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 - 16
나의 정보공개청구가 받아들여졌다. 덕분에 지방노동위원회 판결문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내려진 ‘정직 3개월’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노동위에 제기한 부당징계 구제신청 사건의 전말이 거기 소상히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이랬다.
가해자: “그깟 성추행으로 정직 3개월이라니, 부당합니다!”
회사: “이 징계도 약한 겁니다. 절차도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노동위: “가해자의 청구를 기각합니다. 이유는................”
정말 가관이었다. 판결문의 건조한 문장으로도 위원들의 당혹감과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는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비위 사실을 덮기 위해 자신을 음해한 거다.“
그 근거는? 없었다. 사실이 아니니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했고, 뭘 잘못했냐고 되물었다. 끝까지, 피해자 탓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서울사무소에 근무했는데 회사 법인 등기는 지방 공장에 있으니 공장에서 열린 징계위원회는 무효“라는 기적의 논리도 내세웠다.
(회사 1 : 공장 본사 / 회사 2 : 서울 사무소.
한마디로… 본인은 서울 근무하니 공장 본사에서 징계를 내릴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논리다.)
노동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기각 사유를 명시했다.
그리고, 결국 당연하게도, 가해자의 청구는 기각되었다. 노동위는 징계사유는 모두 인정되었고, 절차도 적법하다고 판단내렸다.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그럼에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법이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구나.”
하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판결문에 의하면, 회사의 주장은 이랬다.
‘이 사건 정직 3개월은 그 비위에 비해 징계양정이 가볍다’
분명히 말했다.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었다.
회사가 스스로 ‘정직 3개월, 사실 너무 가벼운 징계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회사는 왜 이 판결문을 나에게 공유하지 않으려 했을까?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누구를 지키려 했던 걸까?
그리고, 누구를 버리려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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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f happiness forgets you a little bit, never completely forget about it.” -Jacques Prevert
행복이 잠시 당신을 잊어도, 당신은 행복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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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리즈를 접하신 분들께*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1화부터 정주행 추천드립니다.
1화부터 보기: https://brunch.co.kr/@laylagrace/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