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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Aug 23. 2023

 운명의 신은 나를 외면했다

   우주의 법칙에는 어김이 없어 다시 봄이 찾아왔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장 밑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움츠렸던 나뭇가지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봄과 더불어 내 몸에도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일단 입시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난 점도 나의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불안감이 움트고 있었다. 마치 나 홀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대학입시에 도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되고 있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만큼, 당분간 집에서 요양하기로 하였다. 틈틈이 책을 펴기도 하였지만,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나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능률이 오를 리 만무하였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농사일로 고생하시는 상황에서, 나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입시준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없으면 사물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소리를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인간은 또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력을 강화시키면 여러 측면에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있는 존재라고 단 카스터(D. Custer)는 역설하고 있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산만해진 정신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재각(齋閣)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 고가(古家)의 중앙에는 김해김씨의 조상신을 모신 재실(齋室)이 위치해 있고, 그 옆에는 제례(祭禮) 시 후손들이 이용하는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방이 나의 새로운 공부방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재각으로 출근(?)하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무보수 노동자였지만, 일터로 가기 위해서는 산봉우리를 넘고 대나무 숲길을 지나야 했다. 그 길은 봄이면 종달새가 노래하고, 민들레가 미소 지으며 나를 반겨주는 길이었다. 여름에는 뻐꾸기와 나팔꽃이 그 임무를 교대하였다. 비록 대학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 한구석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모처럼 느껴 보는 마음의 여유였다. 위리안치(圍籬安置) 같은 숲 속 생활이 따분해지면, 재각 앞마당에서 역기(力器)로 체력을 단련하였다. 이 역기는 대나무 막대기 양 끝에 칡덩굴로 시멘트 블록을 매달아 만든 친환경적 운동기구였다.  

   비가 오거나 집에 가기가 귀찮으면 공부방에서 자는 경우도 있었다. 귀신들이 모여 사는 외딴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어느 정도의 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밤, 괴한이 내 등을 칼로 찌르는 악몽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두려움에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져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쯤 되어 있었다. 그날 밤은 집으로 갈 수도, 그렇다고 일어나서 책을 볼 수도 없어 담요를 뒤집어쓴 채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재각에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학업성과는 나름 있었다고 생각되었지만 나 자신의 학력상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홀로 학문을 닦는 이른바 독학이라는 학습 형태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이 학습방법은 창의력과 응용력이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학문적 폐쇄성과 독단성에 빠지기 쉽고 학습능력이 비효율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주관적 판단에 의해 임의로 학습범위를 설정해 놓고, 그 영역을 넘어서지 않으려는 폐쇄성에 주의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나의 학력 상 좌표를 인식하고, 독학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학습 환경을 바꾸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공기 좋은 죽림(竹林)에 묻혀 생활한 탓인지 늑막염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은 것 같았다.

   대학 본고사를 3개월 정도 앞둔 10월 초순, 나는 서울행 야간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담담한 심정이었으나, 막상 좌석에 앉으니 내 앞에 놓인 난관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덜컥 겁이 났다. 기차가 어둠의 장막을 뚫고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내 의식 속의 불안감도 점차 사그라졌다.  

   열차는 밤새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11시간을 달려 새벽 6시쯤 나를 서울역에 내려놓았다. 나는 곧바로 재수를 하고 있는 친구 하숙집으로 찾아가 시골서 메고 온 더블 백을 풀었다. 그곳으로 가서 같이 하숙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미리 해 놓은 상태였다. 다음 날 광화문 근방에 위치한 학원 종합반에 들러 반편성고사를 치렀다. 처음 배정받은 반은 일반 종합반이었으나, 다음 달 모의고사에서 우수반으로 편입되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학원 수업을 수강한 결과, 그동안 내가 공부한 학습범위가 얼마나 좁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각은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본고사에 대한 나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본고사 입시원서를 쓰는 시즌이 되었다. 서너 번의 모의고사 성적을 기초로 학원의 입시 상담원은 S대 사회계열에 지원해도 되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당시 사회계열은 법대, 경영대, 사회대의 인기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S대 최고의 계열이었다. 내 실력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나름대로의 욕심도 생겨 사회계열 지원서를 작성하였다.

   작년에 이은 두 번째 본고사는 그럭저럭 치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합격자발표까지 한 달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어, 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마음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시간을 빠르게 지나갔다. 합격자 발표 다음날, 집으로 배달된 일간 신문의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구나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학원생들은 줄줄이 합격한 사실을 확인한 후, 나의 절망감은 극에 달했다. 나만 운명의 신으로부터 외면당한 존재라는 생각에, 내 몸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교통사고로 생때같던 아들을 잃은 후, 묵주를 집어던지며 절대자를 향해 항의하던 어느 소설가의 비통한 심정이 내 마음속에도 가득 차 있었다. 그날 이후,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거나 전쟁이라도 터져 세상이 파멸하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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