지금은 면단위 소재지의 주민이 되었다. 등본상의 좌표는 생활방식을 비롯하여 천천히 나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대부분은 창을 열고 생활하고, 거센 비나 강풍이나 폭설만 아니면 해 지기 전까지는 밖에서 지낸다. 눈두렁이나 작은 골목길을 탐험하며 고양이를 찾아보고, 해풍을 견디며 천천히 말라가는 생선을 구경한다. 유튜브를 보며 갈매기를 길들여보려 성과 없는 노력을 해보기도 한다.

아기띠에 안겨 파도소리를 듣고 잠들던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뛰기만 하는데, 해변은 비할 곳이 없는 놀이터이다. 바람 부는 날엔 소나무 숲으로 대피한다. 솔잎을 모으고 솔방울을 던진다. ​우리 아이는 맨발의 자연인이다. 나도 그렇다.

텃밭을 가꾸며 식재료를 보충하고,​ 해수욕장에 떠밀려 내려온 새우를 주워다가 튀겨도 먹어보고, 미역을 주워 미역국도 끓여본다. 다가올 여름에는 주먹만 한 조개를 잡아 올릴 것이다. 문어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

만날 사람도, 일할 장소도 충분하지 않은 삶의 터전이지만 구석구석 뒤져보니 그간의 나의 작은 시야에는 담기지 않았던 면면이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진짜인가 보다.


예쁜 것 중 가장 큰 것은 느슨하게 풀어진 내 마음과 여유로운 시간이다. 원래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많은데, 나의 욕망과 조급증은 이곳에서는 설 곳이 없다. 나는 여기서 바라는 바 없이 그저 무능해지고 있는 중이다. 좌뇌를 꺼야 평화의 우뇌가 존재감을 드러낸다더니 이게 그건가?

바닷바람을 기꺼이 마주하며 천천히 걷고 있노라면 이것이 요즘 파이어족들이 누리는 미니은퇴인가? 싶어 웃음이 난다. 돈은 없는데.

시간이 많다는 것은 엄청난 부를 거머쥔 것과 다름없다. 가끔 뒤처지는 것 같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말랑말랑한 우리 아기 허벅지살을 조물조물 만지고 있으면 세상 근심이 사라진다.

꿈이랄게 명확한 적이 없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면서 나는 저녁을 함께 보내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맨날 집에 있던 엄마가 딱 한 번 목욕탕을 갔다가 늦게 와서 집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속상했었던 나다. 엄마에게도 인생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던 나이다. 나도 그런 엄마이고 싶었는데, 육아를 하다 보니 이건 나를 위한 처사이기도하다. (출산율을 올리려면 엄마아빠를 하원시간에 맞추어 단축근무하게 해야 한다. 일도 소중하니 경단은 안된다.)


육아는 너무나도 energy consuming 한 일이다. 하루를 힘차게 보낼 에너지는 체력만큼이나 내적인 평온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하루종일 엄마만 불러주는 소중한 아이의 빛나는 눈동자에 걸맞은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지치지 않도록 나를 잘 돌보며 내 인생을 유보한다는 죄책감 없이 이 시간들을 누리고 싶다. 절대로 쉬이 얻어지지 않는 나이기에 부단히 읽고 쓰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스려야 하겠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너무 좋은 말이지만 많이 갖는 거만 좀 보태면 안 될는지?



​​​​

영화 리틀포레스트에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튼튼하게 뿌리내려 많이 흔들리지 않도록!

“엄마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였어.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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