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나쌤 Jul 24. 2019

영어그림책 도전이 선뜻 어려울 땐, 쌍둥이책(페어북)!

영알못 딸이 2달 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딸램은 대략 다섯살쯤 혼자서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전에도 썼지만, 난 아이가 돌때부터 심한 우울증세를 보이기 시작해서 세 살까지 우울증의 정점을 찍었고, 다섯살 때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그래서 아이의 다섯살 이전의 모습은 거의 기억이 안난다. 그나마 페북이 과거의 오늘에서 내가 조금 제 정신일 때 올려둔 아이 사진을 보여주어서 기억하는 게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의 전부다).


아이랑 한창 놀아주고 애착을 쌓아가야 할 시기에 너무 우울해서 손도 까딱이지 못할 때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한 것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효과음이라든지, 성대모사 같은 건 생각도 못했다. 무미건조하게 읽어주는 것도 힘든데 무슨. 나중에 아이에게 “엄만 나한테 해준게 뭐냐”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남아있지도 않은 힘을 다 끌어내서 해 준 게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것이었다. 적으면 하루에 1-2권, 많으면 5-6권 정도를 읽어준 것 같다. 내가 힘든 걸 아이도 알았는지, 아이는 책을 읽어줄 때면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기특하게도 혼자 글씨 읽는 것을 터득해서 읽기 독립을 일찍 이루었다.


딸램의 고향같은 도서관의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서...

딸램이 여섯살이 되던 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왔다. 그 전까지 살았던 동네는 시내 중심가여서 주택이 별로 없었고 당연히 아이와 갈만한 곳도 없었다. 근처 대학 캠퍼스를 공원삼아 돌아다녀야 했는데, 다행히 작은 도서관이 하나 생겼고 갈 곳 없는 나와 딸은 그 도서관을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기운 없는 채로 있어도 괜찮았고, 내가 뭘 안해줘도 아이는 혼자 책 세상에 빠져들었으니 도서관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부터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1-2시간 가량 매일같이 도서관에 갔으니 아이가 읽은 책은 꽤 많았다.


앉은 자리에서 읽은 책을 저 정도로 쌓아놓는 건 일도 아니다

어쩌다 헌책을 지인들에게 전집으로 얻어오면 딸램은 앉은 자리에서 30-40권이 되는 책을 다 읽어버리곤 했다. 학교 들어가서도 아이는 책 많이 읽는 아이로 소문이 났고, 1학년 때 이미 3-4학년 수준의 책을 읽었다. 그 무렵 교회에 기증받은 책이 수 백권 들어왔는데, 딸램은 얼마 안되어서 거의 대부분의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그렇게 읽은 책들 덕분에 영어책 읽기가 수월해졌다. 요즘 내가 아이에게 읽어주는 영어그림책들 중에 이미 한글 책으로 읽은 책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명 쌍둥이책, 페어북(Pair Book)으로 불리는 책 덕분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쌍둥이책

엄마표 영어 관련 도서나 블로그에서 자주 등장하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딸램에게 보여주면 딸램은 종종 “어, 나 이 책 읽어봤어!”라고 했다. 난 영어로 읽어준 적이 없는데 (당연히 없지, 빌려오는 책은 다 처음인데!!!) “언제?”라고 물으면 딸은 당연한 듯이 “학교 도서관에서 한글로 읽었지.”라고 대답했다.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이 걱정인형을 소재로 쓰고 그린 <Silly Billy>는 글밥이 꽤 많은 책인데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한글책 <겁쟁이 빌리>를 봤기 때문이다.

<겁쟁이 빌리>는 학기초에 참관수업 교재로 쓰이기까지 했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엄마표 영어를 언급하는 책이나 블로그들에서는 꼭 한글을 먼저 떼고, 한글책을 먼저 읽힌 뒤에, 독서습관 들인 뒤에 영어책을 읽어주라고 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만약에 3학년이 되어서야 아니면, 더 늦게,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야 영어에 노출을 시키려고 한다면, 그때도 한글책만 주구장창 읽힐 수는 없지 않을까? 안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머리가 좀 큰 애들은 저학년용 리더스북은 유치해서 오히려 더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때도 한글책부터, 그리고 쉬운 리더스북부터 읽힐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럴 때 유용한 게 바로 쌍둥이책이라 불리는 페어북이다.


얼마 전에 영어책으로 읽었던 책인데 한글로도 있길래 주었더니 금새 빠져들었다. 영어그림책 다시 빌려오면 또 읽는다에 한표~

쌍둥이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초등 고학년에서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한다. 이미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한글로 내용을 파악하면 영어책을 읽을 때 부담이 줄어들고 한정된 단어 때문에 스토리전개의 한계가 있는 리더스북보다 훨씬 재밌는 픽처북들을 접하기 때문에 흥미유발이 훨씬 쉽다. 딸램도 쌍둥이책은 훨씬 더 흥미를 가지고 읽는다. 영어책으로 먼저 본 책이 설령 내용이 유치해도 한글 쌍둥이책을 발견하면 꼭 읽어본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영어책을 찾아주면 한번 읽었던 책이어도 다시 읽는 확률이 높아진다(참고로 딸램은 읽었던 책은 다시 잘 안 읽는, 진정한(?) 다독형 아이다). 영어책에 거부감이 있는 아이에게도 쌍둥이책은 유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들에게도 유용하다. (독해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니까!)


영어그림책에 도전하는 초기에 읽어줄 만한 책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훨씬 더 많은 목록은 <영어, 10살에 시작해도 될까요?> 책에 사진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1-51번까지는 제일 쉬운 레벨의 책들이고, 조금 더 어려운 레벨 책 리스트는 <영어, 10살에 시작해도 될까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전 07화 엄마표 영어, 어떤 책으로 시작할까 _ 리더스북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