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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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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Apr 27. 2021

해야 하는 것이어도, 평범한 것이어도

"너 하고 싶은 거 해."

얼마 전에 만난 모선배가 말했다.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초라해질 것 같아서.

한때는 나도 '하고 싶은 거' 참 많았다. 소소하지만 명확한 성과들을 내고 싶었고, 더 멀리 나아가길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벽돌 중 하나였다. 주춧돌도 아니고 그냥 작은. 지금도 가끔 속상할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속상하다는 말만 내뱉기에는 그 벽돌의 가치를 깨달아버렸다. 어떤 이는 조직에서 영창 같은 존재다. 나는 그저 벽돌 하나다. 그러나 그 벽돌이 있기에 건물이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길 꿈꾸지만 나는 벽돌 하나로서도 만족한다. 그저 '하고 싶은 거'만 좇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쓸데없는 오지랖과 쓸모없는 책임감 아닌가 투덜대면서도, 나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를 외면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지 오래다.

"그냥 그런 평범한 기자가 되고 싶으면, '워라밸'을 포기해라."

또 다른 모선배도 그랬다. 순간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피곤해질 것 같아서.

한때는 나도 '평범한 기자' 참 하기 싫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위대한 기자'가 되기엔 능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체력도 딸린다. 8시간 노동을 마치고 서울에서 경기 남부의 끝에 다다르면, 가족과 술잔을 부딪치거나 넷플릭스로 떠나는 일말고는 대단한 여가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워라밸'이 소중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잃어버린 기자가 뭐 그리 대단할까도 싶다. 말과 말, 삶과 삶 사이에서 포착해야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업인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삶조차 지켜내지 못하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해낼까도 싶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거' 때문에 '해야 할 거'를 안 하는 사람들, '위대함'에 눈이 멀어 '평범함'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불쾌하다. 타인을 존중하는 척하며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에 불편하다.

이런 찜찜함으로 하루를 끝마칠 뻔하다, 윤여정의 수상소감에 위로 받았다.


"I'd like to thank to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제가 밖에 나가 일하게 만든 두 아들에게 고맙다.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다)."

그래, 뭐든 나가서 제 할 일 하는 사람들은 당당한 법이다. 꼭 '하고 싶은 거'나 '위대한 거'가 아니어도 결과는 돌아온다. '해야 하는 거'나 '평범한 거'해도 괜찮다. 그게 더 어렵다.

'워라밸'덕에 만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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