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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y Nov 24. 2024

후배 잡는 노처녀 김 과장

"지 까짓게 뭐라고 나대지? 나보다 일도 못하면서..."

일을 꼼꼼하게 잘하는 김 과장은 상사의 이쁨 받는 것을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직원이다. 지금은 회사의 방향성과 전략에 대한 고민을 하는 기획자로 성장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작은 회사의 CS 직원이었다.


타닥타닥 김 과장은 화면을 보며 빠르게 키보드를 치고 있다. "문의드린 내용에 대한 답변드립니다."

고객 문의는 왜 이렇게 많고, 하나 같이 다 불만들인지. 그깟 작은 오류 하나가 뭐라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 문의를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CS 매뉴얼에 가이드 내용을 Ctrl+c, Ctrl+v 하며 빠르게 붙여 넣는다. 고객 이름을 변경하고 몇 가지 내용만 덧붙여서 [확인] 버튼을 눌러 답변을 완료한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을 그저 매일 성의 없이 할 뿐이다. "김 과장님~" 고객 응대하기도 바빠죽겠는데 답변을 보내자마자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쳐다봤다. 상사가 잠시 자리로 오라며 손짓하길래 느릿느릿 꾸물거리며 일어나서 상사의 자리로 향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김 과장님, 이 답변 과장님이 보내신 거예요?"

"(상사가 켜 놓은 화면을 바라보며) 네, 왜 그러세요?"

"고객의 불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보내신 건가요? 아니면 대충 이런 문의겠구나 가늠해서 보내신 건가요? 제가 보기엔 후자 같네요. 도대체 이게 몇 번째예요?"

"... 죄송합니다.."

"왜 같은 실수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거죠? 저번에도 이렇게 답변하셨다가 강성 클레임 들어온 거 기억 안 나세요?"


기억난다. 그때도 오늘과 같이 고객 문의가 많은 날이었고 일이 너무 귀찮고 하기 싫었다. 고객의 문의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매뉴얼에 있는 적당한 템플릿을 복사, 붙여 넣기 해서 고객에게 답변을 보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저희는 고객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아주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팀이에요. 저희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고객을 성의 없이 대하면 고객은 다 알고 결국 떠나게 됩니다. 그럼 저희는 저희의 역할을 못 하는 것이고, 회사에서는 가치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물론 고객의 불만을 매일 날 것으로 마주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을 고객이 느끼는 불만을 잘 들어주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서 우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일이에요.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주세요."


"네"


구구절절 말도 많은 상사가 저렇게 말을 길게 할 때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최고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으로는 온통 딴생각을 한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방어철이라는데 방어나 시켜 먹을까...?'


몇 주 뒤, 또 CS 매뉴얼을 보며 템플릿을 복붙하고 고객 응대를 대충 하고 있다. 성가신 상사가 저 멀리서 또 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오늘은 또 왜 부르는 거야. 하여간 매번 바쁜 사람 귀찮게 하기는... 쯧..'


"네, 무슨 일이세요?"

"잠시만 회의실로 가시죠."

매일 자리에서 이야기하더니 오늘은 왜 갑자기 회의실로 가자는 거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평소와 달리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 조용히 상사 뒤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간다.


"김 과장님, 제가 여러 번 주의드렸음에도 똑같은 실수가 계속 발생하네요. 저희는 이 문제를 심각한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개선되기를 기대하면서 시간을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과장님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아요. 인사팀과 함께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했고 안타깝게도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달까지만 출근하시면 됩니다."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자르다니! 배신감에 치가 떨리고 손이 떨렸다. 분노에 찬 눈으로 상사를 노려보니 상사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치 '그러게 말할 때 잘하지'라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 퇴사를 해야 한다니.. 마음도 춥고 손도 너무 시렸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에 둔 물건을 챙겨 나왔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걷는 폼이 언뜻 보면 집 나온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대중교통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어렵게 집에 도착했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작은 원룸에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쳤다. '거지 같은 회사, 거지 같은 고객'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다 강성 컴플레인을 건 고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회사 짐이 널브러져 있는 방 가운데 자리를 잡고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모금 먹다 보니 벌써 세 캔이나 먹었다. 술을 마시니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오른쪽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자세히 쳐다봤다. 크게 튀어나온 눈, 기미가 가득한 얼굴, 두꺼운 뿔테 안경, 옹졸하게 다문 얇은 입술, 큰 얼굴까지.. 어디 하나 이쁜 데 없는 얼굴이 오늘따라 더 꼴 보기 싫었다. 나를 이렇게 낳아준 부모도 원망스러웠다.


몇 시간을 잔 지도 모르게 느지막이 눈을 뜨니 기분이 썩 좋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넘어간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잘리니 늦잠도 잘 수 있고 편하네 뭐.라는 생각에 연이어 드는 걱정. '근데 다음 달 월세는 어떻게 내지?' 너무 갑작스러운 권고사직에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적인 고민에 부랴부랴 채용 플랫폼을 켜고 내가 갈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쓱, 쓱 쓱 쓰윽.

채용 플랫폼에서 괜찮아 보이는 공고에 전에 작성해 둔 이력서를 선택한 후 지원하기 버튼을 눌러 여러 기업에 지원했다. 며칠 뒤, 꽤 괜찮은 회사에 CS팀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그렇지, 내가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니까’라는 생각에 들떠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면접을 봤다. 


면접보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출근을 했다. 이름만 들으면 나름 알만한 회사에 CS팀이라니. 비록 계약직이긴 해도 다음 달 월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 시름 놓았다. 그렇게 출근을 해서 기존 경험을 되살려 CS 업무를 배우고 고객 응대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잘리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친절하고 상냥하게 몇 주간 고객 응대를 했다. 


“여기 김 과장님이 누구시죠? “

낯선 목소리가 나를 찾았다. “네, 전데요. 무슨 일이세요?”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쭉 찢어진 가자미 같은 눈 위에 작은 네모 안경을 얹은 남자가 나를 향해 말했다.


왠지 모르게 간사하게 생긴 남자와 회의실에 가자 남자는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 과장님. 저는 사업부에 윤팀장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과장님이 응대해 주신 고객분이 저희 VIP인데 고객센터 직원이 너무 친절하다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저희가 새로 론칭한 서비스라 VIP 한 분, 한 분이 너무 소중한데 친절하게 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사는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냥 나는 잘리지 않기 위해 상냥하게 한 것뿐인데... 이렇게 감사를 받을 일을 한 건가? 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은근이 기분도 좋았다. ‘나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칭찬받고 싶다 ‘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는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보자고 본인이 담당한 서비스 고객이 문의하면 앞으로도 잘 응대해 달라며 부탁하고 돌아갔다. 회사에서 처음 받아 본 칭찬에 어쩔 줄 몰랐다. ’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누가 나에게 이렇게 고마움을 전했던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움을 전하고 간 그 남자는 간간히 메신저를 통해 본인 서비스 고객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는 그 팀장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그동안은 해보지 않았던 ’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누가 나를 이렇게 존중해 주고, 감사해한다니. 더 잘해야지.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보답해야지. 하는 생각에 특히 그 서비스 고객의 문의는 유독 더 성심 성의껏 응대했다. 그러던 중 윤팀장에게 메신저가 왔다.


“제가 이번달까지만 하고 퇴사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저희 서비스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했어요.”

퇴사라니.. 내가 그동안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야 일에 재미를 느꼈는데.. 내 가치를 알아봐 준 이가 떠나다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담백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실례지만.. 김 과장님 여기 계약 기간 끝나면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 보셨나요?"

"아.. 아직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새로 가는 팀에서 기획일 해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기획이라니, 지금까지 CS만 하던 내가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렇지만 나를 처음 믿어준 윤팀장님과 함께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본다고 할까?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기획 일을 해보지 않으셨어도 괜찮습니다. CS 응대하시는 것만 봐도 기획 일을 아주 잘하실 거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걱정되는데.. 괜.. 괜찮을까요?"



 그렇게 윤팀장님을 따라간 회사에서 처음으로 기획 일을 해보고, 부딪혀가며 해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을 잘한다'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참 꼼꼼해, 까칠하긴 한데 일은 잘하는 것 같아. 나를 두고 하는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생기니 그 상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며 일해왔으니 못 할 수 없지. 그렇게 윤팀장님 옆에서 몇 년을 일했다. 하라는 업무가 기획 일이든 영업 일이든 상관없이 그냥 하라는 것은 다 했다. 윤팀장님이 나에게 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윤팀장님과 함께 한 지 몇 년이 지났고, 윤팀장님은 새로운 회사의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었고 나는 그 팀에 기획팀장급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해 팀장은 아니었지만 내 위에 팀장이 없으니 결국 내가 팀의 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획 후임을 뽑았다. 


"안녕하세요." 


내가 뽑은 새로운 기획자가 첫 출근해서 인사를 했다. 나는 CS부터 시작해서 겨우겨우 기획자가 되었는데 쟤는 고생도 없이 바로 기획자라는 직무를 갖고 있는데 기분 나빴다. 나랑 연차가 몇 년 차이도 안 나는데 처음부터 기획을 했네? 잘하려나? 


새로운 후임은 윤상무(윤팀장의 새로운 직책)의 이쁨을 받기 시작했다. 원래 나에게 시키던 일을 후임에게 다이렉트로 시키지 시작했다. 질투 났다. 


이러다 쟤가 나를 대체하면 어쩌지? 내 자리가 없어지면? 여기서 내 가치가 사라지면 어쩌지? 윤상무가 나를 버릴까 봐 걱정됐다.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임을 괴롭혀서 지발로 나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후임에 대한 증오는 그 후임이 지발로 나가고 새 후임이 들어왔다 또다시 나갈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됐다. 


윤상무가 나를 불렀다.

"김 과장, 왜 후임들이 자꾸 퇴사하는 거야?"

"글쎄요..? 이 일이 그만큼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저만큼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찾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잘 좀 해줘. 요즘 채용도 힘든데 힘들게 뽑아놔도 자꾸 퇴사하니까 나도 여러모로 힘들어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기획자는 더 없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의 기획은 나 혼자 다 해도 된다. 내가 야근을 해서라도 끝마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후임이 윤상무의 이쁨을 받는 게 가장 싫고 두려웠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뽑은 경력자가 신규로 입사했다. 지금까지 6명의 후임을 내쫓았듯 이 후임도 똑같이 괴롭혀서 내쫓을 생각이었다. 내 계획은 새로운 경력자가 입사한 시점부터 시작됐다. 또각 거리는 구두도 마음에 안 들고, 첫 출근이라고 차려입고 온 차림새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먼저 업무를 달라고 하는 적극태도도 내 심기를 건드렸다. 입사 후 일주일간 매일 같이 텃세를 부리고, 원래 있던 여직원들을 꼬드겨서 새로운 경력자한테 말도 걸지 말고, 커피도 같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 여기 실세는 나니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 타깃이 본인이 될 수 있으니까 여직원들은 내 말을 잘 들었다. 또, 내가 윤상무와 친한 것도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게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신규 입사자는 일주일째 퇴사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보통은 2-3일이면 잠수를 타거나, 울면서 퇴사를 한다고 말하고 나가곤 했는데 이번에 들어온 입사자는 꽤나 끈질기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타닥타닥 빠르게 타이핑을 하며 업무를 한창 하고 있던 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입사자가 말을 걸었다. 

"과장님, 바쁘세요?"

"ㅡㅡ?" 타이핑하는 소리 들어보면 바쁜 거 모르나? 그냥 잠자코 있지 왜 말을 걸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바쁘시면 제가 운영 좀 도와드릴까요?" 내가 운영 세팅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내 모니터 훔쳐봤나?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고 당돌하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알려주지 않고 있던 운영 업무를 '도와준다'라는 핑계로 알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참에 엿 좀 먹어봐라. 


"운영하실 줄 아세요? 그럼 해보세요"라고 말하며 매주 운영하던 엑셀 파일 3-4개 정도를 메신저로 보냈다. 이전에 설명해 준 적도, 가르쳐 줄 생각도 없었기에 운영 파일만 보내면 무조건 못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입사자는 파일을 받고 몇 분간 파일을 살펴본 뒤 다시 말을 걸었다.


"김 과장님, 전달주신 파일 짧게 설명해 주시면 제가 운영 세팅해 보겠습니다." 당돌한 계집애. 감히 나한테 설명을 해달라고 해? 웃기지도 않았다.


"그러게, 왜 알지도 못하면서 운영을 해본다 만다해요? 됐어요. 그냥 둬요 내가 하게." 하고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책상 위에 대고 쾅쾅 쳤다. 


사무실에는 내 마우스 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른 직원 모두가 우리의 대화를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두 신규 입사자를 무능하다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니 뿌듯해서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띵-

"김 과장님, 제 방으로 잠시 와주세요." 윤상무의 메시지였다. 상무님이 나를 찾으시네. 왜 찾으시지? 빠르게 노트북을 들고 상무님 방으로 들어갔다. 


"김 과장님, 이번에 후임으로 오신 입사자도 퇴사하겠다고 하네요."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상무는 나를 노려보다시피 쳐다봤다. 

"아 그래요? 역시 이 일이 어려운 탓..."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상무는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했다. 


"도저히는 안 되겠네요. 제가 사람을 잘 못 봐도 한참을 잘 못 본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윤상무를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번주까지만 하고 나가주세요. " 윤상무는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ㅁ.." 


"더 할 말 없고 지금까지 하셨던 거 새로 오신 후임분께 인수인계하고 금주까지 정리해 주세요." 


윤상무의 말을 들은 나는 너무 놀라 방을 나오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다 새로운 그 신규입사자 때문이야! 그 여우 같은 게 윤상무한테 뭐라고 했길래 나를 자를 수 있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윤상무가 한 말은 진심이 아닐 거야.. 그 여우 같은 애 말을 듣고 잠깐 나를 오해해서 화가 나서 한 말일 거야. 그냥..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내일 와서 화가 풀렸을 때 다시 이야기해 보자. 


김 과장은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퇴근을 했고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안경 안으로 흐르는 눈물을 여러 번 닦으며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이제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니.. 이건 말이 안 돼... 



똑똑

"네 들어오세요" 다음날 일찍 출근해서 윤상무 방문을 두드리자 윤상무는 어제보다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컨디션은 좋은 것 같았다. '그래 어제 한 말은 홧김에 한 말일 거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들어갔다. 


"윤상무 님, 다음 분기에 이 프로젝트해보는 거 어떨까요?" 어제 말은 없었던 일로 하고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려는 질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작은 네모난 안경을 추켜올리며 윤상무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요!" 자꾸만 내려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이번주까지 정리해 주세요." 차가운 목소리가 간절한 내 마음을 찌르며 뾰족하게 들려왔다. 


"어.. 어떻게.. 왜.." 참았던 눈물과 서러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김 과장님 그동안 고생 많이 하신 거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려고도 하셨고, 잘하기도 하셨어요. 하지만 조직에서는 혼자서만 잘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일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혼자서 아무리 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팀워크가 좋은 팀과 경쟁하면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저는 그동안 김 과장님께 많은 기회를 드렸습니다. 


후임이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갈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도 다 들었고요. 김 과장님이 그들을 얼마나 교묘하게 괴롭히고 힘들게 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몇 년간 함께 일한 정과 의리로 몇 번의 기회를 더 드린 거였어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김 과장님은 그 기회까지 걷어차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윤상무는 그간의 퇴사자를 떠올리며 김 과장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동안 많은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은 김 과장의 모습에 실망감이 커 늦게나마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흐으흑흑... 흑흑"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채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서러웠다. 윤상무 님께 이쁨 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러웠고, 나만 이뻐해주지 않고 다른 후임을 이뻐하는 것도 질투 났다. 


내 가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는 게 두려워 여태껏 윤상무 님의 손과 발이 되어주며 밤낮없이 일했는데 그 결과가 결국 권고사직이라니.. 새로운 후임이 이르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잘리는 일은 없을 텐데... 그 후임을 뽑은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더 빨리 내쫓지 못해 이런 사달이 난 이 상황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울었을까. 한바탕 울고 나니 몰골이 말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거울을 보니 역시 눈썹부터 얼굴 전체가 빨개져있었고, 기미는 유독 더 짙게 보였다. 그나마 뿔테 안경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덜 추해 보였다. 안경을 벗어두고 찬 물로 연거푸 세수를 했다. 


퇴사 당일, 윤상무의 배려로 동료들에게는 잘리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퇴사인 것으로 이야기됐다. 커다란 박스에 짐을 넣어 나오는데 우리 팀 동료들이 모두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해 줬다. 동료들 사이에는 내가 뽑은 여우 같은 신규 입사자도 서있었다. 쭈볏쭈볏 제일 뒤에 서서 "과장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조용히 내뱉었다.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마지막날인 만큼 애써 괜찮은 척하며 답했다. "네 어디 한 번 잘해보세요." 


김 과장은 마지막까지도 권고사직의 이유가 본인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당돌한 신규 입사자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수인계 문서도 모두 삭제하고 나왔기 때문에 신규 입사자가 서비스를 이해하고, 기획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음흉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결국 서비스는 잘 굴러가지 않을 거고, 신규 입사자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퇴사를 할 거야. 그럼 윤상무는 다시 나를 찾을 거야.' 조만간 다시 윤상무와 함께 할 날을 상상하니 김 과장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았다. 그렇게 입가에 미소를 머문 채 큰 박스를 들고 어두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김 과장이 퇴사한 후 서비스는 더욱더 승승장구했고, 윤상무와 김 과장은 그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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