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잖아.
“자 구독자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애 한 명을 키우는데 총 3억이 들어요. 이제 아이는 ‘사치재’에요. 돈 없으면 낳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겁니다.”
“애는 무슨 돈으로 키우나요? 요즘 애 낳으면 꼼짝없이 2~3년은 애 돌보느라 부부 중 한 명은 커리어를 중단해야 해요.”
“한국의 출산율이 0.7로 전 세계 최하위입니다. 이건 전쟁 상황보다 더 낮아요.”
평소 즐겨 보던 재테크 유튜버들은 출산 이야기가 나오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이는 사치재 입니다.’ 라는 타이틀을 걸고 방송하는 유튜버는, 이제 더 이상 아이를 키워 덕 보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그건 맞지. 애 한 명 키우는 것도 버거운 시대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우리 부부 상황은 어떻지?
지금 우리에게 갚아야 할 빚은 3억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각각 다른 사람에게 천만원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기업 맞벌이였다. 어느 정도 소비의 여유는 분명히 있었다. 내키면 소고기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경제적으로 타이트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정말 아이는 ‘사치재’일까?
계리사 자격증 시험 합격의 기쁨의 여운이 채 다 가시기도 전에 아내는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보냈다. 아내 성격상 아내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나 좋은 일이야. 기쁜 일이지. 내 주니어가 생겼다는데.
카톡으로 아내에게 제대로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았다. 미안했다. 이따가 저녁에 만나면 아내를 근사한 식당에 데려가야지. 회사 근처 백화점 9층에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했다. 어쨌든 기쁜 일이다. 기쁜 일.
“여보, 어서 와. 컨디션은…괜찮아?”
“어, 괜찮아. 아직 뭐 완전 초기인걸.”
“여기, 여기 앉아…아까 임신 테스트기, 확인한거야?”
“응. 요 며칠 좀 이상했거든. 혹시나 해서 점심 먹고 약국에서 사 왔는데… 그랬네? 하하“
”아니, 정말 축하해! 너무 기쁘다.“
”고마워, 당신이 기뻐하니까 나도 좋아…“
메뉴판을 펼쳤다. 꼼꼼히 메뉴를 분석하는 아내를 보며 물을 따르고 젓가락을 놓아 주었다. 우리는 보글보글 끓는 수육전골과 냉면을 앞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지? 수고했어.”
“뭘, 이제 시작인데. 이따가 집에 가서 링크드인에 이력서 업데이트 해 두려고.”
“아, 그 이직 할 수 있는 어플 얘기하는 거지?”
“어어, 거기에 계리사 자격증 올려둬야지. 이제 정식으로 합격 통지 받았으니까.”
“그래 그러면 되겠다…”
오늘 있었던 일인데도, 시험 합격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출산 말인데…”
“어어, 여보.”
“대충 계산해 봤는데, 지금이 4주라 치면 내년 5월 출산이라서. 한창 일이 바쁠 때일 듯 해서 걱정이야. 보통 그 때 업무가 정말 많거든. 6월이나 7월만 되어도 좋았을텐데…”
“어… 그래?”
“응, 그리고 우리 모기지 상환도 있어서 난 출산휴가 90일만 쓸 수 있으면 그렇게 할까 싶어. 나 가고 싶은 팀에 자리가 생길 것 같은데, 일 년을 쉬면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 육아휴직은 애기가 나중에 초등학교 입학 할 때 쓸 수 있고…”
“하하…초등학교 입학, 너무 멀게 느껴진다.”
우리의 아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올까?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아내의 걱정과 불안이 마음 아팠다. 내가 덜어주고 싶다.
“여보, 일단은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거야. 일단은 당신 몸 잘 관리하는 데 집중해.”
“응…알아. 그냥 내 성격이 그래. 걱정이 많아서, 계획을 꼼꼼히 해 둬야 마음이 편해지나봐.”
“당신도… 아기는 사치재라고 생각해?”
말이 잘못 나왔다.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실언해 버렸다.
아까 봤던 유튜버의 말이었는데, 지금 내가 임신한 아내에게 할 말은 아닌데.
“응? 누가 그래?”
“어? 어… 아니 유튜브에서 그러더라고. 아기는 이제 사치재라고… 요즘 애기 키우려면 보통 아니게 들잖아. 애 키워서 덕 보는 시대도 아니고…”
아아, 그만 입 다물어라 김라임!!!!
그건 그 유튜버 생각이지 너 생각이 아니야!!
아내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내는 젓가락을 잠깐 내려놓았다.
“아기를 낳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건 사실이지.”
“아…아니야. 엄청 기쁜 소식이지. 내 주니어가 생기는데.”
“사치재라는 그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해. 우리 인생의 큰 일이니까.”
“아냐 아냐, 여보! 너무 기쁜 일이야. 양가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
아내가 살짝 웃었다. 양가 부모님은 손주 소식을 많이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나 내가 아내에게 부담주지 말라며 단도리를 해 놓은 상태였다.
“여보, 아무 생각 말고 당신 몸 잘 관리해. 이제부터 내가 집안일도 다 할게. 이따가 집에 가서 부모님들께 전화드리자.”
“응, 그러자. 여기 수육 맛있다. 당신이 맛집 잘 찾았네.”
“많이 먹어, 여보 이제 이인분 먹어야 해.”
“하하. 뭘 벌써부터…”
아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내가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아기를 낳게 되면 나가는 돈이 곱절은 될 것이고, 수입은 반으로 줄어들 텐데. 지금처럼 날라리로 회사를 다닐 순 없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내 몸값을 높여야 한다.
사무실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옆에서 파인애플 대리와 빨간펜 부장이 무언가를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부장님, 그래서 이 보고서를 모레까지 달라고 그룹쪽에서 요청을 한다는데요…”
“이거 기술 백그라운드도 있어야 하고 원가 구조도 뜯어봐야겠는데?”
“제가 지금 요구하는 내용을 대충 훑어 봤는데, 이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팀장님은 출장 중이시라 연락도 잘 안되고…”
“흠...”
의자를 박차고 내가 일어섰다.
파인애플 대리와 빨간펜 부장이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파대리 눈이 땡그랬다.
”그 보고서, 제가 맡아서 해 봐도 될까요?“
”어??? 라임씨가요?“
”네, 원가 구조는 제가 많이 다뤄 봤고, 기술쪽은 공장에 제가 협조 받아서 해 보겠습니다.”
“어??? 라임씨가요?”
“네! 저한테 초안 맡겨주세요!“
파인애플 대리가 입을 딱 벌렸다.
빨간펜 부장은 들고 있던 빨간펜을 떨어트렸다.
"왜, 왜... 그래요 라임씨. 무섭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나는 이제 한 아기의 아빠가 될 거야.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이상 일을 피해다니는 사람으로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