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포비아(phobia)의 시대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회의실 풍경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예전 같으면 졸려도 되고 노트북만 멍하게 바라바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회의를 열고 마무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죠. 그 순간 느꼈던 것은 부모님의 뿌듯함도, 혹은 승진의 기쁨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하는 묘한 무게감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팀장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에는 스타트업에서 급하게 성장하는 조직에서 다양한 연차와 배경의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하나로 합치해 나아가고 방향성과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지금은 좀 더 깊이 있는 사고와 조율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저보다 연차가 높으신 분도 있고, 특정 분야에서는 팀원들이 저보다 더 전문적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엔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승진 포비아였죠. 하지만 이 자리는 어떤 능력적인 역량이 더 뛰어나다기 보단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역할 때문이라는 것을요. 저는 스스로 '가성비 좋은 팀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른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율하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많은 것을 빠르게 공유하는 것. 그게 제 역할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팀장이든 TF이든 작게라도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한번 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역량의 차이보다 경험에서 오는 용기의 크기가 다릅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조직이 평가하는 건 '똑똑함'보다 '큰 그림을 보는 눈'입니다.
그리고 역할은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원치 않아도 팀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간절히 바라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마치 인연처럼, 사람마다 맞는 자리가 있죠. 하지만 숲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제가 어떻게 그걸 해요'라기보단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고 도전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팀장이 되면 모든 것을 알고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압박감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모를 때는 묻고, 팀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개개인에게 배우려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만들기도 합니다. 팀이 아니라 TF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대부분 실무형 팀장이 되길 원합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라 나의 실무 역량과 아이디어, 전략을 포트폴리오처럼 남겨야 한다는 불안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불안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 '얼마나 자주 빈번하게 개입하는가', '얼마나 보고를 정확하게 받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묻고 배우는가'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두뇌가 더 비상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잘 이끌고 전파를 잘하기만 해도 여러 사람을 모으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하나라도 더 이야기를 '얹고 싶어서' 아주 사소한 오류나 허점을 발견하고 타박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무를 놓지 못하는 마이크로 매니징만큼 힘든 리더가 없었습니다. 팀원도 나도 피차 힘들어지는 상황인 거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줄 때 개인의 역량은 더 발휘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제는 너무 가까우면 일하기가 어렵고, 너무 멀면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의 해결점은 일은 명확하고 관계는 따뜻하게 갖는 것입니다. 서로 사람이자 인격체로서 존중하되,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잘 듣고 공유만 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이 역할이 더 좋은 경험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거리도 두면서 역량을 존중하고 믿고 맡기기에도 어려운 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떤 때 저도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하고 수많은 야근을 보낸 적이 있는데요. 그런 나의 마음과도 일부 거리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 인생에도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고가 아니라면 자주 등장하지 않기로요.
학부생 때 교수님께서 인생은 거리 두기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찍어둔 점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는 말이었습니다. 소유하고 싶은지, 일체 되고 싶은지, 도망가고 싶은지 등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만의 그릇,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겠죠.
해보다가 맞지 않으면 내려놓아도 됩니다. 또는 애당초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과 몫입니다. 그렇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그 기회를 나의 경험으로 만들어보라고 추천드려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진흙탕이고 때로는 늪 같아도 지나고 난 어느 날 아 그때의 나를 칭찬해 라고 불현듯 생각 날 수 있을겁니다.
팀장을 제안받았다면, 이렇게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팀 정체성을 위해 & 필요에 의해 조금 일찍 데뷔한 아이돌그룹의 막내 멤버다라고요.
오늘의 요약
1. 팀장은 나이와 연차로 결정되기 보단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역할로 주어지는 자리다
2.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험해보자 용기의 크기가 달라진다
3. 아는척 하지 말고, 딴지걸지 말고 묻고 배우는 태도를 통해 신뢰를 쌓자
4. 관계는 따뜻하게 일은 명확하게
5.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물이 될수도, 짐이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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