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폐경일지 4
인생에는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수학에서 변수는 ‘어떤 관계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를 의미하고, 인생에서 변수는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으로 정의된다. 변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삶에 변화를 야기하는 것으로 정해진 답이 없으며 어떻게 변할지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이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는 상태는 자신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을 때인데 변수는 일상을 흔들어 혼란을 야기하며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인생의 변수로 작용하는 것들은 크게 가족, 친구, 직장 등 인간관계와 금전적, 육체적 상황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수는 ‘자식’이다. 현재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결혼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해 자아실현을 해 보려는 때에 임신으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던 경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출산과 양육은 넘치는 사랑과 애정보다는 무한 책임으로 느껴졌었고, 직업을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민을 오게 된 이유도 자식이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를 보면서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이민을 결심했고 30대부터 이민자로 살고 있다. 이 경우에는 자식이 변수로 작용했지만 새로운 나라에서 나 또한 내 커리어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난 아직도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도 변수는 자식이다. 이민 2세대들은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언어 문제와 자아 정체성 문제, 세대 간 갈등 등 여러 문제에 봉착하는데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느라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위해 이민을 선택한 나로서는 양육과 생계의 문제 사이에서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지 내내 고민했지만 결국 양육을 선택했다.
거창한 문제에만 변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큰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름 내 시간을 갖게 됐다. 최근 나는 내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자 365개의 폐경일지를 써 보겠다는 작은 결심을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지난주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큰 아이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삶에서 변수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최근 나는 변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으로 바꿔보려고 노력 중이다. 삶은 풀어서 정해진 정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소위 ‘수포자’이니 어차피 정답을 찾을 확률도 낮다) 그렇다면 차라리 변수로 인해 등장하게 되는 여러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말이 쉽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손바닥 뒤집듯 생각을 한 번 뒤집어보자.
그래,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고액 연봉과 화려한 경력은 없지만, 잡스러운 인생 고민을 하며 책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생겼다. 폐경기일지야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인가. 하하하
그래도 역시... 피곤한 건 피곤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